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수학사(상)2022. 7. 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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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 4-메소포타미아(2)

 

 

6. 이차방정식

 

 다음은 바빌로니아의 이차방정식 문제이다. 

 정사각형의 넓이에서 한 변의 길이를 빼고서 14,30이 될 때 그 정사각형의 변의 길이를 구하여라. 이 문제의 풀이는 \(x^{2}-x=870\)의 해를 구하는 것과 같다(\(870=14\times60+30\)).

 먼저 1의 절반을 취하면 0;30이 되고, \(0;30\times0;30=0;15\)가 되는데, 이것을 \(14,30\)에 더하면 \(14,30;15\)가 된다. 이것은 \(29;30\)의 제곱이다. 여기서 \(0;30\)을 \(29;30\)에 더하면 30이 되는데 이것이 구하는 정사각혀으이 한 변의 값이다. 

 위 바빌로니아 문제의 풀이는 이차방정식 \(x^{2}-px=q\)의 근을 구하는 공식 \(x=\sqrt{\left(\frac{p}{2}\right)^{2}+q}+\frac{p}{2}\)와 완전히 같다.

 다른 문제에서는 방정식 \(x^{2}+7x=6;15\)의 각 항에 11을 곱해 \((11x)^{2}+7(11x)=1,8;45\)로 바꾼 뒤 표준형 \(x^{2}+px=q\)로 변형하고 있다. 곧, 이것은 \(11x=y\)로 놓으면 이차방정식의 표준형이 된다. 따라서 \(y=\sqrt{\left(\frac{p}{2}\right)^{2}+q}-\frac{p}{2}\)로 구해지고, \(x\)의 값도 결정된다. 

 \(p,\,q\)가 양수일 때 \(x^{2}+px+q=0\)꼴의 이차방정식을 푸는 것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러한 방정식이 양의 근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중세, 근세 초기까지 이차방정식은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만 분류되었다.$$(1)\,x^{2}+px=q,\,(2)\,x^{2}=px+q,\,(3)\,x^{2}+q=px$$ (1), (2)는 앞에서 다루었고 (3)은 연립방정식 \(x+y=p\), \(xy=q\)에 해당한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이 연립방정식 \(xy=a\), \(x\pm y=b\)를 1차방정식 \(x\pm y=b\), \(x\mp y=\sqrt{b^{2}\mp4a}\)로 바꾸고 변끼리 덧셈과 뺄셈을 한 번씩 하고 나서 \(x,\,y\)를 구했다. 

 \(x+y=6;30\), \(xy=7;30\)일 때 \(\frac{x+y}{2}=3;15\), \(\left(\frac{x+y}{2}\right)^{2}=10;33,45\)를 구한 다음 \(\left(\frac{x+y}{2}\right)^{2}-xy=3;3,45\), \(\sqrt{\left(\frac{x+y}{2}\right)^{2}-xy}=1;45\,\left(=\frac{x-y}{2}\right)\)를 구해서 다음을 얻고$$\left(\frac{x+y}{2}\right)+\left(\frac{x-y}{2}\right)=3;15+1;15=5,\,\left(\frac{x+y}{2}\right)-\left(\frac{x-y}{2}\right)=3;15-1;45=1;30$$을 얻고 따라서 \(x=5\), \(y=1\frac{1}{2}\)이다. 또 \(x,\,y\)는 이차방정식 \(x^{2}+7;30=6;30x\)의 두 근으로 볼 수 있다.

 

7. 삼차방정식

 

 바빌로니아인들은 이차방정시 \(ax^{2}+by=c\)를 \(y=ax\)라는 치환을 통해 표준형 \(y^{2}+by=ac\)로 바꾸었다. 이 것은 메소포타미아 대수가 유연성이 뛰어남을 뜻한다.

 이집트에는 삼차방정식을 풀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으나 바빌로니아에는 많이 있다. 

 \(x^{3}=0;7,30\)의 풀이는 세제곱, 세제곱근 수표를 이용하여 풀었다(\(x=0;30\)). 표에 없는 값에 대해서는 표의 범위 안에서 선형보간법을 이용하여 근삿값을 구했다. 

 표준형 \(x^{3}+x^{2}=a\)와 같은 삼차방정식도 \(n^{3}+n^{2}\)에 대한 표를 이용하여 풀었다. 방정식 \(x^{3}+x^{2}=4,12\)의 해는 수표로부터 6이 됨을 알 수 있고, \(144x^{3}+12x^{2}=21\)의 경우 양변에 12를 곱하고 \(y=12x\)로 치환하면 \(y^{3}+y^{2}=4,12\)가 되고, \(y=6\)이므로 \(x=\frac{1}{2}=0;30\)이다. 

 이처럼 \(ax^{3}+bx^{2}=c\)형태의 삼차방정식은 각 항에 \(\frac{a^{2}}{b^{3}}\)을 곱해서 \(\left(\frac{ax}{b}\right)^{3}+\left(\frac{ax}{b}\right)^{2}=\frac{ca^{2}}{b^{3}}\)을 얻고 \(y=\frac{ax}{b}\)로 치환해 표로부터 \(x\)의 값을 구한다.

