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중립외교, 선택 아닌 필수였던 이유 l #어쩌다어른 l tvN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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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광해군은 하찮은 선조 인조에 끼여서 개고생한 왕이지. 똥을 한명만 싸도 커버치기 힘든데 앞뒤로 두마리가 전부 똥싸고 정쟁질만 해대는데 광해군은 죽어서도 혈압올랐을듯
+역사는 승자입장에서 쓰기때문에 주관적 관점으로 보는사람에 따라 시각이 달라질수있죠
+님이야말로 입체적으로 봐야할거 같은데요? 도라이 애비 선조 새끼가 전쟁중에서 양위하겠다고 20번 이상이나 빡치게 해서 잘못한거 하나 없이 머리 풀고 석고대죄하고 애비새끼는 의주로 도망가서 명나라로 튈거라고 개지랄 떠는 와중에 평양성 코앞까지 가서 백성들 수습하고 최소한의 군대를 만들어 명군 후속지원은 가능하게 만든게 누군데요? 선조가 일 못하겠다고 파업한 와중에 분조 만들어서 나이 17세에 조선 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임진왜란의 국군통수권자까지 했습니다.
이 경험만 해도 빡쳐서 돌아버릴 지경일텐데 전쟁 끝나니 애비새끼가 영창 싸고돌면서 자기도 못입게 했던 붉은 용포까지 입혀 대놓고 차별대우하고 선조에게 부화뇌동해서 광해군 정치기반을 뒤흔드는 모리배 탐관오리 새끼들까지 겪었습니다. 사람이 안미치면 그게 더 이상한거 아닙니까? 죽을 똥을 싸서 전쟁 수습하고 국가 재건하려 했더니 토사구팽 당하게 생겼는데 님이라면 안미칠 자신 있어요?
+조선시대의 왕에 대해서 너무 모르시네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만인지상의 느낌은 해봤자 조선 초 세종정도까지입니다. 실제로 왕의 권력은 그다지 쌔지 않았어요. 특히 후기로 갈수록 그게 힘들어지죠. 애초에 전대부터 엿같이 몇몇 집안에서 나라를 다 먹고있는데 광해가 무슨 힘으로 그걸 뒤집습니까. 조선 왕중 최고의 천재라 불리우는 정조조차도 자신의 신하들을 100프로 믿지못해서 어의를 따로 두지 않았답니다.
조선의 왕은 바지사장 느낌이 강합니다. 신하들의 나라였어요.
+인과관계는 확실히 하자는 말입니다. 광해군이 집권 후반기에는 암군소릴 들을정도로 실정한걸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자초지종은 확실히 밝혀놔야죠. 그 실정의 책임을 모조리 혼자 지면 광해는 너무나 억울한 왕입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역사학계에서도 되게 유명한 논쟁인데.. ㅋㅋ;; 역사학자들이라고 기록이나 사초를 맹신하는 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ㅋㅋㅋ
-광해군때 중립외교가 현명한 선택이다 나중에 인조가 국제정세모르고 명나라하고만 친하고 여진족 오랑캐취급하니까 명분만들어서 쳐들어오고 왕으로서 굴욕당하지
+당시 국제정세로따지면 명나라편에서는게 맞는데요 국력만따져도 정상적인사람이면 아무도 명이 질거라고생각을안합니다 위충헌같은 개새끼랑 원숭환죽게만든놈 간신들과 그걸 곧이곧대로믿어준 황제새끼가문제지
+그리고 정세를떠나서 유교사회+명이해준거때문에 신하들한테 욕을오지게처먹습니다 만력제가 원정군만10만넘게파병하고 곡식을 수백만석을뿌려서 명을등지는건 걍 민심을등지는거나 마찬가지인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지 아들 의심해서 개지랄 떨다가 벼루로 머리 깨 죽임. 그때 죽이지 않았다면 과학발전 어마어마했을 것임
+인조가 여진족 존나 만만하게본게 누르하치가 건주여진 복속했을때 조선이랑 외교적 맞찰 피하고 싶어서 압록강 근처 부족들 전부 이주 시키고 조선에게 사과까지함. 그리고 두만강쪽에 내려온 야인여진 인조가 군사 5,000명 파견해서 야인여진 햄식세력과 여진촌락들 학살하고 불태워버림. 그래서 여진족 존나 만만하게 본거고 또 누르하치도 당시 명나라군이 지 할아버지,아버지 죽였는데도 대가리 조아리면서 괜찬다고 하고 무역권이나 받아먹고 시다바리로 살고 있었음. 그러니 오랑캐취급 할 수 밖에 없었음
-인조반정이 아니라 인조반역이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임.
