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수학사(상)2022. 9. 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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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 41-근대수학의 서막(3)

 

 

17. 아폴로니우스의 '접선에 관하여' 재구성

 

 비에트는 해석학자였으나 순수기하학에도 공헌했다. 순수기하학에서 그가 한 연구는 아폴로니우스의 저술에서 제기된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레기오몬타누스는 세 원에 접하는 원을 작도하는 유명한 아폴로니우스 문제를 자와 컴파스만으로 풀 수 있는지에 의문을 던졌다. 루멘은 서로 만나는 두 쌍곡선으로 이 문제를 풀었고, 비에트는 1600년 자신의 책 '여러 가지 풀이'에 실었다. 먼저 세 원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점과 직선으로 대체되는 쉬운 경우부터 시작해 마지막 가장 어려운 경우에 이르렀다. 이런 기하학 문제는 데카르트에게는 매력적이었으나 비에트 이후의 수학자들은 아르키메데스의 연구를 적용하는 쪽이 큰 관심사였다.

 

18. 무한소 해석

 

 스테빈과 케플러, 갈릴레이는 모두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이므로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필요로 했는데 착출법에서 보였던 논리적으로 미묘한 점은 피하려고 했다. 주로 고대의 무한소 계산법에 수정이 가해지면서 미적분으로 유도되었다. 스테빈은 그런 수정을 처음 제안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1586년(뉴턴,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발표하기 거의 한 세기 전)에 자신의 책 '정역학'에서 삼각형의 무게중심이 그 중선 위에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삼각형 \(ABC\)안에 위 그림과 같이 네 변이 삼각형의 밑변 또는 중선에 평행하고, 높이가 같은 평행사변형 몇 개를 내접시킨다. 그러면 '좌우대칭인 도형은 균형을 이룬다'는 아르키메데스 원리에 의해 이 내접한 평행사변형들의 무게중심은 중선 위에 있다. 그런데 이때 평행사변형을 삼각형 \(ABC\)내부에 무한히 많이 내접시키면 평행사변형 개수가 많아질수록 내접도형의 넓이의 합과 삼각형의 넓이의 차는 작아질 것이다. 그 차이는 얼마든지 작게 할 수 있으므로 삼각형의 무게중심도 중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 요하네스 케플러

 

 스테빈이 무한개의 무한소를 물리학에 응용하는데 관심이 있는 반면 케플러는 천문학, 특히 1609년에 발표한 타원궤도와 관련해 응용할 필요가 있었다. 케플러는 광학의 연구와 포물면 거울의 특성에서 원뿔곡선을 알게 되었다. 1604년 케플러는 '뷔텔로의 광학입문'에서 '연속성의 원리'를 전개했다. 원뿔곡선은 교차하는 두 직선에서 시작되고 그 교점에서 두 초점이 생긴다. 한 초점이 다른 초점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무수히 많은 쌍곡선이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의 초점이 무한히 멀어지면 두 개의 쌍곡선이 아닌 포물선이 된다.

 이 움직이는 초점이 무한원(infinity)을 통과해 반대방향에서 다시 접근할 때는 무수히 많은 타원이 나타나고, 두 초점이 일치하면 원(circle)이 된다.

 포물선이 두 개의 초점을 갖고 그 중 하나는 무한원에 있다는 아이디어와 '초점'이라는 용어는 케플러에게서 나온 것이다. 

 무한원점이라는 생각은 한 세대 뒤에 데자르그의 기하학에서 더욱 확대된다.

 케플러는 천문학에서 무한소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접근법을 발견하고 이것을 1609년 '새 천문학'에서 1, 2법칙으로 발표했다.

 

(1)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 위를 움직인다.

(2)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를 지난다.