 한편 바빌로니아인들은 일반적인 삼차방정식 \(ax^{3}+bx^{2}+cx=d\)를 \(px^{3}+qx^{2}=r\)의 형태로 바꾸었다는 기록은 없다.

 실제로 \(x=x'+s\)를 \(ax^{3}+bx^{2}+cx=d\)에 대입한 후 \(x'\)의 계수가 0이 되도록 \(x'\)의 계수에 대한 이차방정식을 풀어 \(s\)값을 구하면 \(px^{3}+qx^{2}=r\)의 형태로 바꿀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이차, 삼차방정식의 풀이법은 기술적 솜씨보다 관련된 대수 개념의 성숙도와 유연성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바빌로니아 수학은 방정식 \(ax^{4}+bx^{2}=c\), \(ax^{8}+bx^{4}=c\)도 이차방정식(\(x^{2},\,x^{4}\)에 대한)으로 간주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의 추상화에 도달했다.

 

8. 피타고라스 수

 

 4열로 수가 나열된 서판이 발견되었는데,

두, 세번째 열은 다음의 직각삼각형 ABC의 변 \(a,\,c\)의 값, 첫째 열은 \(\sec^{2}(\angle A)=\frac{c^{2}}{b^{2}}\)의 값이 기록되었다. 

 이것을 가지고 바빌로니아인들이 시컨트(sec)의 개념을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집트인도 바빌로니아인도 현재 사용되는 의미를 갖는 각의 측량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p,\,q(p>q)\)에 대해 \(p^{2}-q^{2}\), \(2pq\), \(p^{2}+q^{2}\)인 세 피타고라스 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림프턴 322문서. 수론의 연습문제로 볼 수 있으나 단지 직각삼각형의 각 변 위에 생기는 정사각형의 넓이를 측정하는 문제에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a=1\)이면 \(1=(c+b)(c-b)\)이므로 \(c+b\)와 \(c-b\)는 서로 역수관계에 있다. \(n\)을 임의의 60진 규칙수라 하고 \(c+b=n\)이라 하면 \(c-b=\frac{1}{n}\)이고 이때 \(a=1\), \(b=\frac{1}{2}\left(n-\frac{1}{n}\right)\), \(c=\frac{1}{2}\left(n+\frac{1}{n}\right)\)이다. \(a,\,b\,c\)에 \(2n\)을 곱하면 정수인 피타고라스 수로 바꿀 수 있다. 

 다른 서판에서 등비수열의 합 \(1+2+2^{2}+\cdots+2^{9}\)를 계산하고, 또 다른 서판에서는 \(1^{2}+2^{2}+\cdots+10^{2}\)을 계산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의 서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 처럼 특정한 경우만을 다루고 있다. 

 

9. 기하학

 

 바빌로니아에서는 기하학보다 오히려 측정에 쓸 근삿값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이집트처럼) 정확한 측정값과 근사 측정값 사이의 구별이 불분명했다. 실제로 바빌로니아인들은 기하학 문제를 응용 산술로 간주했다.

 쐐기문자 서판은 크리스트교(기독교) 시대가 시작되는 무렵까지 계속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에 수학의 발달 중심은 메소포타미아 평야에서 그리스 세계로 옮겨갔고, 헬레니즘(그리스) 시대 이전의 수학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 이 시기의 수학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 

 

10. 수학상의 단점

 

 그리스 이전의 수학에는 많은 결함이 있다. 파피루스(이집트)와 점토판(메소포타미아)에는 특정한 경우를 다룬 문제만 실려있고, 일반적인 공식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확한 값과 근사(어림)값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고, 기하학 문제에서 문제가 풀리는가에 대한 의문도, 증명의 본질에 관한 연구도 없다. 그런데 '증명'이라는 말은 문화 수준과 시대에 따라 의미가 여러가지로 다르다. 그러므로 그리스 이전에 증명이라는 개념이 없고, 이들이 증명을 불필요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들(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은 어떤 종류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방법이 더욱 단순한 도형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방법으로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서기는 곱셈으로 나눗셈을 검산(증명)했다. 그럼에도 그리스 이전의 문명이 증명의 필요성이나 논리적 법칙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나타냈다는 분명한 기록은 없다.

 비평가들은 바빌로니아, 이집트 수학에 추상성이 없다고 하나 이것 역시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제에서 '길이', '나비'를 오늘날 문자 \(x,\,y\)와 거의 같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스 이전의 문명을 평가할 때, 훗날 '수학'이라고 하게 된 지적 활동에 필적할 만한 지적 활동이 당시에 없다고 지적하나 이러한 행위는 독단적일 수 있다.

 기하학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 공간 경험이라고 하는 거친 모암(母巖)으로부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사실이나 수와 응용에 관한 바빌로니아인과 이집트인의 관심 가운데는 훨씬 뒤 시대의 대수학 내용과 매우 가까운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그리스 이전의 문화는 수학 자체에는 거의 관심을 안 갖거나 실용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고 오해받기도 한다. 여기서도 증거보다 판단의 문제가 얽혀있다.

 그 당시도 지금처럼 인류의 대다수는 생존을 위한 문제에 매달렸었다.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없었지만 이러한 불리한 조건에서도 오락 수학의 특징이 있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문제들을 만들었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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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