+성공하면 반정임
-선조나 광해군이나 어느정도 실드칠건 있는데 인조는 진짜 답없는거 같음
+그래도 정치적 능력이나 인재부문 선별에있어선 탁월했다고합니다. 김성일이 낙관론을 주장했을때도 안믿고 전쟁대비를 하기도 했고 전후처리도 잘했다고 합니다. 이순신을 뽑은것도 그렇고... 다만 자기가 뽑았으면서 스스로 하늘이 내려준 치트키를 걷어찬것, 아예 서렌치고 광해군에게 물려준다음 의주로 런하려고 했던것, 초창기에 잘했던 견제정치의 후반좆망화, 공신책봉문제의 그놈의 세균 때문에 앞선 선의 평가가 지구밑바닥까지 뚫린건데...자업자득이죠 ,
+선조는 높게 평가 받는게 인재등용 잘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 이순신도 등용했을때 조정에선 쉴드치는 사람이 류성룡 정도 밖엔 없었음.. 광해군이 후금이랑 친하게 지내려해서 조정 내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시각이 맞을 듯합니다.
인목대비 폐위,영창대군 정도 죽인거야 그당시 조선 선대왕들 봐도 전례가 있는 상태였고(태종,세조) 다만 정치적 기반이 그들처럼 탄탄하지 못했지만요
-광해군 아무리 욕먹을 짓 햇다고 하고 중립외교 맞네 아니네 하지만 인조보다야 백만배 나은 왕이란건 부정할 수 없음.
+연산군, 선조, 인조가 제일 쓰레기 철종, 고종은 걍 개불쌍한데....
+내알기로는 다른데, 후금이 조선에 화친을 제의할때, 처음에는 형제의 나라로 제의를 했음. 이에 거절을한게, 조선이고, 이후 존심상하니, 이번에는 공격적으로, 부모의나라로 섬기라 경고함. 두차례나 제의를 한게 후금임. 후금은 조선에 호의적이었음을 알수있음. 그리고 그거또한 걷어찬게 인조고.
인조반정때의 명분자체가 명을배신할수없다는게 명분인만큼, 중립외교를 하지않았고, 시대상황에 어두운 인조가 맹목적으로 명을 따르고 후금을 매몰차게 대우한 결과가 병자호란인것. 병자호란이후에도 북진정책을 준비한것으로 보아, 절대인조는 중립외교하지않았음. 광해군은 시대상황을 잘인지한 명군이고, 인조는 입만산 머저리 서인들과 권력싸움을 위한 명분으로 백성을 고생시킨 암군임.
+이순신의 수군 천거는 류성룡 입니다. 선조가 아니라요. 물론 윤허는 선조가 내렸지만요 칠천량의 패전도 선조의 에러입니다. 제일 큰것은 대마도주가 선조에게 전쟁의 위험성을 알렸음에도 방비를 안한 선조의 무능함이구요.
+인조가 연산군보다 쓰레기임. 그 중하나 질투로 덕망있는 지아들 소현세자 죽임
+진짜 소현세자 죽이면서 조선의 발전이 많이 늦춰짐
-조선 역사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
+지금도 전쟁을 피하는 지도자는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동맹도 아닌 아버지의 나라를 버리는게 쉽지가 않았으니. 국민이 똑똑해야 합니다. 국제외교는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야생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하는것들은 똑같아요
+맞아요 미래 시점에서 보니 그렇겠지만 정말 속터집니다
-군대갔다 온 남자들이 반드시 하는 말 전쟁나면 내가 한명이라도 죽이고 죽을 수 있을까?