 

 케플러는 이와 같은 넓이 문제를 다룰 때 태양과 궤도 위의 서로 무한히 가까운 두 점을 꼭짓점으로 하는 무한히 작은 삼각형들이 넓이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미숙하지만 오렘의 방법과 비슷한 하나의 적분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예) 다음의 원 둘레 위의 무한히 작은 빗변을 \(b_{1},\,b_{2},\,...,\,b_{n},\,...\)라 하면 원둘레는 \(\displaystyle C=\sum{n=1}^{\infty}{b_{n}}\)이므로 원넓이는 다음과 같다.$$\begin{align*}A&=\frac{1}{2}b_{1}r+\frac{1}{2}b_{2}r+\cdots+\frac{1}{2}b_{n}r+\cdots\\&=\frac{1}{2}(b_{1}+b_{2}+\cdots+b_{n}+\cdots)r\\&=\frac{1}{2}rC\end{align*}$$

케플러는 같은 논법으로 타원의 넓이도 구했다. 아르키메데스는 타원은 반지름이 \(a\)인 원의 각 세로선의 길이를 주어진 비(예: \(b:a\))로 축소함으로서 얻을 수 있다는 것(\(b<a\))을 알았고, 오렘은 타원의 넓이나 원의 넓이는 곡선 위의 점을 연결하는 세로선 전체의 합으로 생각했다.

 이때 타원과 원의 넓이의 성분(세로선) 사이에 \(b:a\)의 비가 성립하므로 타원과 원의 넓이 사이에도 같은 비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원넓이가 \(\pi a^{2}\)이므로 타원 \(\displaystyle\frac{x^{2}}{a^{2}}+\frac{y^{2}}{b^{2}}=1\)의 넓이는 \(\displaystyle\pi a^{2}\times\frac{b}{a}=\pi ab\)가 된다. 이와 같이 넓이는 정확히 구했으나 타원 둘레의 길이에 대해서는 근삿값 \(\pi(a+b)\)가 고작이었다. 

 케플러가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던 1621년은 포도주가 잘 된 해였고, 아르키메데스의 코노이드와 스페로이드(고대 수학자들이 입체의 부피 문제를 풀기 위해 구했던 곡선들)의 부피에 대한 방법과 비교했고, 더 나아가 아르키메데스도 다루지 않았던 여러 회전체의 부피도 계산했다. 케플러가 입체의 부피를 구한 방법은 입체가 무한개의 무한소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며 이는 앞에서 설명한 타원의 넓이를 구한 것과 거의 같다. 이때 케플러는 아르키메데스가 했던 '무한을 직접 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귀류법을 써서 모순을 유도해 구한 값이 옳음을 증명하는 단계'를 생략했고, 오늘의 수학자들이 그의 태도를 따르고 있다.

 

20. 갈릴레이의 '신과학 대화'

 

 케플러는 부피 측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1615년에 '포도주 통의 부피 측정'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20년 동안 크게 관심을 얻지 못했으나 갈릴레이의 제자 카발리에리의 유명한 책 '불가분량의 기하학'(1635년)에서는 케플러의 생각이 체계적으로 확대되었다. 갈릴레이의 성과는 유명한 두 논문으로 기술되었고, 그 중 하나는 천문학(천문대화), 다른 하나는 물리학(신과학 대화)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 논문 '천문대화'는 톨레미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의 상대적 이점에 관한 대화로 여기서 갈릴레이는 어느 학설을 지지하는지 명백히 드러냈는데 그 결과 투옥되었다. 투옥된 뒤에 쓴 논문은 '신과학 대화'로 동역학과 물질의 강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논문은 수학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나 곳곳에 수학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특히 무한대와 무한소의 성질을 언급하고 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동역학에 무한소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가 당면한 문제는 무한대보다 무한소였다. 그는 오렘의 형상의 위도(함수의 그래프 표현)의 연구에 정통하고, 신과학 대화에서도 오렘의 삼각 그래프와 비슷한 속도 그림을 사용했다. 갈릴레이는 오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부족한 수학적 엄밀함을 더했다. 또 갈릴레이는 발사체의 운동을 일정속도의 수평성분과 가속되는 수직성분으로 나누었고, 공기저항을 무시하면 발사체의 자취는 포물선이 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타원은 천문학에(케플러), 포물선은 물리학에(갈릴레이) 응용된 것이다.

 더 나아가 갈릴레이는 현수선의 연구를 포물선에 연구하려 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17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현수선은 포물선이 아니며 대수적인 식으로 나타낼 수 없음이 밝혀졌다.

