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 28-중국과 인도(2)
8. 13세기의 수학자
호너법이 중국에서는 흔한 방법이었다는 것은 송나라 후기의 다른 세 수학자가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야: 측원해경(원의 측정에 대한 해경)에는 직각삼각형의 내접 또는 방접원을 다룬다거나 이들 변과 반지름의 관계를 결정하는 170개의 문제가 있고, 사차방정식도 있었으며, 6차방정식까지 다루었다고 하나 방정식의 풀이법은 기술되지 않았다.
-진구소: 수서구장(9장으로 된 수학책)은 중국의 부정해석의 절정에 이르는 저서이고, 여기서 그가 창안한 연립합동식의 풀이법 순서가 쓰여있다. 또 호너의 각 단계를 병렬로 나열하여 71824의 제곱근을 구했다.
\(x^{2}-71824=0\)의 근 \(x\)의 첫 근삿값을 200으로 하고, 이 근에서 200을 빼서\((y=x-200)\) \(y^{2}+400y-31824=0\)을 얻었다. 이 방정식에서 \(y\)의 근삿값 60을 찾고, \(y\)에서 60을 빼 \((z=y-60)\) \(z^{2}+520z-4224=0\)을 얻었다. \(z=8\)이고 따라서 \(x=268\)이다.
-양휘: 진구소와 같은 호너법을 사용했고, 급수합, 파스칼 삼각형, 3×3, 4×4, 8×8, 9×9, 10×10 마방진에 대한 기록만이 남아있다.
9. 산술 삼각형
양휘의 책에는 주세걸의 사원옥감을 통해 출판되고 널리 알려진 급수의 합과 파스칼 삼각형의 원형을 이루는 것이 들어있다. 다음은 사원옥감에 있는 두 개의 급수들이다.$$\begin{align*}1+8+30+\cdots+n^{2}&=\frac{n(n+2)(2n+1)}{3!}\\1+8+30+\cdots+\frac{n^{2}(n+1)(n+2)}{3!}&=\frac{n(n+1)(n+2)(n+3)(4n+1)}{5!}\end{align*}$$그러나 증명이 제시되지 않았고, 그 뒤 중국에서 이런 종류의 문제는 19세기 무렵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주세걸은 합을 차분법으로 다루었는데 그 원리의 일부는 이미 7세기부터 중국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응ㄴ 주세걸 이후로 사라졌다.
사원옥감은 산술삼각형 그림으로 시작한다. 얼핏 보면 파스칼의 삼각형과 같아 보이는데 이것은 '파스칼의 삼각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1100년 무렵의 중국의 수학책 중 이항계수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언급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산술삼각형은 중국에서 그 무렵에 등장했다고 보아도 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이항계수를 근의 거듭제곱근의 풀이에 사용했다.
10. 초기 인도수학
모헨조 다로(Mohenjo Daro)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던 시대에 인도에서도 오래된 고도의 문명이 있었음을 보여주나 그 당시의 수학책은 어느 하나 남아있지 않다. 피타고라스가 그의 정리를 인도 사람에게 배웠다고 하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적어도 1000년 전에 바빌로니아 인이 그 정리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에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학책을 쓴 아라비아타(Aryabhata)가 태어났다. 그러나 이보다 오래 전에(기원전 753년 이전에) 인도에는 수학에 관련된 활동이 있었다.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인도에는 '측량사'가 있었고, 사원의 설계, 제단의 측정 및 건조와 관련해 얻은 초기의 기하학적 지식은 술바수트라스(Sulvasutras, 끈의 법칙)로 알려진 지식체계가 되었다.
술바는 측정용 끈(자)을 말하고, 수트라스는 종교적 의식이나 과학지식에 관한 법칙이나 격언을 적은 책을 뜻한다. 인도 수학은 중국의 경우보다 전통의 연속성이 크게 부족하다. 중요한 공헌은 우연히 생긴 것 같고, 그러한 공헌들은 업적잉 없는 공백 시기로 구분된다.
