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수학사(상)2022. 7. 6. 08:00
반응형

수학사 5-이오니아와 피타고라스 학파(1)

 

 

1. 그리스 문명의 기원

 

 이집트(나일강), 메소포타미아의 하천 문명이 쇠퇴하고,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뀔 때 지중해 연안 일대에서 새로운 문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기원전 800년~기원후 800년까지의 이 문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연안시대라고 한다. 나일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지적 지도력이 옮겨갈 때 확실한 단절이 있던 것은 아니다. 연안시대 초기를 그리스 시대(the Hellenic era), 그 이전의 문화를 그리스 이전(pre-Hellenic)이라고 한다.

 그리스 수학에 대한 자료는 기원전 6세기부터 존재한다. 이 시기에 탈레스와 피타고라스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초기 수학의 업적이 이 둘의 돌려졌고, 실제로는 업적의 근거에 대한 기록이 없다. 참고로 탈레스는 "너 자신을 알라",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 이다"라는 말은 남겼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스 세계의 중심은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로 둘러싸인 지역이었는데 그리스 문명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기원전 600년까지 그리스 식민지는 흑해 연안과 지중해 연안을 따라 대부분 흩어져 있었다.

 수학에서 새로운 물결은 이러한 주변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연안의 식민지, 이오니아 주민들에게는 개척자 특유의 대담함과 풍부한 상상력이 있었고, 두 중요한 하천 유역에 상당히 가까이 살았다.

 

2. 탈레스

 

 고대부터 세상의 평판은 탈레스를 뛰어난 현자로, 제 1의 철학자(그리스 7현인의 첫 번째)로 여기고 있다. 탈레스는 이집트와 칼데아(바빌로니아)의 학생으로 간주되었다. 탈레스의 정리로 알려진 명제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다"는 그가 바빌로니아를 여행할 때 배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설은 더 나아가 그 정리의 몇 가지 증명까지도 그의 업적으로 돌리고 있다. 그 때문에 탈레스는 최초의 참된 수학자, 곧 기하학의 연역구조의 창시자로 자주 일컬어지고 있고, 심지어 다음의 네 가지 정리도 탈레스가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I. 원은 지름으로 이등분된다.

II.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

III. 두 직선이 만날 때, 그 맞꼭지각은 서로 같다.

IV. 두 삼각형의 대응하는 한 변과 두 각이 각각 서로 ㄷ같으면 그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

 

 그러나 이 업적을 증명할 만한 고대 문서는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은 그리스인들이 기하학을 논리적 구조 위에 세운 것을 널리 인정하나 탈레스가 걸음을 내디딘건지, 그 뒤(2세기 뒤)의 사람이 내디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된다.

 

3.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마그나 그라에키아(이탈리아 동남 해안지방 도시 크로튼)에 정착해서 비밀조직을 만들었는데 수학적, 철학적 기반을 제외하면 오르페우스 종파와 비슷했다.

 피타고라스가 어떤 사람인지 모호했고, 따라서 피타고라스의 업적이라기 보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공헌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 당시(고대)에는 명예를 모든 스승에게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상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엄격한 규범을 갖고 있었다. 그 예로 채식과 콩을 먹어야 했고, 규율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처세술의 도덕적 기반은 철학과 수학의 탐구'라고 확신하고 주장한 것일 것이다. 

 철학(지혜를 사랑함)과 수학(배워서 잘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 자체도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지적 활동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산술, 기하학은 주로 수치 적용과정을 특정한 사항에 응용하는 연습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학은 일상생활의 일 보다도 '지혜에 대한 사랑'과 더욱 밀접하였다. 그 이후 수학은 이런 경향을 계속 유지했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이러한 방향으로 어느 정도까지 나아갔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적어도 어떤 저명한 학자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이룩한 중요한 수학적 업적 모두를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할 정도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영혼의 정화'라는 종교의식을 행했고, 철학과 수학의 조화나 신비함도 종교적인 의식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이전이나 이후에 수학이 생활이나 종교에서 피타고라스의 시대만큼 큰 구실을 한 시대는 없었다.

 

4. 피타고라스 학파의 오각별

 

 피타고라스 학파의 좌우명은 "만물은 수 이다(All is number)"라고 전해진다. 피타고라스의 이름이 붙어있는 정리는 바빌로니아인의 정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처음으로 증명했으나 이 추측을 입증할 만한 수단이 없다. 