-정말 아쉬운 왕 광해 ㅠㅠㅠ
-중신들이 문제 그래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고난을 겪음
-전쟁을 피하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한국이 독립국가 유지하려면 100만번 들어도 질려하면 안된다!!
-뒤틀린 꼰대 조선 고통받는 후손들
-역사라는게 정말 씁쓸하다 왜란으로 쑥대밭 된 사회가 호란으로 처참해지고 경신대기근까지......
-중립외교는 국력이 강해야 할 수 있는겁니다. 물론 영상에서 말하듯 조선이 할 수 있는건 중립외교는 맞지만 정확히는 중립외교의 탈을 쓴 굴복외교였죠. 기본적으로 조선은 병농일치젭니다. 백성들이 농사를 짓다가 전쟁에 동원이 된단 말이죠. 그런 조선군이 만주벌판에서 뛰다니던 프로기병들을 상대하는건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명나라는 그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만약 명나라가 이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의 군 기율은 엉망이였고, 사기도 개판이였다는건 조선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만약 명의 편을 들어 금을 쳤다가 진다면? 조선도 멸망할 공산이 있고, 만약 금을 돕는다면? 이떄는 명이 지면 금이 우리를 깔볼것이 자명하고, 만약 명이 이겨면 명에게 더이상의 도움을 바랄 수 없고, 심지어는 조선 자체에서의 정치판도가 바뀔 수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명의 도움을 재조지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해는 이런 외교를 선택한 것이죠.
-약해서 하는 중립 = 네덜란드 벨기에..강하면서 하는 중립 = 스위스..즉 병자호란은 피하기 어려웠음..물론 인조가 명나라에 목숨 거는 식의 외교를 안했으면..좀 덜 당하긴 했겠지만..전쟁 자체를 피하긴 어려웠지..후방을 정리 안 해놓으면 늘 찝찝하니까..
+근데 그것보다 제일큰건 북방을 수비하던 정예군 1만을 이끌던 이괄을 제거한게 컸어요.. 북방지역에 좀더 선정을 베풀었으면 이괄도 인조도 윈윈했을텐데..
+꼭 그런건 아님 태국보셈 인도에서 들어오는 영국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는 프랑스 그 한가운데 있는 태국은 약국의 중립외교의 대표사례임 영국 프랑스도 태국의 중립외교에 맞춰서 서로 태국은 침략안함 그래서 그 식민지 시대에서도 태국은 유일하게 침략안당함 우리도 분명 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 잘했으면 금은 그래도 안쳐들어올수 있고 금과명이 지들끼리 싸울때 나름 독자적으로 방비할수도있는 시간도 있었을거임
+진짜 문제는 외교와 첩보라는걸 너무 뇌내망상으로 했던게 문제임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해도 현지정세는 가서보고 정보수집하는게 제일인데 그런것도 없던시기에 여진족들과 친했던 외교관을 오랑캐식의 예를 올렸다고 경질해버리고 주기적으로 명에가는 사신만 있을뿐 현지사정은 전혀 모르고 오로지 최악의 상상만 해대는데 더웃긴건 최악의 상상을 해놓고도 별 대비를 안한거죠 걍 좆선이라는 나라의 한계임 좆리학과 좆교에 빠진 좆선비들이 좆선이라는 나라를 조선초보다 병신으로 만든거
-선조 따라서 편하게 몽진이나 다닌 신료들이나 전쟁을 직접겪지않은 신하들은 전쟁을 겪고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얼어죽을 명분과 의리가 중요했고, 전쟁터에서 직접 구르면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겪은 광해군은 그렇지가 않았던거지... 이렇게 생각해보면 고수전쟁 당시직접 전쟁을 치르고 심지어 을지문덕과 함께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 명장이었던 영류왕이 수나라 이후의 통일제국인 당나라에게 그렇게까지 저자세로 나간 이유도 알만은 하다. 또다시 자신의 영토에서 똑같은 참상을 겪느니 자존심 좀 상하고 굴욕적이더라도 참는게 낫다고 생각했던거겠지... 연개소문은 아무리 굽신거려도 어차피 당이 공격해올것같으니 차라리 한판 붙어보자 한거고.
