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1. 구석기, 신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년전 부터 약 1만년전 사이의 시기로 지질학상으로는 홍적세에 해당하고 빙하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낮아져 중국대륙, 한반도, 일본 열도, 타이완이 서로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도구 제작의 발전단계에 따라 전기(70만~10만년 전), 중기(10만~4만년 전), 후기(4만~1만년 전)로 나누고 도구는 용도에 따라 사냥용, 조리용, 공구용으로 분류한다.
구석기 시대에는 뗀석기를 도구로 사용했다. 전기에는 외날찍개의 석기가 주로 사용되었고, 1964년에 공주 석장리에서 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남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 또한 1966년에 중화군(북한)의 검은 모루동굴에서 곰과, 여러 포유동물의 뼈와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제천 점말동굴 유적과 청원군(지금의 청주시)의 두루봉 유적에서 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은 소형 박편 석기들과 찌르개, 쌍날개, 긁개 등인데 1973년에 제주도 빌레못 동굴에서 동물의 늑골과 동물화의 석편이 발견되었고, 공주 석장리, 웅기(북한) 굴포리 유적지 등에서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다.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고무래, 석도 등 다수가 발굴되었다. 연천 전곡리에서 유럽 아슐리안(Acheulian)계의 주먹도끼가 발굴되었다.
찍개: 사냥용 도구로 사냥한 동물의 몸통을 분리하는데 사용되었다.
밀개: 조리용 도구로 사냥한 동물의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데 사용되었다.
긁개: 조리용 도구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나무와 뼈를 깎는데 사용되었다.
슴베찌르개: 슴베로 불리는 자루가 달린 찌르개로 창(槍)의 기능을 했다.
아슐리안형 석기: 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프랑스의 생따슐(St. Acheul) 유적에서 발견된 형태로 석재의 양면을 가공하여 날(blade)을 세운 석기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빙하기여서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평지 등에 막집(임시로 간단하게 만든 집)을 짓고 노지(화덕 자리: 선사시대의 집터에서 난방과 음식 마련을 위해 불을 피우던 자리)를 만들어 추위를 피하고 요리를 했으며 이러한 흔적을 전국 구석기 집터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으로 불을 피우고 뗀석기를 도구로 사냥을 하고, 사냥을 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으며, 물고기를 잡아서 식량으로 사용하고 동굴 또는 강변, 호수변에서 생활했다. 구석기 시대의 인간은 생산력이 낮기 때문에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를 이루고 무리를 지어 생활을 했는데, 이 무리는 가족이 기본이 되어 구성되었다. 이 시기에 언어가 발달하고 토템(totem: 집단의 상징물)이나 원시신앙도 있었고, 이 밖에서 동물을 그린 선각화가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
빙하기가 끝나고 해빙기가 시작됨으로써 현재의 온화한 기후가 나타나고 해면이 상승하여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구석기의 끝이 약 1만년 전이므로 신석기는 약 1만년 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에는 뗀석기를 사용했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뗀석기에서 발전한 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했다. 또한 해빙기여서 농경과 목축이 가능해져서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이것을 신석기 혁명이라고 한다).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에는 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뒤지개, 갈돌과 갈판 등 돌로 만든 농기구(간석기)를 제작했다. 농경이 시작되었으나 그 수확량이 미미해서 사냥과 물고기잡이를 병행했고, 이때 동물의 뼈로 작살이나 바늘(뼈도구)을 만들었고, 후기에는 돼지 등의 동물을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신석기 시대에 사용된 토기는 빗살무늬가 그려져 있고 밑부분이 V자 형태인 토기로 이것을 빗살무늬토기라고 한다. 토기는 음식물의 저장과 조리에 사용되었다. 신석기에는 실(絲)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은 다음 뼈바늘을 이용해 그물과 옷을 만들었다.
간석기: 돌을 갈아서 만든 석기로 돌괭이, 돌보습, 돌낫, 갈돌과 갈판 등이 있다.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옆면에 빗살무늬가 그려져 있고 음식물의 취사 또는 저장용도로 사용된다.
뼈 도구: 동물의 뼈와 돌을 조합해서 만든 도구로 작살이나 바늘로 만들어 사용한다.
가락바퀴: 중앙의 둥근 구멍에 축이 될 막대를 넣어 고정시켜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드는 도구이다.
갈돌과 갈판: 곡물이나 열매의 껍질을 까거나 곡물을 가는데 사용된다.
신석기 시대의 인간은 초기에 식량을 찾아 반이동생활을 하다가 인간의 지혜의 발달로 도구를 개량해서 만들고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4~5명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중앙에 화덕이 위치, 저장 구덩이를 만들어 식량과 도구를 저장)을 지어 정착생활을 했다. 구석기 시대가 무리를 지어 평등한 사회였다면 신석기 시대는 모계 중심의 씨족 공동체를 이루었다. 점차 씨족(혈연 바탕)을 통합한 지연 중심의 부족 사회가 등장했고 족외혼을 통해 부족을 형성했으며 경험이 많은 연장자가 부족을 이끌었지만 아직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발생하지 않았다. 신석기 후기에는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부담했고, 남성은 농사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 환경과 밀접한 농경 생활을 통해 원시 신앙이 발생했다. 조개껍데기 가면은 주술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참고자료:
http://study.zum.com/book/15227
구석기 유물사진: 국립중앙박물관
http://study.zum.com/book/14505
한국사개설, 국사교재연구회 저, 학문사
함께 읽는 바른 한국사, 주보돈 감수, 김임천, 김형수 공편저, 도서출판 아이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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