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수학사(상)2022. 9.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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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 29-중국과 인도(3)

 

 

15. 인도의 삼각법

 

 정수에 대한 현대적 기수법의 발전은 수학 역사에서 인도가 이룬 두 가지 중요한 이바지 가운데 하나였다. 또 하나의 이바지는 그리스의 현표를 대신하는 삼각법의 사인함수에 해당하는 것을 도입한 것이다.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인함수의 표는 일련의 싯단타와 아라비아타에 있다.

 여기에는 \(90^{\circ}\)까지의 각의 사인(sine)이 각각 \(\displaystyle 3\frac{3}{4}^{\circ}\)의 눈금으로 24등분 되어 실려있다. 

 같은 길이 단위로 원호와 사인을 나타내기 위해 반지름을 3438로 하고 원둘레를 \(360\times60=21600\)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pi\)의 값이 톨레미의 값과 유효숫자 네 자리까지 일치함을 뜻하고, 다른 곳에서 아리아바타는 \(\pi\)대신 \(\sqrt{10}\)의 값을 사용했다.

 \(\displaystyle 3\frac{3}{4}^{\circ}\)의 사인에 대해 싯단타와 아리아바티야는 호의 단위수, 곧 \(\displaystyle 60\times 3\frac{3}{4}=225\)를 취했다. 현대 용어로 '작은 각의 사인은 그 각을 호도로 잰 각과 거의 같다'로 나타낼 수 있다. 사인표에서 다음 항을 구하기 위해 인도인은 다음의 점화식을 사용했다.

 \(n=1\)에서 \(n=24\)까지의 수열에서 \(n\)항의 사인값을 \(s_{n}\), 처음 \(n\)개의 사인의 합을 \(S_{n}\)으로 나타내면$$s_{n+1}=s_{n}+s_{1}-\frac{S_{n}}{s_{1}}$$이 된다. 이 공식으로$$\sin7\frac{1}{2}^{\circ}=449,\,\sin11\frac{1}{4}^{\circ}=671,\,\sin15^{\circ}=890$$을 비롯하여 \(\sin90^{\circ}=3438\)까지 쉽게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값은 싯단타나 아리아바티야의 수표에 열거되어 있다.

 

17. 인도의 곱셈

 

 인도의 삼각법은 천문학에 유용하고 정확한 도구였다. 인도인이 어떻게 위(사인)의 점화식을 얻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차분방정식과 보간법에 대한 직관적인 접근방법으로 그런 법칙을 발견한 것 같다고 시사되어 왔다. 인도 수학은 그리스 기하하그이 엄격한 합리주의와 대조적으로 자주 직관적이라고 이야기된다. 인도 삼각법이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어도 인도인은 간단한 구적법을 알고 있어서 그리스 기하학이 불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는 곡선, 원뿔곡선에 대한 연구의 흔적이 없다. 그 대신 인도 수학자들은 일반적인 산술연산에 관한 것이든 일반적인 방정식이나 부정방정식의 풀이법에 관한 것이든 수에 관한 연구에 집중했다. 인도에서는 오늘날 우리와 거의 마찬가지 방식으로 덧셈과 곱셈을 하였다. 다음과 같이 곱셈을 한다. 이러한 곱셈을 겔로시아 곱셈 또는 창살 격자문 곱셈이라고 한다.

빨간선, 파란선을 따라 곱셈을 한다

 위 그림은 \(34\times456=15504\)의 격자곱셈을 나타낸 것이다. 곱해지는 수 456은 격자 위에, 곱하는 수 34는 격자 왼쪽에 쓴다(1의 숫자를 밑에, 10의 숫자를 위에 쓴다). 다음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더하는데 1의 자리수인 경우는 그대로, 10의 자리수인 경우는 그 자리에는 1의 자릿수만 남기고, 그 앞 자리수에 1을 더해준다. 위 그림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더한다면 각각 1, 4, 14, 10, 4인데 1은 1의 자리수이므로 그대로 두고, 4와 14의 10의 자리수 1을 더해 5가 되고, 14에서 남은 4에 10의 자리수 1을 더해 5가 되고, 10에서 남은 0은 그대로 두고, 마찬가지로 4 또한 그대로 둔다. 그러면 1, 5, 5, 0, 4이고, 이 순서대로 수를 나열하면 34와 456을 곱한 15504가 된다.

