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 24-그리스의 삼각법과 측정법(3)
10. 톨레미의 다른 저작
톨레미의 저작에는 알마게스트 외에도 8권으로 된 '지리학'이 있다. 이것은 '알마게스트가' 천문학자들에게 필독서였던 것처럼 지리학자들에게는 성서(성경)와 같은 것이었다.
지리학에는 오늘날 쓰이는 것과 같이 씨줄, 날줄의 체제를 도입하고, 또 투영도법을 해설하고 8800개에 이르는 마을과 강과 그밖에 특징이 있는 곳을 정리한 목록을 싣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날줄을 정하는 만족할 만한 방법이 없어서 상당한 오차를 피할 수 없었고, 지구의 크기를 어림셈할 때 톨레미는 서투른 선택을 했는데 에라토스테네스의 252,000 스타디온이 아닌 폼페이오스와 키케로의 스승인 스토아 학파의 포시도니우스가 제창한 180,000스타디온을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콜럼버스와 그 뒤의 향해자들은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해를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톨레미의 지리학의 방법은 실제보다 이론에서 뛰어났다. 논문 '아날렘마'에서는 정사영도법을, 또 다른 논문 '평면구혀도'에는 구면 뒤의 점을, 극점에서 평면 뒤로 뻗는 직선에 의해 투영시키는 평사도법을 다루었다.
11. 광학과 점성술
톨레미는 '광학'이라는 책을 썼고, 아라비아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불완전하지만 지금도 전해진다. '광학'은 시각의 물리학과 심리학, 거울의 기하학, 굴절법칙에 대한 초기의 시도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톨레미는 공기 속에서 물(그리고 공기에서 유리, 물에서 유리)로 진행할 때 \(10^{\circ}\)에서 \(80^{\circ}\)까지 \(10^{\circ}\)마다 입사각 \(i\)에 대한 굴절각 \(r\)의 표를 만들었고, 이때 \(r=ai+bi^{2}\)의 형태로 나타내었다(\(r\)값의 2계차분은 항상 일정하다).
실제 입사각 \(10^{\circ}\)와 \(80^{\circ}\)에 대하여 그는 굴절각을 각각 \(8^{\circ}\)와 \(50^{\circ}\)로 보았고, 이계 차분은 모두 \(\frac{1}{2}^{\circ}\)이다.
다각형 변수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공식에서 이계차분은 일정했고, 아마 톨레미는 이 공식의 영향을 받아 굴절법칙을 삼각법이 아닌 이차방정식으로 구했을 것이다.
삼각법은 그것이 만들어지고 나서 1500년 동안 천문학과 지리학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다가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굴절을 포함한 그 밖의 여러 물리학 분야에 응용되기에 이른다.
톨레미의 저작 '테트라비블로스'는 고대 세계의 대부분이 매달렸던 일종의 별(항성) 종교를 묘사하고 있다. 황금시대가 끝나면서 그리스의 수학과 철학은 칼데아(페르시아만 연안에 있던 고대 왕국)의 산술, 점성술과 맺어졌고, 그 결과 생겨난 일종의 사이비 종교가 신화의 오랜 배척으로 생긴 틈을 메웠다.알마게스트가 그리스 종합기하학을 정교하게 사용한 이치가 통하는 세련된 노작이라면, 테트라비블로스는 원시적인 바빌로니아 산술 체계를 채용하는 점에서 당시 사이비 과학의 전형이었다. 이것은 당시 일반 대중이 합리적인 사고보다 산술적인 계산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 연역기하학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라비아인에게 정복되고 나서까지 환영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2. 알렉산드리아의 헤론
헤론은 그의 이름이 붙은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K=\sqrt{s(s-a)(s-b)(s-c)}\)으로 잘 알려져있고, 여기서 \(a,\,b,\,c\)는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 \(s=\frac{a+b+c}{2}\)이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그 이전에 아르키메데스가 '헤론의 공식'을 알고 있었고, 증명도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헤론의 '측량술'에 있는 증명이 가장 오랜 것이다. 오늘날 헤론의 공식은 보통 삼각법으로 유도하는데, 헤론의 증명은 전통적인 기하학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기하학'이라는 말은 본래 '토지의 측량'을 뜻하나 유클리드의 원론과 아폴로니우스의 원뿔곡선과 같은 고전 기하학은 세속의 측량과 거리가 있다.
