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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6. 삼국의 사회와 경제



삼국의 사회


삼국시대의 신분은 왕 아래로 귀족, 평민, 천민으로 구분된다. 귀족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경제적 특권을 누리며, 식읍(국가에서 왕족, 공신 등에게 내리는 토지로 소유자는 조세, 노동력 징발 권리가 있다)과 녹읍을 받아 토지와 농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전쟁에 참여해 토지와 노비를 얻었다. 천민은 대부분 노비(전쟁포로, 죄인, 빚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한 자)로 왕실, 관청, 귀족의 소유였다. 


고구려


고구려에서는 반역자, 패전자(전쟁에서 항복하거나 패배한 자),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의 물건을 훔친자는 12배로 배상하도록 하며, 남의 소 또는 말을 죽인 자는 노비로 삼았다. 결혼 제도로는 형사취수제(형이 죽으면 그 형수를 동생이 취함, 대표적인 예가 산상왕)와 서옥제가 있고, 공놀이와 씨름을 즐겼다. 


백제 


백제는 언어, 풍속, 의복이 고구려와 유사하고 반역자, 패전자,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의 물건을 훔친자는 2배로 배상하게 했으며 관리가 뇌물을 받거나 횡령을 하면 3배로 배상하게 하고 종신 금고형에 처했다. 간통을 저지른 여인은 남편의 노비로 삼았다. 백제 사람들은 투호, 바둑, 장기 등의 놀이를 즐겼다. 


신라 


귀족 회의인 화백회의는 만장일치제였고, 화백은 귀족의 대표들로 구성되었으며, 국왕을 추대하거나 폐위시킬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흥왕 때 골품제가 마련되었고, 이 제도는 개인의 골품에 따라 사회활동, 정치활동의 범위가 결정되었고 혼인, 가옥의 크기, 의복의 색깔도 결정되었다.

 

원시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유래된 화랑도는 인재 양성과 계층 간의 일체감과 단결을 도모하고자 진흥왕 때 국가적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5계(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를 가르쳐 마음가짐과 행동 규범을 제시했으며, 이 사실로 보아 승려가 생활 윤리로서 유교를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삼국의 경제


삼국은 농업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철제 농기구를 보급하고 소를 이용한 경작과 황무지 개간을 권장했고, 저수지를 축조했다. 또한 농민 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도 폈는데 고구려의 진대법이 대표적이고, 백제에서도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진대법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추수한 곡식으로 갚게 하는 제도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켜 국가 재정과 국방력을 유지하고 귀족 세력을 견제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산력이 향상되지 못해 미봉책에 그쳤다.

중앙 집권 체제의 정비 과정에서 수취제도가 마련되었는데 재산 정도에 따라 조세로서 곡식과 포를 징수하고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공물로서 징수했으며, 왕궁, 성, 저수지 등을 건축할 때 노동력이 필요한 경우, 15세 이상의 남자들을 부역에 동원했다. 

농민은 자영농과 소작농으로 구분되었고, 자영농이라 해도 보유한 토지가 척박한 경우가 많았고, 소작농은 수확량의 절반을 땅의 주인에게 납부해야 했다. 국가와 귀족에게 곡물, 삼베, 과실 등을 바쳤고, 축성이나 저수지 축조, 삼밭, 뽕나무 밭 경작에 동원되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전쟁물자 보급 및 잡역에 동원되었고, 군사로도 참전했다. 스스로 경작지를 확대하기 위해 계곡의 물가나 산비탈을 개간하곤 했지만, 자연재해나 고리대에 의해 몰락하면서 노비 또는 유랑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었다. 

 

삼국은 관청 소속 장인이 각종 무기와 농기구 및 관청 수요 물품들을 수공업으로 생산했고, 수도에 시장을 개설했다. 신라의 경우 지증왕 때 경주에 동시를 개설하고 이를 관리하는 동시전을 설치했다. 대외무역은 왕실과 귀족의 필요에 의해 공무역 형태로 전개되었고 후기에는 정부에서 발행산 증명서를 지닌 자에 한해서 무역을 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직물업과 철 산업이 발달했고, 백제는 비단과 삼베가 발달했으며, 신라는 금속 공예가 발달했다. 고구려는 남북조와 북방 유목민들과 교류를 하면서 외교 관계가 형성되었고, 백제는 남중국과 왜와 교역을 했으며, 신라는 한강 유역을 확보하기 이전에는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중국과 무역했으나, 한강을 차지한 이후에는 당항성을 통해 중국과 직접 무역을 했다. 신라의 고분에서 중국과 고구려 유물 이외에도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계통의 물품이 출토되었다. 

삼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품으로는 고구려는 금, 은, 모피류, 백제는 인삼, 직물류, 신라는 어아주, 소하주를 수출했고, 일본에 대한 수출품으로는 고구려는 해표피와 모피류, 백제는 곡물, 직물류, 신라는 곡물과 비단을 수출했다. 중국으로부터 주로 비단, 서적, 도자기, 약재, 장식품 등을 수입했다.

 

참고자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a/view.do?levelId=ta_h71_0050_0010_0010_0010

한국사개설, 국사교재연구회 저, 학문사

함께 읽는 바른 한국사, 주보돈 감수, 김임천, 김형수 공편저, 도서출판 아이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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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