-여진이 왜란 당시 자신들이 원래는 고구려와 발해의 국민이였고 조상이 같은 형제의 나라라고 원병 해준다고 했지만 선조가 무시함...그때 명나라는 간보고 있었거든. 물론 무조건 후금이 우리위해서 싸워준다는 순수한ㅈ목적일수는 없었겠지
-무식한 조정대신 서인들 폐모살제 기축옥사 중립외교 구실로 인조반정 권력에 눈이멀어 백성을 생각한 최고의 왕을 끌어내렸다
-중립은 그만한 힘이 있을때 하는거지 ㅋㅋ 갑자기 구한말 열강들한테서 피하려고 영세중립국하자던 뚱딴지소리가 생각나네
-역사를 알면 현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초등부터 정치 역사 만 가르쳤어도 우리나라는 더 풍요롭게 살았을것이다
+빙신 너같은 것들 때문 무상식 아무렇지 유통 되는 세상이 된거야 시붕알아 민주주의는 사회변화에 발전하지 않으면 독재자가 나오는거다
독일은 유럽이 잘 사는 이유는 초딩때부터 시위 집회의 자유 정치를 가르처서 잘사는거야 그리고 여기처럼 미친 비정규직법.하청법이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을 위한 법이 아니고 노동자를 위한 법이다 무식 너같은 것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빨 뒈져주면 좋겠다
-만약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해본다
-국제사회에서 힘약한걸로 공격당했다고 징징대봐야 정치적으로만 이용해먹지 진짜 도와주는놈 하나없음 . 일본이 침략해서 나쁜놈이라고 ? 지금 강대국중에 침략전쟁안한놈들이 누가있나 .
-확실히 저렇게 말해주니까 교과서로 배울때는 왜 그랬지 라고 느꼈는데 저말을 들으니까 결국 백성의 부모로써 어쩔수없구나.. 또한 안쓰럽다는게 느껴지네요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성군이냐 아니냐..의 논란에 앞서 이런 물음표를 하나 던져봅시다..하다못해 상대적으로 짧은 치세에 아무런 업적도 없었던 단종도 줄곧 복위운동 실패후 노산군으로 지내다가 숙종대에 와서 승격이 되었고, 반란이라고 불렸던 서경천도운동이 단재선생에 의해 제일대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생겼죠. 즉 분명 재평가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왜 광해군이후 업적이 나름 지대었다면 반정이후 강화도 등지에서 자그마지 약18여년동안 유배생활을 지내면서 양대 호란이라는 인조의 실정에도 복위운동이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왜 이후 수많은 학자와 일제강점기 단재선생같은 분들이 광해군같이 임진난을 극복한 성군을 한 마디 할 줄도 평가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적어도 광해군은 세자시절은 제외하더라도 재위시절만큼은 결코 성군이라고 볼 수없습니다. 중립은 오로지 강국이거나 약소국이더라도 스위스같이 알프스같은 믿는 구석이 있을 때에만 소위 '먹히는' 전략입니다. 강홍립 장군에게 미리 언지를 주었다한들 임진난이후 어쩌면 조선의 북방의 최대병력이였던 1만3천명을 사르후전투 후 살아 돌아온 자만 겨우 2700명인데 이게 무슨 중립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13000명은 지금도 군단급의 대군이였으며 총인구가 수백만밖에 안되는 당시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좀 더 냉철하게 중립할 거였으면 광해군이 더 적극적으로 나왔어야죠. 예를 들면 임난때문에 나갈 병력이 여의치않으니 군자금이나 군량으로 ..내지 일부러 병약한 군인만 몇 백만 추려 일부러 명군에게 쓸모없는 원군임을 각인시키도록 위장술을 쓰는가하면 여진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명 후금과 싸울 여력이 안되니 필시 명군에 합류하더라도 받은 은혜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는 물밑외교를 펼치면서 직접 궁궐에 있기보다 평양으로 상주하면서 민심을 아우르는 한편 북방 수비에 역점을 두었어야 했습니다. 