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교육학개론] 3. 교육사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 인간사는 변화(항상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질서 동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알기 위해 과거를 파악한다. 

교육사는 교육의 역사다. 교육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영역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적인 활동이다. 교육사는 단순히 학교교육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삶 속의 다양한 교육적 현상을 분석, 해석하여 그 결과를 기록하는 일이다. 

다음은 교육사 연구의 필요성을 정리한 것이다.

1. 교육적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2. 교육현실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3. 현대문화에 대한 비판과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한 지침(교육적 예지)을 얻기 위해서이다.


교육사를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별로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그 역동을 이해하고, 그러한 사회적 조건하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들의 삶의 조건이나 상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다음으로 그 시대를 살던 개인들의 꿈과 이상이 무엇인지, 사회적 이념, 사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교육사 이해의 개념 모형 


교육사는 한국교육사와 서양교육사로 나뉜다.


한국교육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때 고구려는 귀족 자제들을 태학에서 학문을 익히게 했고, 평민들은 경당에서 학문 및 무예교육을 했다. 백제는 박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자세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신라는 세속오계를 기반으로 한 화랑도 교육을 했다.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된 이후로는 화랑도 교육보다 유교교육을 중시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으나 유교교육도 이루어졌고, 관학과 사학이 최초로 등장했으며 고려시대부터 어디서 출세가 유리한가에 따라 학교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사학, 향교의 관학과 서당, 서원의 사학이 존재했고, 관학의 부실함과 초집(시험족보)의 등장으로 인해 사학이 흥했다. 


서양교육사


고대 그리스는 고대 정신의 핵심인 문학, 철학, 예술, 과학 등을 처음으로 만들어 발전시켜서 오늘날 서양문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Polis)라는 도시국가들이 난립했었고, 이 중에서 대표적인 폴리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스파르타는 군사훈련에 초점을 두었고 출생 시 엄격한 신체검사를 통해 생사를 결정했다. 7세부터 30세까지 병영생활을 하면서 체육교육과 군사훈련만을 받았고, 여성은 병영생활을 하지 않았으나 남자와 거의 비슷한 교육(훈련)을 받았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학습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설정된 가치를 주입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달리 자유시민의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 아테네는 정치적 화합에 의해 세워진 도시국가여서 인간의 자유와 문화적 욕구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개인주의, 시민주의, 문화주의, 자유주의로 표현된다. 아네테의 교육적 이상은 파이데이아(Paideia)로 아테네 시민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 즉 교육적 이상으로 교육을 통해 신체적, 정치적, 정신적, 도덕적 조화가 이루어진 인간을 뜻한다. 그러나 교육의 대상은 시민으로 한정되었고, 여자와 노예는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다.

로마는 초기에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된 군대와 질서 있는 시민을 필요로 했고, 도덕심, 준법정신, 신체적 훈련을 주로 교육했다. 대제국을 이룬 후기에는 그리스의 유산인 진, 선, 미 등의 심미적 가치를 추구하나 사치, 방종, 향락 등의 퇴폐적 문화를 탐닉하게 되었다.


중세시대(5~15세기 중엽)는 신 중심, 내세 중심의 기독교적 가치가 지배했던 시기였다. 교회에서 교육을 담당했고, 기독교사상에 기반을 둔 교육이 이루어졌다. 국왕 또는 영주는 사병을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기사 양성을 위한 기사교육이 이루어졌다. 기사교육은 용기, 충성, 관용 등의 군사적 미덕과 예의, 공손, 자비 등 사회적 미덕을 갖춘 기독교적인 무사를 양성하는것이 목적이었고, 생활 중심의 비형식적 교육,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남자에 국한된 교육이라는 특징이 있다. 시민교육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기독교 교육과는 달리 자신들의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이었다. 시민교육은 형식교육과 비형식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형식교육은 다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중등교육, 실생활에 필요한 직업교육, 문자교육을 위한 초등교육으로 구분되고, 비형식교육은 도제교육이라고 불렸으며 중세 후반 상공인들의 조합(길드)에서 직업기술을 습득함에서 유래되었다. 이 교육의 과정은 도제(견습공)-직공-마스터(장인)의 단계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의 대학은 중세시대의 산물(12세기)이다. 중세시대 대학의 발생배경은 1. 지적 진보와 교육적 이상의 추구(신으로부터 탈피해 자신의 이성으로부터 출발하려는 개인의식), 2. 경제적인 동기/체제 유지(전문적인 법률지식 필요), 3. 정치적인 이유(국왕 또는 교황의 인가를 받아 설립) 이다. 


근대에는 부의 축적으로 인해 상업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고(12~13세기), 이는 봉건사회의 몰락과 기독교의 쇠퇴를 초래했다. 또한 르네상스 운동(14~15세기)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세속적 사회로 탈바꿈했다. 이로 인해 인문주의 교육이 등장해서 종교로에 의한 정신의 억압상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자유로운 탐구와 비판, 인간의 사고와 창의력을 가능하게 했다. 인문주의 교육은 인문주의를 해석 또는 실천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개인적 인문주의(13~14세기)와 사회적 인문주의(16세기)로 나뉜다. 르네상스는 곧 종교개혁으로 이어져서 형식적 교권주의에서 벗어나 오직 성서에 의해 복음을 접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 당시 타락한 교회를 비판했다. 르네상스 이후인 17세기에 종교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탐구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실학주의이고 실학주의 교육은 실용성과 실천을 강조하고 이상보다 구체적인 경험을 강조했다. 또한 철학자들에 의해 교육의 방법이 획기적으로 변하여 책이나 말로 법칙을 배우는 것보다 자연과학의 지식을 존중하고 감각에 의한 사물의 관찰을 중요시 했다.


17세기 이후인 18세기에는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낙관주의적 세계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칸트(Kant)는 계몽을 "인간이 타인의 의견에 굴종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립된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는것"이라고 정의했다. 계몽주의의 목적은 종교로부터 인간정신을 해방시켜 교회와 사회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이성, 자유, 존엄성의 가치 인정) 개인의 도덕성을 확립해 인간의 자유를 입증하는 것이었고, 교육이념은 모든 인간이 교육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일반 국민교육이다. 또한 계몽주의 사상의 토대가 된 자연주의 교육(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어린이들의 자연성에 기초한 교육)도 강조되었다.


19세기에는 다양한 근대적 사상들이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인문주의(Neuhumanismus)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이성에서만 찾으려던 계몽주의와는 반대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이성이나 지성에서 찾는것이 아닌 감성적이고 심미적인 태도로 탐구하려는 사상이다. 신인문주의 교육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조화로운 전인교육을 추구해서 이성에만 관심있는 계몽주의교육을 비판하고 지(知), 덕(), 체(體)의 조화로운 교육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2. 언어교육을 중요시하고 고대 그리스, 그리스 언어에 관심을 가졌으나 작품속에서의 정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힘 도야의 가능성을 찾았다(16세기 인문주의 언어교육과 다름).

3. 직업인 이전에 인간으로 교육하는 인간교육을 강조했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 사회적 상태, 도덕적 상태로 구분하면서 교육이론을 전개했고,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도덕적 상태로 이끌어 내면세계의 숭고한 요청에 따라 자신을 정화하고 순화하여 도달하는것 이라고 주장했다.   


참고자료:

교육의 이해, 허정무 외 4인, 학지사

교육학개론, 이명기 외 11인, 학지사

교육학개론, 안영진, 창지사

반응형
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