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수학사(상)2022. 9. 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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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 30-아라비아의 패권(1)

 

 

1. 아라비아의 정복

 

 브라마굽타가 저술 활동을 하는 동안 아라비아에서는 사바 제국이 붕괴하면서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다. 반도에는 베두인족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글을 읽고 쓰지 못했다. 이들 중 메카에서 태어난 예언자 모하메드(마호메트)가 있었다. 그는 유목생활 중 유태인과 기독교도와 접촉했고, 이것을 통해 종교적 감정이 생겼고, 이윽고 모하메드는 스스로 민족의 지도자로 보낸 신의 사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약 10년 동안 그는 메카에서 전도하고 있었고, 목숨에 위협을 받아 메디나로 거처를 옮겼다(헤지라). 헤지라로 알려진 이 탈출은 이슬람 시대(수학의 발전에 강한 영향을 미쳤던 시대)의 막을 열었다. 10년 후 그는 메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국가를 세웠고, 이 나라에서 유태교, 기독교인들은 통행권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그의 후계자들은 다마스커스, 예루살렘,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했고, 641년에 알렉산드리아도 함락했는데 이때 도서관의 모든 책들이 코란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불태워졌다고 한다. 

 한 세기를 넘는 기간 동안 아랍의 정복자들은 동족끼리 싸우거나 적과 싸웠고, 750년 무렵이 되어서야 그런 호전적인 기질이 진정되었다. 이때 이슬람 국가는 둘로 나뉘어 하나는 모로코의 서아랍, 다른 하나는 바그다드를 새로운 수도로 하는 칼리프 알 만수르의 통치를 받는 동아랍이 되었다. 그리고 바그다드는 이내 수학의 새로운 중심지로 변모했다.

 766년까지 아라비아인 사이에서 Sindhind로 알려진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책이 인도에서 바그다드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브라마스푸타 싯단타(수리아 싯단타일 가능성도 있다)였다고 본다. 775년 무렵에 싯단타는 아라비아어로 번역되고, 780년 무렵 톨레미의 점성술에 관한 그리스의 책 테트라비블로스가 아라비아어로 번역되었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지적 자극을 받아 이웃 나라의 학문을 받아들였고, 이렇게 '아라비아의 기적'을 이루었다.

 

2. 지혜의 집

 

 이슬람 제국의 처음 한 세기 동안은 과학적 성과가 없었다. 아라비아인에게는 아직 지적 활력이 없었고 다른 나라의 학문에 대한 관심도 매우 희미했기 때문이다. 

 당시 바그다드에는 유태인, 기독교인, 시리아, 이란(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의 학자가 초대되었다. 그리고 압바시드의 알 만수르, 하룬 알-라시드, 알 마문 이 세 사람의 위대한 학문의 후원자의 활동에 힘입어 이 도시는 제 2의 알렉산드리아가 되었다. 천일야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두 번째의 칼리프 통치 시대에 유클리드의 저서가 일부 번역되었다. 그러나 아라비아인이 번역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았던 시기는 칼리프의 알 마문의 시대였다.

 알 마문은 알렉산드리아의 오랜 박물관에 견줄만한 '지혜의 집(Bait al-hikma)'을 바그다드에 세웠다. 그 교수진에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모하메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가 있었고, 그의 이름은 유클리드와 마찬가지로 서구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중 가장 오랜 책은 인도에서 전해진 싯단타를 기반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천체 관측의와 해시계에 관한 논문과 천문학표 말고도 수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산수로가 대수에 관한 책을 두 권 썼다. 

 그 중 한 권은 '인도의 계산법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라틴어로 번역된 사본으로 유일하게 남아있고, 아라비아어 원본은 없어졌다. 브라마굽타의 책의 아라비아어 번역본에 바탕을 두었다고 보이는 그 책에서 알콰리즈미는 인도 숫자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래서 현대 기수법의 기원이 아라비아에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널리 퍼뜨린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현대 기수법의 기원은 인도에 있고, 알콰리즈미는 기수법과 관련해 독창적으로 주장한 바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 대한 라틴어 번역판이 유럽에 나타났을 때 경솔한 독자가 그 책 뿐만 아니라 기수법도 그의 업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기수법은 알콰리즈미 또는 경솔하게도 알고리즈미(algorismi)의 기수법으로 알려졌다. 결국 인도 숫자를 이용하는 계산의 개요를 간단히 알고리즘(algorithm)이라고 하게 되었다.