11. 술바수트라스
술바수트라스로 알려진 책의 번역서 셋이 모두 시의 형식으로 쓰여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파스탐바(Apastamba)라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초기의 기술 가운데는 (3,4,5), (5,12,13), (8,15,17) 또는 (12,35,37)과 같은 피타고라스의 세 수를 이루는 길이를 가진 세 개의 끈을 이용하여 직각삼각형을 만드는 법칙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세 수는 고대 바빌로니아 법칙에서 쉽게 얻을 수 있고, 따라서 술바수트라스는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파스탐바는 직사각형의 대각선의 제곱이 이웃한 두 변의 제곱과 합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정리의 이러한 형태 역시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에 견주어 아파스탐바가 찾은 또 하나의 법칙은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클리드 원론 2권에 있는 기하학적 대수의 일부와 비슷하다.
직사각형 \(ABCD\)와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만들기 위해 \(AF=AB=BE=CD\)가 되도록 긴 쪽의 변을 짧은 쪽의 변으로 나누고, 선분 \(CE\)와 \(DF\)로 이등분하는 선분 \(HG\)를 긋는다.
\(FK=HL=FH=AM\)이 되도록 선분 \(EF\)를 점 \(K\)로, 선분 \(GH\)를 점 \(L\)로, 선분 \(AB\)를 점 \(M\)으로 각각 연장하여 선분 \(LKM\)을 긋는다. 여기서 선분 \(LG\)와 같은 길이의 대각선을 갖고, 짧은 변이 선분 \(HF\)인 직사각형을 만든다. 그러면 이 직사각형의 긴 변이 구하는 정사각형의 한 변이 된다는 것이다. 술바수트라스의 기원과 연대는 추측에 지나지 않아서 고대 이집트의 측량과 관계가 있는지, 뒤의 그리스 제단의 배적문제와 관계가 있는지 말할 수 없다. 그 연대는 기원전 8세기~서기 2세기로 약 1000년 사이로 추정된다.
12. 싯단타
2세기 무렵에 막을 내린 술바수트라스의 시대는 '싯단타스(Siddhantas)', 곧 천문학 체계의 시대로 이어졌다. 굽타 완조 체제(290년)가 산스크리스트 문화의 부흥을 바탕을 마련했는데, 싯단타스는 그 문예부흥의 산물이었다.
싯단타스는 파울리스 싯단타, 수리아 싯단타, 바시시스타 싯단타, 파이타마하 싯단타, 로만카 싯단타 다섯개의 서로 다른 저서로 되어있고 수리아 싯단타 만이 현재 전해진다.
수리아 싯단타는 태양신 수리아에 관한 책이고 주요 천문학적 교의는 분명히 그리스의 것인데 인도 민간 전승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380년 무렵에 쓰인 파울리스 싯단타는 인도의 수학자 바라하미히라가 요약했는데 아라비아의 학자 알 비루니는 그것을 종종 인용했고, 그리스 기원 또는 그 영향을 시사한다.
일련의 싯단타는 일반적으로 4세기 후기 또는 5세기 초기에 쓰였다고는 하나 그것에 실린 지식의 출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인도 학자들은 각 싯단타 저자의 독창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나 서구의 저술가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파울리 싯단타는 일련의 싯단타가 쓰여졌다고 추정되는 연대보다 조금 앞서 알렉산드리아의 점성술사 바울의 책에서 상당 부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싯단타의 일부와 톨레미의 삼각법과 천문학 사이에 분명히 드러나는 비슷한 점을 쉽게 설명했다(예: 파울리 싯단타에서 \(\pi\)값으로 \(\displaystyle 3\frac{117}{1250}\)을 사용했고, 이는 톨레미의 60진법 3;8,30과 본질적으로 일치하는 값이다).
인도인이 알렉산들이아의 헬레니즘 문화에서 삼각법의 지식을 얻었다고 해도, 그들은 손에 넣은 제재에 아주 중요한 새로운 형식을 가했다.