 같은 방법으로 다음이 성립함을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빨간선, 파란선을 따라 곱셈을 한다

18. 장제법

 

 앞의 겔로시아 곱셈은 인도에서 발생되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나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곱셈법은 인도에서 중국, 아라비아로 전해졌고, 아라비아를 통해 이탈리아로 전해져 '겔로시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라비아인과 이탈리아인의 영향을 받은 훗날 유럽인은 대부분의 산술적 방법을 인도인에게 배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워나가기 또는 갤리법으로 알려진 장제법도 인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44977을 382로 나누자.

왼쪽: 오늘날 쓰이는 방법, 오른쪽: 갤리법

  갤리법은 현대의 방법과 비슷하나 나누어지는 수를 가운데 놓는 점이 다르다. 왜냐하면 숫자를 계속 지우고 차를 뺀 수의 아래가 아닌 위에 두어 뺄셈을 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283이 아래가 아닌 오른쪽 위에 나타난다. 

 수의 거듭제곱근을 구하는 것도, 몇년 뒤의 '파스칼의 삼각형'에서 나타나는 이항정리와 관련해 생각하면 갤리법과 비슷한 방법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저술가들은 그들이 진술한 것에 대해 계산법이나 증명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와 중국의 영향으로 거듭제곱근 문제를 풀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리스인은 이것을 폭 넓게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 이전에 그 성질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11세기 아라비아인이 '구거법'을 처음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렸다.

 

19. 브라마굽타

 

 인도 수학에 통일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도 수학은 연대를 결정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인도의 저술가는 앞선 사람을 언급하는 일이 드물었고, 수학을 연구하는데 놀랄 만큼 독립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628년에 활동하던 브라마굽타는 아리아바타와 공통점이 거의 없고 \(\pi\)에 대해서 실제 값으로 3, 적절한 값으로 \(\sqrt{10}\)을 들고 있으나 이것들은 아리아바타의 더 정확한 값과 다르다.

 브라마굽타의 잘 알려진 저서 '브라마스푸타 싯단타'의 삼각법에서 반지름으로 아리아바타의 3438 대신 3270을 사용했다. 여기서 그는 옳은 답과 틀린 답을 나열하여 기록했다.

 이등변삼각형의 대략적인 넓이는 밑변의 반에 같은 변의 한 쪽을 곱해서 얻었다. 또한 밑변이 14이고 다른 변이 각각 13, 15인 삼각형에 대해 대략적인 넓이를 구하기 위해 밑변의 반에 다른 두 변의 산술평균을 곱하여 구했다. 정확한 넓이를 구하기 위해 브라마굽타는 아르키메데스-헤론의 공식을 이용했다. 또한 삼각형에 외접하는 원의 반지름에 대해 삼각법으로 얻을 수 있는 정확한 답$$2R=\frac{a}{\sin A}=\frac{b}{\sin B}=\frac{c}{\sin C}$$에 해당하는 것을 얻었으나 이것은 현에 대해 톨레미가 얻은 결과를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브라마굽타의 업적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사변형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헤론의 공식을 일반화한 점이다. 공식$$K=\sqrt{(s-a)(s-b)(s-c)(s-d)}\,\left(s=\frac{a+b+c+d}{2}\right)$$(여기서 \(a,\,b,\,c,\,d\)는 각 변의 길이)에는 그(브라마굽타)의 이름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 공식은 '원에 내접하는' 사변형의 경우에만 성립한다. 임의의 사변형에 대한 옳은 공식은 다음과 같다.$$K=\sqrt{(s-a)(s-b)(s-c)(s-d)-abcd\cos^{2}\alpha}\,\left(s=\frac{a+b+c+d}{2}\right)$$(\(\alpha\)는 마주보는 두 내각의 합의 반) 사각형의 대략적인 넓이를 구하는 공식으로 브라마굽타는 마주보는 변의 산술평균의 곱이라는 그리스 시대 이전의 공식을  사용했다(예: \(a=25,\,b=25,\,c=25,\,d=39\)인 사각형의 대략적인 넓이는 800이다).

