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4. 삼국과 가야의 발전
고구려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은 건국 초기에 비류국과 행인국, 북옥저를 정복하고, 선비족과 말갈족을 물리치는 정복사업을 시작했다. 태조왕 때는 요동과 현도군을 공략하고, 압록강과 동가강 유역을 완전히 점령하였고, 옥저를 정벌해서 후방을 안정시켰으며 내부적으로 계루부 고씨의 왕위 독점 세습권을 확립했다. 고국천왕 때는 부족적 전통의 5부(순노부, 소노부, 관노부, 절노부, 계루부)를 행정적 성격의 5부(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로 개편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을파소를 등용해 진대법을 실시했다. 동천왕 때는 위나라 장수 관구검의 침입으로 국내성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4세기 경 중국은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되어 혼란에 빠졌고, 이 틈을 타 국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미천왕 때에 북방 민족들의 침입으로 진나라가 약화된 틈을 타 서안평을 점령한 다음 낙랑군을 완전히 축출하고 요동 쟁탈전에 돌입했다. 다음 왕인 고국원왕 때는 모용씨의 전연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함락되고, 선왕인 미천왕의 묘가 도굴되고 왕의 생모와 왕비가 볼모로 잡혀가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에 전진과 동맹을 맺고 전연이 전진에 의해 멸망했으나 백제를 침공했다가 패배했고,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 앞까지 침공하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 다음 왕인 소수림왕은 우선적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했다.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설립했으며, 율령을 반포해 국가조직을 완비했다. 소수림왕의 닦은 국가기반을 바탕으로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공격해서 한강 이북을 차지하고 왜(일본)가 신라에 침입하자 구원군을 보내 왜를 격퇴했다. 그 다음으로 숙신을 정벌하고 후연을 공격해 요동 지방을 확보했다. 또한 '영락'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호를 사용해 고구려 중심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과시했다.(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됨)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중국 국가들과 교류하고,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했으며, 남진 정책으로 한강 유역을 장악했고, 이 과정에서 백제의 개로왕이 전사했다.
백제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은 한강 유역에 터를 잡고 주변의 소국들을 병합해 마한의 전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고이왕 때는 넓어진 영토와 새로 편입된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통치 조직을 정비했다. 귀족 회의인 남당을 설치하고 6좌평과 16관등의 조직 체계를 마련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고 율령을 반포하는 한편, 서진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고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를 바탕으로 근초고왕은 대대적인 정복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왕의 계승을 부자 상속으로 했고,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평양성을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했다. 근초고왕 시대가 백제의 최대 전성기였는데 북으로는 옛 대방지역을, 남으로는 마한 전 지역을 장악했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요서 지방과 산둥 지방, 일본에까지 진출(일본 왕에게 칠지도를 부여함)해서 고대 상업권을 형성했다. 또한 박사 고흥이 역사책 '서기'를 편찬했다.
그러나 4세기 후반부터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되고 비유왕 때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지만, 475년에 개로왕이 고구려와 싸우다 전사하고 도읍을 한성(한강 유역)에서 웅진(공주)으로 이전하게 된다. 웅진으로 천도한 후 구 귀족들의 분열과 금강 유역(웅진)에 기반을 둔 신진 세력의 성장으로 왕권이 약화되었다. 동성왕 때는 국력을 회복하고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대항한다. 동성왕이 신진 세력에게 피살된 후 이어서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반란을 제압한 후 지배 세력을 재편함과 아울러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해 지방의 통제를 강화했다. 그 다음 왕인 성왕 때는 사비(부여)로 천도해 중흥을 노렸고, 천도와 더불어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중앙에 22부, 지방에 5부 5방의 관서를 두었다. 또한 불교를 장려하고 왜(일본)에 불교를 전파했으며, 신라와 연합해서 한강 하류 지역을 일시적으로 수복했으나 신라의 배신(당시 신라의 왕은 진흥왕이었다)으로 신라에 빼앗겼고, 성왕은 신라를 공격하지만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다.
신라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진한 12개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에서 시작되었는데 고조선 유민과 경주 지역의 토착민 집단들의 결합으로 국가가 세워졌다. 동해안 지역과 낙동강 유역의 주변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박, 석, 김의 세 성씨가 교대로 왕위를 차지했고, 이때 왕호는 이사금이었다. 신라에는 골품제라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국가 중대사는 귀족들의 회의인 화백에서 결정했다.
내물왕 때부터 김씨가 왕위에 오르고 박씨, 석씨의 왕위계승권이 박탈되었으며 부자 왕위 계승 제도를 확립했다. 낙동강 동쪽의 진한 지역을 장악하고 '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사용했다. 그 시기에 가야와 왜(일본)가 연합해 쳐들어오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고구려의 도움으로 가야, 왜 연합군을 격퇴했으며 고구려를 통해 중국 문물을 수용했다. 다음의 오른쪽 그림은 호우명 그릇으로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지증왕 때에는 순장을 금지하고 국호를 '신라'로 고쳤으며 '왕'이라는 왕호를 사용했다. 또한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우산국을 정복했다. 그 다음 왕인 법흥왕 때에는 병부를 설치해서 병권을 장악하고 17관등과 골품제를 포함한 율령을 반포하여 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확립했다. 또한 처음에는 불교를 공인하지 않았으나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했다. 다음 왕인 진흥왕 때는 활발한 정복 사업을 벌였다. 가야 전 지역(대가야)을 정복해서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상류 지역과 함경도 동해안 일대를 차지했으며(단양 신라 적성비, 창녕 척경비,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 나제동맹을 깨고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 지역을 탈취했으며 백제의 공격을 받았으나 격퇴했다. 이 때 백제의 성왕이 전사했다. 또한 15~16세의 귀족 자제들 중 뛰어난 인물들을 선발해 화랑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훗날 신라의 삼국통일을 대비했다.
가야
3세기 중엽 낙동강 하류 지역에 변한 12국들이 각각 독립된 세력을 펴고 있었다. 그 중 수로를 시조로 하여 본가야(금관가야)로 발전한 구사국이 김해를, 대가야(임나)로 발전한 미조사국이 고령을 중심으로 각각 발전했고,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진주), 성산가야(성주), 소가야(고성) 등 주위 여러 부족국가들을 연합하여 가야연맹을 형성했다. 가야는 김해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백제와 왜(일본)의 교육을 중계하며 발전한다.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지만 광개토대왕의 구원군에 의해 격파되었다. 그 이후로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이 되어 백제, 신라와 대등하게 세력 다툼을 하고 중국 남조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중앙 집권적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신라 법흥왕에 의해 본가야가, 진흥왕에 의해 대가야가 멸망하게 되어 신라에 병합된다.
참고자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h/view.do?category=korean&levelId=kh_001_0020_0020_0020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3885#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h/view.do?category=korean&levelId=kh_001_0020_0020_0030
http://hanseong.songpa.go.kr/About/baekje/relics.jsp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h/view.do?category=korean&levelId=kh_001_0020_0030_0010
http://dlegongbuwarac.edupia.com/xmlPrint.aspx?did=66898
한국사개설, 국사교재연구회 저, 학문사
함께 읽는 바른 한국사, 주보돈 감수, 김임천, 김형수 공편저, 도서출판 아이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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