 

3. 알 자브르

 

 알콰리즈미의 산술을 통해 알콰리즈미라는 이름은 흔한 영어 낱말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저서의 제목 '복원과 축소의 과학(Al-jabr wa'lmuqabalah)'에서 더욱 잘 알려진 일상어를 제공했다. '대수(algebra)'라는 말은 이 제목에서 유래되었는데 수학의 한 분야를 이 책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디오판투스를 "대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을 알콰리즈미에게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알콰리즈미의 업적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디오판투스의 업적보다 퇴보적이다.

 

1. 디오판투스의 문제 수준보다 훨신 초보적이다.

2. 알콰리즈미의 대수는 철저하게 수사학적이고 디오판투스의 산술과 브라마굽타의 저작에 보이는 약어가 전혀 쓰이지 않았다.

 

 알콰리즈미는 디오판투스의 저작을 몰랐던 것으로 보이나 브라마굽타의 천문학과 계산법에 관해 부분적으로 정통했음은 확실하다. 그러나 알콰리즈미와 다른 아랍 학자들은 약어나 음수를 쓰지 않았다.

 알 자브르는 디오판투스나 브라마굽타의 어느 쪽 저작보다 오늘날 초등 대수학에 더 가까웠다. 그 이유는 부정해석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다루지 않으나 방정식(특히 이차방정식)의 풀이법에 관한 간단하고 기본적인 해설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라비아인은 정연한 조직 뿐만 아니라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명쾌한 논법을 좋아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디오판투스, 인도인 모두 아라비아인에게 미치지 못했다. 인도인은 연상과 유추, 직관적이며 심미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육감에 뛰어난 반면 수학에 대한 아라비아인의 자세는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알 자브르라는 말은 복원 또는 완성이라는 뜻으로 생각되는데 음의 항을 방정식의 다른 변으로 옮겨 모든 항을 양으로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무카바라 라는 말은 축소 또는 상쇄를 가리킨다. 곧, 방정식의 양 변에 있는 동류항을 소거하는 것이다(*돈키호테의 알제브리스타는 접골의사, 곧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4. 이차방정식

 

 알콰리즈미의 '대수학'의 라틴어 번역판은 수의 자릿수를 정하는 원리에 대한 짧은 서론으로 시작해서 다음 여섯개의 짧은 장에 근과 제곱과 수(\(x,\,x^{2}\)과 수)라는 세 종류의 수량으로 된 6종류의 방정식의 풀이법이 이어진다.

 짧은 세 단계로 된 이 책의 제 1장은 제곱과 근이 같은 경우\(\displaystyle\left(x^{2}=5x,\,\frac{x^{2}}{3}=4x,\,5x^{2}=10x\right)\)를 다루고 있고, 그 답으로 각각 \(x=5,\,x=12,\,x=2\)를 제시한다(근 \(x=0\)은 인정되지 않았다).

 제 2장은 제곱이 수와 같은 경우, 제 3장은 근이 수와 같은 경우를 풀고 있으나 변수항의 계수가 1과 비교하여 같은가, 큰가, 작은가의 3가지 경우를 망라하기 위해 2, 3장도 1장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보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4, 5, 6장이 더욱 흥미가 깊은 것은 세 장으로 된 이차방정식의 전형적 예제 3가지를 순서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곧

(1) 제곱과 근이 수와 같은 경우

(2) 제곱과 수가 근과 같은 경우

(3) 근과 수가 제곱과 같은 경우

이다. 그 풀이법은 특정한 예제에 응용된 '제곱의 완성'에 대해 요리책처럼 쓰여있다.

 보기를 들면 4장에서는 세 방정식$$x^{2}+10x=39,\,2x^{2}+10x=48,\,\frac{1}{2}x^{2}+5x=28$$에 대한 설명이 있고, 각각의 경우에 대해 양의 답만이 있다. 5장에는 \(x^{2}+21=10x\)하나 뿐이나 공식 \(x=5\mp\sqrt{25-21}\)에 대응하는 근 \(3,\,7\)둘 다 구하고 있다. 여기서 알콰리즈미는 판별식이라고 하는 식이 양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의하고 있다.