마치 고려 현종과 같이 말입니다. 실제로도 현종은 거란침공에 나주까지 몽양가면서도 적극적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인재 등용하고 성벽을 견고히 한 현군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 결실은 귀주대첩이 있었던 겁니다. 광해군은 어땠나요? 고작 한다는 게 강홍립에게 내린 밀지가 상황이 여의치않으면 항복하라? 좌우군 중앙진영까지 탈탈 털리고 나서 항복? 이게 중립입니까? 영화 광해군에서 내나라 내백성이 몇갑절 소중하다고 외쳐놓고 조선국방력의 대부분을 전멸해놓고 중립을 운운하다니요. 지방관이 북방여진족이 심상치않으니 궁궐지을 때 들어가는 목재나 철근 등 군사비용에 쓰라는 충언을 무시하는 모습이 실록에 나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데 아무리 왕조의 기강이 중요하더라도 국가중요우선순위가 있는데 궁궐 짓기나 정쟁에만 혈안이 되었다니요. 그러니 인조반정이 일어나도 궁궐을 지키는 이들도 일사천리로 성문을 열었고 강화도로 유배되었어도 하인이 면박을 주거나 밥도 제때안주는 등 무시당하고 말았죠. 영화나 매스컴에서 말하는 광해군은 결코 정쟁에 희생된 비운의 군주도 아니요 성군도 아니였습니다.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채 제나라 1만여명의 군인을...아니 백성을 사지로 내몬 실패자였을 뿐입니다. 자그마치 1만여 명의 아버지 형제들이 희생되었는데 그래도 중립 시도는 좋았다...라고 평가할 수 있나요? 학계에서도 논문에어도 중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설민석 강사님. 좋아하기에 즐겨 듣지만 이번만큼은 아쉽지만 공감하기 어렵네요.
-애초에 신라같은 강국에 빌붙는 나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어땠을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조선이 생겨나지도 않았을거 같음
-아 연극영화과 출신이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교육을 하고있구나..연기에 속지마라 중립외교를 할꺼엿으면 애초에 파병을 보내지 말았어야지... 파병 보낸거 자체가 이미 명나라 편에 서겠다는거야
광해는 그냥 여진족이 강한걸 알고있었다 뿐이지 설사 광해라도 명나라를 져버리는 선택은 할수가 없었다. 명나라한테 인정받을려고 사신올때마다 막대한 양의 은을 뇌물로 갖다 바친게 바친게 광해군이다.. 중립은 힘이 있을때 가능한거야.. 2차세계대전에서 네덜란드랑 벨기에가 중립을 선언했는데 히틀러가 무시하고 그냥 밀어버렸지
그리고 사대주의를 떠나서 명나라가 임진왜란에서 국가 재정이 파탄날만큼 병력을 보내서 도와줬는데 당시 상황에서 어떻게 외면할수가 있냐
+일본인이 만든 식민사관이라 했는대,신채호선생도 광해군의 중립정책자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봤어요. 이사람이,식민사관을 떠나서 광해군이 사고친건 많아도 국외 정세보는건 탁월한게 맞아요.
후금정세 파악하고 후계구도까지 다파악해서 홍타이지 친조선파로 섭외하려던 사람이 광해군인대 식민사관이라고 너무 강하게 부정하는거 아님?
+이게맞죠 외교가 아니라 힘입니다 네덜란드,벨기에 진짜 공감돼네요
-말이 중립이지 중립은 서로가 힘의 균형을 이뤄야 실행할수있는것입니다. 당시실상은 임진왜란이후 간신히 죽 한그릇 들어도 배부른 상황이었습니다. 조선도 매우약한상황이었고 명나라는 말도못했습니다. 여진족은 명의 통제를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조선도 명나라가 누르하치 못이길거란걸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대 그당시 조선 내부의 여론이 명을도와서 파병해야한다는 여론이 우세였고. 광해군은 우리 안그래도 약한데 이대로 나가서 공격을 하면 백퍼 깨지니 후방 퇴로차단정도로 타협을보고 결국 마지못해 파병합니다... 그런대 수성만 해대던 군대가 한번도 안해보던 공격을하니... 결과는 뭐..