 최초 피타고라스 학파 구성원들은 바빌로니아 기하학에 정통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에우데무스-프로클로스의 주석은 우주도형(정다면체)의 작도를 피타고라스 학파의 업적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는 황철강(이황화철)같은 결정에서 볼 수 있으나 원론 8권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학파가 3개의 정다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십이면체만 알았다고 한다. 참고로 정십이면체는 12개의 정오각형으로 되어있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정오각형의 성질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각별(오각형에 대각선을 5개 그어 만든 도형)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상징이고, 바빌로니아 미술에서 사용되었다. 이 사실로 보아 그리스 이전의 수학과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학의 연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오각형 ABCDE에서 대각선을 5개 그으면 그 대각선들은 점 A', B', C', D', E'에서 만나고, 이 점들도 정오각형을 만든다. 

 이 정오각형에서 삼각형 BCD'이 이등변삼각형 BCE와 닮은 것과, 또한 그림 속에 합동인 삼각형이 많이 있고, 대각선의 교점 A', B', C', D', E'은 각 대각선을 독특한 방식으로 나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각각의 경우 대각선의 교점은 하나의 대각선을 서로 다른 두 개의 선분으로 나누는데 전체 대각선의 길이와 긴 선분의 비는 긴 선분과 짧은 선분의 비가 된다. 이렇게 대각선을 나누는 방법을 황금분할(golden section)이라고 한다.

 케플러는 다음의 서정적 문장을 썼고, 그때부터 황금분할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하학에는 두 개의 보물이 있다. 하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이고 또 하나는 선분의 중외비이다.

 

 첫 번째를 금에 비유하고 두 번째를 귀중한 보석으로 이름 붙인다.

 고대 그리스인은 이 분할에 금방 익숙해져 '선분을 중외비로 나눈다'라는 표현을 간단하게 '분할'이라고 한다. 분할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는 '자기증식'이다.

 점 \(P_{1}\)이 선분 \(RS\)를 황금비로 나누고 \(RP_{1}\)이 긴 경우, \(RP_{2}=P_{1}S\)가 되도록 점 \(P_{2}\)를 놓으면 선분 \(RP_{1}\)은 다시 점 \(P_{2}\)로 황금분할된다. 계속하여 \(RP_{2}\)위에 \(RP_{3}=P_{2}P_{1}\)이 되도록 점 \(P_{3}\)을 놓으면 선분 \(RP_{2}\)는 점 \(P_{3}\)에서 또한 황금분할된다. 이 과정은 계속 반복할 수 있고, 그 결과 점 \(P_{n+1}\)로 황금분할되는 선분 \(RP_{n}\)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초기 피타고라스 학파가 선분을 중외비로 나눌 수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 나눌 수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때 필요한 작도는 이차방정식의 풀이법의 하나와 같다. 위 선분 그림에서 \(RS=a\), \(RP_{1}=x\)라 하면 황금분할의 성질에 의해 \(a:x=x:(a-x)\)이고, 식 \(x^{2}=a^{2}-ax\)를 얻는다.

 피타고라스는 이차방정식의 풀이법을 바빌로니아인에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차방정식은 \(a\)가 유리수일 때, 유리수근을 갖지 않는다. 피타고라스는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바빌로니아 방법이 아닌 유클리드 원론 2권 11, 6권 30의 방법과 비슷한 기하학적 풀이법을 이용했을 것이다.

 선분 \(AB\)를 중외비로 나누기 위해 유클리드는 먼저 선분 \(AB\)위에 정사각형 \(ABCD\)를 작도했다. 그리고 선분 \(AC\)를 점 \(E\)로 이등분하여 선분 \(EB\)를 긋고, 직선 \(CEA\)를 위로 연장해 \(EF=EB\)가 되도록 했다. 정사각형 \(AFGH\)가 완성되면 \(AB:AH=AH:HB\)가 되고 따라서 점 \(H\)가 구하는 점이 된다.

 만약 피타고라스 학파가 '만물을 수'라는 강한 신념을 가진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했다면, 순수 기하학으로 어떻게 길을 내어주고 그것을 깊게 연구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반응형
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