토지 형태의 연구에는 분명히 두 단계(산술(수의 이론)과 계산술(계산의 기술)의 구별에 상당하는)가 있었다. 그 하나는 매우 합리적인 기하학이었고, 또 하나는 실용적인 측지학이라고 하는 편이 나은 그런 것이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기하학의 능력이 모자라는 대신 측지학에서 많은 역량을 발휘했고, 그 의미에서 헤론의 수학은 바빌로니아형 수학이었다.
고전 기하학과 헤론의 측량법의 차이는 그의 또 하나의 저서 '기하학'에서 다루고 해결하는 몇 가지 문제로 설명된다.
그 하나는 원의 지름, 둘레, 넓이의 합이 주어졌을 때, 그 세 값을 구하는 문제이고 에우독소스의 원칙에 따르면 이 문제는 다루는 세 양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이론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칙에 따르지 않는 수량적 관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헤론은 이 문제를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 풀지 않고 그리스 이전의 방법에서 실마리를 얻어 합이 212로 되는 특정한 경우를 선택했다. 그의 풀이법은 절차만 있고 논리는 없는 고대의 조리법과 같았다. 헤론은 양의 차원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답의 유일성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13. 가장 짧은 거리의 원칙
헤론은 모든 형태의 계측(측지학 뿐만 아니라 광학과 기계학)에 관심이 있다. 빛의 반사법칙은 유클리드와 아리스토텔레스도 알고 있었으나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는 자연현상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에서 나온 귀결임을 보인 것은 헤론이었다.
그는 그것을 반사광학에서 간단한 기하학 논법으로 보였다.
곧 빛이 \(S\)에서 거울 \(MM'\)을 거쳐 관찰자의 눈 \(E\)에 다다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에 따라 빛이 가장 짧은 거리를 간다고 생각하면 각 \(SPM\)과 각 \(SPM'\)이 같을 때 경로 \(SPE\)는 가장 짧다. 어떠한 경로 \(SP'E\)를 택해도 \(SPE\)보다 짧지 않은 \(SQS'\,(SQ=QS)\)을 \(MM'\)에 수직으로 긋고, 경로 \(SPE\)와 \(SP'E\)를 견주어보면 분명해진다. 곧 경로 \(SPE\)와 \(SP'E\)의 길이는 각각 \(S'PE\)와 \(S'P'E\)와 같은데 \(S'PE\)는 직선(각 \(MP'E\)는 각 \(MPS\)와 같기 때문)이므로 \(S'PE\)가 가장 짧은 경로로 되는 것이다.
과학서에서 헤론은 저서 '기체장치'에 기록된 원시적인 증기기관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그는 유체의 특성과 간단한 기계의 원리에 기초한 여러가지 노리개와 기계 장치, 그리고 온도계의 전신을 발명한 사람으로서도 알려져 있다.
14. 그리스 수학의 쇠퇴
히파르쿠스에서 톨레미까지 3세기에 걸친 기간은 응용수학이 우위에 있을 때인데 헤론의 저서는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공과대학 학생의 공책과 비슷하다. 이 시기에는 천문학, 지리학, 광학, 역학에서는 진보가 있었지만 수학에서는 중요한 발전이 없었다. 그나마 삼각법에 발전이 있었으나 기껏해야 천문학의 요구에 부응해 측량에 응용하는 정도의 초등기하학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톨레미의 삼각법이 히파르쿠스, 아폴로니우스, 아르키메데스의 것보다 진보했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더구나 이론적 고찰을 특징으로 한 에우독소스에서 아폴로니우스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진 수학의 급속한 발전이 여기 와서 끝난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응용으로 흐른 경향이 쇠퇴의 원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그 쇠퇴가 그리스의 기하학적 대수의 불완전함과 어려움에서 온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로마에서 불어온 한 숨결 탓으로 돌린다.
삼각법과 측량법이 활발히 쓰이던 시기가 실제로 쇠퇴의 시간은 아니었을지라도, 진보를 결여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지만 현대를 잇는 다리 구실을 했던 인도와 아라비아 학자를 끌어들이게 한 것은 바로 그리스 수학의 이러한 측면이었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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