+명나라가 임진왜란 지원해준다고 엄청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약해진 명을 상대로도 후금은 만리장성을 절대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명나라가 후금한테 무너진 건 후금이 공격을 잘 해서가 아니라 명나라 스스로 무너져서 만리장성을 열어줬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이자성의난때 명나라군이 싸워보지도 않고 줄줄이 항복하면서 명내부와 군기강이 급격히 무너진것도 한목했죠 ..ㅋ
+1644년 송산전투때 숭정제와 병부상서(=조선으로 따지믄 병조판서) 진신갑이 독촉안하고 장기전가면 충분히 승산은 있었을텐데 무너지니까(물론 명은 장기전할 형편이 못됬지만) 손전정(고영상잡은사람)이랑 좌량옥(이후에 남명에서 가짜 황제소동때 가담했다가 처형)이 그나마 남은걸로 이자성 막다가 마지막에 한번 진걸로 끝났죠ㅠ
-스위스는 중립외교 어캐했누
+스위스 먹기가 쉽지가않음 히틀러도 먹으려다가 스위스군자체가 저격이 가능한총기를 사용해서 산맥곳곳에서 저격하고 통행가능한다리 다터트리면서 오지게 독일군 괴롭히면서 버텼고 그와중에 러샤포함한 전선이 넓어지면서 스위스 점령포기함
+결국 독일한테 털렸지만 그래도 올바른 존버의 교과서 같은 사건임
-광해군 중립외교는 진짜 과소평가 받는다고 생각함. 역사에서 패자라서
+근데 광해군 이 양반은 내치에선 아주 빵점임. 광해군은 궁궐병에 걸려서 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지가 살아야할 궁궐 짓는다고 얼마없던 백성들의 민가를 헐어서 궁궐을 만드는데 세금낭비함. 더 큰 문제는 그 궁궐에 청기와를 사용함.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생각하겠지만 청기와를 만드는데 사용된 유약의 재료가 바로 화약을 만드는데 사용된 염초였음. 그것도 명나라가 공짜로 준 염초를 화약도 아닌 지 궁궐 짓는데 탕진함. 그리고 광해군은 오성과 한음, 그리고 이원익 같은 충신들을 무슨 스탈린 마냥 죄다 숙청함.(이게 인조반정의 불씨임. 이유? 광해군이 능양군, 즉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을 모함으로 죽이면서 능양군이 각성하고 광해군 몰아내려고 반정 일으킴.)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이이첨 같은 북인들이 차지하는데 문제는 이놈들도 서인급 부패 정치집단에 서인들 못지않게 명나라 후빨하는 친명파임. 그 결과는 실리외교를 펼쳤다는 광해군과 달리 조정에는 친명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그 결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부름. 더 충격인 사실은 광해군이 김새기 라는 상궁에게 의존하며 그녀가 전횡을 일쌈는걸 방치 했다는 거임. 그러다가 인조반정때 김자점과 내통한 김개시한테 통수 당함. 추가로 대동법 반대도, 대동법 전국 환산도 막은 사람이 바로 광해군 본인임. 광해군이 성군이라면 왜 기득권 눈치 보면서 경기도 지역에만 대동법을 실행함?! 결국 광해군도 별반 다를게 없었음. 광해군이 얼마나 내치를 못했으면 유배를 갈때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조롱함. “돈아비야, 돈아비야 그 많은 돈 두고 어디 가느냐?” 말 그대로 광해군의 매관매직과 축재, 그리고 과도한 궁궐 건설를 비꼰 아주 어울린 노래 였다.
-사도세자도 그렇고 광해군도 그렇고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조선을 크게 바꿀만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참 안타까운 인물들임...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밀명을 주어 명을 돕는 척하다가 금 나라에 협조하라고 함. 강은 투항하였는데 반정후 조선의 정책이바뀌니 처들어 온것임. 명석한 두뇌로 형세 파악이 정확했는데 조정 대신 이라는 자들이 골머리가 돌지 않아서 사사건건 반대만 하니 열이나서 자포자기 개판 된 것임.