 6장에는 \(3x+4=x^{2}\)하나만을 다룬다. 여기에는 다시 제곱을 완성하는 순서가 증명없이 상세하게 있는데 그 과정은 답 \(\displaystyle x=1\frac{1}{2}+\sqrt{\left(1\frac{1}{2}\right)^{2}+4}\)에 해당하고 근은 하나 뿐이다. 왜냐하면 다른 한 근이 음수이기 때문이다.

 

5. 대수학의 아버지

 

 위에서 서술한 6가지 방정식은 양의 근을 갖는 1차와 2차방정식의 모든 경우를 다루고 있다. 알콰리즈미의 설명은 매우 체계적이고 철저했기 때문에 독자의 풀이법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알콰리즈미는 대수학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으나 어떤 수학 분야도 완성된 상태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아라비아 대수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해 알콰리즈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6가지 형태의 방정식에 대해 수에 관한 한 충분히 기술해왔다. 그러나 이제 수에서 설명한 것과 똑같은 문제가 기하학적으로 참임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라비아 대수에 관해서는 3가지 중요한 학설이 있다. 첫 번째는 인도의 영향, 두 번째는 메소포타미아(시리아-페르시아 전통)의 영향, 세 번째는 그리스인의 영감을 지적하는 학설이다.

 

6. 기하학의 기초

 

 알콰리즈미의 '대수학'에는 그리스의 요소가 보이나 처음 나오는 기하학적 증명은 고전적 그리스 수학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

 방정식 \(x^{2}+10x=39\)에 대해 알콰리즈미는 \(x^{2}\)를 나타내기 위해 정사각형 \(ab\)를, 정사각형 네 변에 각각 나비(높이)가 \(\displaystyle 2\frac{1}{2}\)인 직사각형 \(c,\,d,\,e,\,f\)를 덧붙였다. 여기서 큰 정사각형을 완성하려면 (점선부분) 네 구석에 각각 넓이가 \(\displaystyle 6\frac{1}{4}\)인 작은 정사각형을 더해야 한다.

 그러므로 큰 정사각형을 완성하기 위해서 \(\displaystyle6\frac{1}{4}\)의 4배인 \(25\)를 더하여 그 결과로서 큰 정사각형의 전체 넓이 \(39+25=64\)를 얻는다. 그러므로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은 8이 되고, 이것으로부터 \(\displaystyle2\frac{1}{2}\)의 2배인 5를 빼면 \(x=3\)이 된다. 이렇게 해서 4장에서 얻은 답이 옮음이 증명되었다. 5장, 6장의 기하학적 증명은 더 복잡하다.

 방정식 \(x^{2}+21=10x\)에 대해 \(x^{2}\)을 나타내기 위해 정사각형 \(ab\)를, 21을 나타내기 위해 직사각형 \(bg\)를 그렸다. 이때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bg\)로 이루어진 큰 정사각형은 \(10x\)의 넓이어야 하기 때문에 변 \(ag\), 곧 변 \(hd\)가 10이어야 한다.

 여기서 \(hd\)를 \(e\)로 이등분하고 \(hd\)에 수선 \(et\)를 그은 뒤, \(tc=tg\)가 되도록 \(te\)를 \(c\)까지 연장하고 정사각형 \(tclg\)와 \(cmne\)를 완성하면 직사각형 \(tb\)의 넓이는 직사각형 \(md\)의 넓이와 같게 된다. 그런데 정사각형 \(tl\)의 넓이는 25이고, 또 그노몬 \(tenmlg\)의 넓이는 21이다(그노몬 넓이=직사각형 \(bg\)넓이). 따라서 정사각형 \(nc\)의 넓이는 4이고, 변의 길이는 2이다. \(ec=be\)이고, 또 \(he=5\)이므로 \(x=hb=5-2\), 곧 \(x=3\)이다. 이것은 5장에서 주어진 산술적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 하나의 근 \(x=5+2=7\)은 도형을 수정해서 구하고 있고, 6장에서는 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도형을 이용하여 대수적으로 구한 답을 기하학적으로 증명한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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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