 

20. 브라마굽타의 공식

 

 브라마굽타가 대수에서 이룬 공헌은 위의 구적법에 관한 공식보다도 중요하다. 이는 이차방정식에서 음의 근이 하나 있는 경우도 포함하여 두 근을 구하는 일반적인 풀이법을 보였기 때문이다. 음수와 0에 대한 체계화된 산술은 그의 저작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음의 양에 관한 공식에 해당하는 것은$$(a-b)(c-d)=ac+bd-ad-bc$$와 같은 그리스의 뺄셈에 관한 기하학적 정릴르 통해 알려졌으나, 인도 사람은 그것을 양수와 음수에 관한 수치공식으로 바꾸었다. 더구나 그리스 사람은 무(無)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으나 수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은 반면 인도인은 그 무를 수로 해석했다. 그러나 여기서 브라마굽타는 \(0\div0=0\)이라고 주장해 상황을 다소 그르쳤고, \(a\div0\,(a\neq0)\)이라는 귀찮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인과 달리 인도인은 무리수도 수로 간주하였다. 이것은 대수에 큰 도움이 되었으나 수학적 통찰력의 성과가 아닌 논리적 무지의 결과였다. 

 인도의 대수는 부정해석의 발전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데 이에 대해 브라마굽타는 많은 공헌을 했다. 그의 연구 중 피타고라스 수를 찾기 위한 공식$$m,\,\frac{1}{2}\left(\frac{m^{2}}{n}-n\right),\,\frac{1}{2}\left(\frac{m^{2}}{n}+n\right)$$이 있고, 앞에서 서술한 브라마굽타의 사각형의 넓이 공식은 각, 변, 대각선, 넓이가 모두 유리수인 사각형을 찾기 위해$$\sqrt{\frac{(ab+cd)(ac+bd)}{ad+bc}},\,\sqrt{\frac{(ac+bd)(ad+bc)}{ab+cd}}$$라는 대각선의 공식과 함께 이용되었다. 그런데 각 변이 \(a=52,\,b=25,\,c=39,\,d=60\)이고 대각선이 \(63,\,56\)인 사각형에 대해 정확한 넓이 1764를 얻는데도 대략적인 넓이 \(\displaystyle1933\frac{3}{4}\)를 제시했다.

 

21. 부정방정식

 

 브라마굽타는 수학 자체를 사랑했다. 그 까닭은 그가 실용적인 면에만 관심을 갖는 기술자였다면 사각형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생각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a,\,b,\,c\)가 정수인 1차 디오판토스 방정식 \(ax+by=c\)의 일반해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 브라마굽타였다. 이 방정식이 정수해를 가지려면 \(a,\,b\)의 최대공약수가 \(c\)의 약수여야 하나 브라마굽타는 \(a,\,b\)가 서로소이면 위 방정식의 모든 해는 임의의 정수 \(m\)에 대하여 \(x=p+mb\), \(y=q-ma\)로 됨을 알고 있었다. 또 그는 펠 방정식으로 알려진 디오판투스 방정식 \(x^{2}=1+py^{2}\)도 시사했다. 이 방정식은 아르키메데스의 소를 기르는 문제에서 처음으로 나타났고, 그 중 몇 가지 경우는 브라마굽타와 같은 지역 출신 바스카라가 해결했다.

 브라마굽타가 1차 디오판투스 방정식의 모든 정수해를 제시하여 그의 이름을 크게 높였던 반면, 디오판투스 자신은 부정방정식의 특수해를 하나 제시하는 것에 만족했다. 

 브라마굽타가 디오판투스와 똑같은 보기를 몇 개 이용했다는 사실은 인도에서 그리스 또는 바빌로니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20. 바스카라

 

 바스카라는 펠 방정식의 일반해를 제시하고 0으로 나누는 문제를 고찰함으로써 브라마굽타의 연구의 여러 빈틈을 메웠다.

 바스카라의 '비자가니타'에서 0으로 나눈 몫은 무한대라는 명제가 기록되어있다. 바스카라는 인도의 마지막 중세 수학작이고, 가장 잘 알려진 저서로 (그의 딸의 이름을 딴) 릴리바티가 있다. 릴리바티에는 브라마굽타와 그 밖의 수학자에게서 취한 문제와 자신(바스카라)이 찾아낸 새롱누 지식을 집대성했다. 

 인도 수학자들은 그들에게 흥미가 있는 면만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수론, 부정해석). 그러나 현대 수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인함수의 삼각법, 정수에 대한 지금의 기수법 이 두 가지에만 기여했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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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