-인조반정이 일어난 일차적 원인은 선조지! 그전쟁을 보냈는데 오래살았으니! 게다가 광해 견제만 하다 자기만 왕권이 강화가 되었지 지죽은후엔 힘을 안실어 줬으니 반대파도 많고 나라가 안정되지 않았지! 또 광해보다 어린 어미와 자식까지 안그래도 작은왕권에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냐 그러니 명나라하테도 인정 못받으니 궁궐에 집착했겠지!
-저때 신하들이 명나라가 쇠하는걸 알면서도 의리를 주장한게... 만력제가 임진왜란때 정말 많이 도와줘서 그렇죠
-근데 이분들 그건 알까? 청나라는 명나라가 이자성에게 멸망하기 전까지도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음
+만리장성 산해관을 열어준 사람은 오삼계라는 장수임 이분이 우리나라로 치면 이완용 취급받는 인물
-중립외교라기보단 그냥 중간에서 간본거지. 명나라 파병요청에 쨌든 임란때 도와준것도있고 사대주의국가니까 보내줬는데 후금한테 털리니까 항복하고 후금과 딜하고. 광해가 계속 왕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후금이 조선쳤지. 다만 인조처럼 한방에 안가고 시간 조금 벌면서 나름 대비하고 깨졌겠지. 아무리 대비한들 이길 수 없는전쟁인데 인조처럼 굴욕적으로 항복하진 않았을거란 이야기.
-백성을 생각하신분이 대규모 궁궐공사를 진행해서 세금을 올려 백성의 고혈을 빨고 대동법 확대를 막아버린다?(그마저도 궁궐을 다지으니 점쟁이말만듣고 귀신나온다고 ㅈㄹ 다른데로 옮기니 자리안좋다고 ㅈㄹ 하다가 천도까지 하려고함)
중립외교 부르짖으신분이 강홍립과 군대파견해 사르후전투에서 7천명넘게 죽고 생환2천7백이라는 대손실을 남긴다?
애초에 명나라를 따르는게 그당시에는 맞았음 우리는 결과를 알지만 당시 명나라는 썩어도 준치라고 후금따위는 비비지도못할만큼 어마어마한 국력을 가지고있었음 내부 반란때문에 무너진거지 후금한테 무너진게아님
-중립외교는 현재 논란이 가장 많은 주제 중 하나입니다. 설민석 좋아하시는 분들은 듣기 싫으시겠지만 명나라를 위해 파병을 결정한 것부터가 일단 중립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아이들 장난이 아닙니다. 엄청난 돈과 사람이 필요한 일을 명나라를 위해 결정했다는 것부터가 중립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그 잘난 '교과서'에 일본이 왜곡된 역사 적었다고 우리나라 정부, 언론들 앞장서서 비난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일본이 했다면 우리도 못할거 뭐가 있겠습니까. 교과서는 결국 교육청이 수주 내는거고 교육청은 정부 아니랍니까? 과연 학계가 아니라 정부가 지정한 역사를 '진짜' '인정된' 역사로 확정지을 수 있습니까?
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중, 고등학교 교과서는 전공책이 아니기에 포괄적이고 얕은 범위의 지식을 함축적으로 담을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왜곡된 지식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윤리와 사상 과목에서 하이데거를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가르치는 것을 꼽을 수 있죠. 또 교과서에 반영되는 학계의 기조는 평균적으로 10년 전의 것이기 때문에 교과서가 검정 인증을 받을 때만 해도 사실로 인정받았던 것이 작금에 와서 오류로 판명된 경우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든 교과서에는 잘못된 역사적 사실이 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교과서가 정하는 역사가 진리라는 다분히 파시즘적인 기조를 계속해서 따라가야 할까요? 그쪽은 부디 동북공정이랑 일본 우익사관도 사실로 믿길 바랍니다
-국제정치 전공했는데 광해군은 한국의 외교정책과 관련한 논문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임 그만큼 광해군의 중립외교, 실리외교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매우 특수한 사고방식이었고 서구에서도 마키아벨리가 정립하기 전까진 일부 개별 군주들만 사용한 외교전술일 뿐 현실정치라는 개념조차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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