톨레미의 삼각법은 원과 현과 그 현에 대한 중심각 사이의 함수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나 싯단타의 저자는 이것을 현의 '반'과 중심각의 '반' 사이의 대응관계에 대한 연구로 바뀌었다. 따라서 분명히 인도에서 각의 사인이라는 현대 삼각법의 기초가 생긴 것이다. 사인함수의 도입은 싯단타가 수학사에서 이룬 중요한 공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반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그리스인이 아닌 인도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13. 아라비아타
싯단타가 저술되고 나서 바로 뒤인 6세기에 이것과 같은 내용을 다룬 책을 쓴 인도의 두 수학자가 있었다. 그 중 나이가 많고 중요한 인물은 아라비아타이고, 그가 499년에 쓴 아라비아타는 천문학과 수학을 다룬 시 형식의 얇은 책이다. 이 책은 8세기 전 그리스에서 유클리드 원론의 위치와 다소 비슷하나, 비슷한 점 이상으로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원론이 순수수학을 고도의 추상, 명석한 논리구조, 명백한 교육적 의도에서 잘 짜놓은 것을 종합한 반면 아라비아타는 123연의 운문으로 된 짧은 서사집이고, 천문학과 구적법에 이용되는 계산방법을 보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논리적 또는 연역적 방법론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아라비아타의 \(\displaystyle\frac{1}{3}\)은 ganitapada, 곧 수학에 관한 것이다. 그 부분은 10의 거듭제곱의 10번째 자리까지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정수의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다음에 구적법에 대해 설명하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내용이다.
(삼각형 넓이는 \(\displaystyle 밑변\times 높이\times\frac{1}{2}\), 삼각뿔의 부피는 \(\displaystyle 밑면넓이\times 높이\times\frac{1}{3}\), 원의 넓이는 \(원둘레\times 반지름\), 구의 부피는 대원의 넓이와 이 넓이의 제곱근의 곱) 다음 명제는 인도학자가 긍지를 갖고 지적하는 것이다.
100에 4를 더하고 8배하여 62,000을 더해라. 그 결과는 지름이 20,000인 원둘레의 근삿값이다. 여기서 \(\pi\)의 값으로 3.1416을 썼음을 알 수 있으나 그 값은 원래 톨레미가 사용했던 값임을 생각해야 한다. 아라비아타가 여기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그가 반지름의 단위 수로 1만을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하다.
아라비아타에는 등차수열, 이차방정식, 복리(등비수열)에 관한 내용도 있으나 이차방정식에 관한 지식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14. 인도 숫자
아라비아타의 후반은 시간과 계산과 구면삼각형에 관한 것이다. 그 중 10진 자릿수는 후세 수학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겼다.
아라비아타가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모르나 "자릿수 각각은 앞의 자릿수의 10배 이다"라는 말은 자리 원리의 응용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자리값'은 바빌로니아 기수법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인도인은 인도에서 이용되던 정수의 10진법에 그 원리(자리값)를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던것 같다. 인도의 기수법의 발전은 그리스에서 보이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기수법은 더욱 경제적인 기수법으로 서서히 변화했고, 인도의 숫자는 어쩌면 인도 사회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결과였는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것은 처음에 인도와 서쪽 페르시아의 교류에 의해 발전했을 것이다. 또는 동쪽의 중국과의 교류 때문일 수도 있다.
인도 숫자에 대한 첫 언급은 662년 시리아의 주교 세베루스 세보크트의 책에서 보인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테네에 있는 여러 철학파 학교의 문을 닫은 뒤, 일부 학자는 시리아에 가서 그리스 학문의 중심을 세웠다. 세보크트는 일부 학자가 비그리스적 학문에 대해 보인 오만한 태도에 대해 분개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도의 천문학, 계산법, 말로 다 할수 없는 계산을 알게 해 그들 말고도 박식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0의 기록은 876년의 비문 가운데 보인다. 0의 기원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어 인도에서 10진법의 자리기수법이 확립된 뒤 전파되었다는 학설이다. 자리 기수법에서 자릿수로서의 0의 역사는 동반구, 서반구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난다.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은 달력의 날짜간격을 표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기본 기수가 20, 또 보조기수가 5(바빌로니아의 경우 60과 10)인 자리 기수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인도의 기수법에 0을 나타내기 위해 둥근 거위 알이 도입되어 정수의 현대 기수법이 완성되었다.
중세 인도에서 쓰이던 10개의 숫자(0~9)의 형태는 오늘날 사용하는 형태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는 하나 기수법의 원리는 확립되었다. 일반적으로 인도 방식이라 하는 이 새로운 기수법은 모두 오래 전부터 있었던 3가지 기본원리, 곧 '1. 기수로서 10', '2. 자리 기수법', '3. 10개의 각 숫자에 대한 기수'의 간단한 새로운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 원리 모두 인도인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나 현대적 기수법을 형성하는데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킨 것은 인도인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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