 갈릴레이는 사이클로이드를 발견하고, 그 곡선 중 하나의 넓이를 구했는데 차 바퀴 넓이의 3배보다 조금 작다는 결론을 얻었다(프랑스, 이탈리아 수학자들이 정확히 3배임을 증명했다).

 

21. 갈릴레이와 무한

 

 갈릴레이가 수학에 이바지한 것으로 더 중요한 것은 '천문대화'에 있는데 여기서 살비아티(과학지식이 있는 학자), 사그레도(보통 지식인), 심플리키오(우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심플리키오가 지구 위 물체가 자전의 영향을 받아 접선 방향으로 날아간다고 주장했을 때 살비아티는 지구가 작은 각 \(\theta\)만큼 회전할 때 물체가 지상에 남기 위해 떨어져야 하는 거리 \(QR\)은 그 물체가 접선방향으로 수평이동하는 거리 \(PQ\)에 비하면 무한히 작음을 설명했다.

 따라서 물체를 지구 위에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아래 방향으로 작용하는 아주 작은 힘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갈릴레이가 말하는 것은 선분 \(PQ\)나 \(RS\) 또는 호 \(PR\)과 비교했을 때 \(PS\)(\(=\text{vers}\theta\), vers는 versed sine의 약자)는 더 고차원의 무한소라는 점이다. 또한 1638년에 출간된 '신과학 대화'에도 선분을 무한개로 나누는 것은 유한개로 나누는 것과 같고 선분을 구부려 정사각형, 정8각형을 만들고, 계속 구부려서 원을 만들 수 있음을 보였으며 모든 자연수와 제곱수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있음을 보였으나 무한집한의 부분집합은 원래의 무한집합과 같다는 무한집합의 기본 성질은 보이지 못했다.

 

22.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

 

 갈릴레이의 제자 카발리에리는 케플러의 '포도주통의 부피 측정'에 자극을 받고 고대, 중세의 무한론의 영향과 갈릴레이의 격려 속에 무한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1629년 볼로냐 대학 수학교수가 되기 전까지 밀라노와 로마에서 살았고, 시대의 경향을 따라 순수와 응용수학의 대부분(기하학, 삼각법, 천문학, 광학)에 대하여 저술을 남겼고 로그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카발리에리가 유명해진 것은 1635년 출판되어 근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술 '불가분량의 기하학'이었다. 이 책의 토대가 되는 논거는 오렘과 케플러, 갈릴레이가 이미 시사한 내용, 곧 넓이는 '불가분량'이나 선분으로 구성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또 입체의 부피 역시 불가분량, 곧 원자와 같은 수준의 아주 작은 부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발리에리의 논법은 아르키메데스가 방법(당시 실종 상태)에서 사용하든 논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카발리에리는 아르키메데스와 달리 그런 논법에 감추어진 논리적 결함에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무한소를 포함한 높은 차수의 무한소는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버릴 수 있다는 일반적 원칙은 카발리에리의 공헌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이미 갈릴레이의 연구와 프랑스 수학자들의 연구 성과이다. 

 카발리에리의 방법에는 축차근사법도, 항의 생략도 없었는데 그는 두 도형 요소 사이에 엄밀한 일대일 대응을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어떤 요소도 차수가 비록 얼마더라도 무시되는 일은 없었다. 많은 입체기하학의 책에 '카발리에리의 정리'로서 실려 있는 다음 명제에 일반적인 접근법과 불가분량을 이용한 방법의 그럴듯함이 잘 나타나있다.

 높이가 같은 두 입체를 밑면에 평행하고 밑면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평면으로 자른 이웃한 두 단면의 넓이 사이에 언제나 어떤 일정한 비가 성립하면, 두 입체의 부피에도 똑같은 비가 성립한다.

 카발리에리는 1626년까지 이 방법을 계속 발전시켰고, 갈릴레이가 이전에 무한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해서 다음의 식에 해당하는 중요한 기하학의 정리에 전념했다.$$\int_{0}^{a}{x^{n}dx}=\frac{a^{n+1}}{n+1}$$ 오늘날 이 식의 증명을 할 때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를 이용하지만 카발리에리는 평행사변형에 대각선을 그어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고 한 삼각형에 불가분량(밑면에 평행한 선분)의 거듭제곱근을 그에 대응하는 다른 삼각형의 불가분량의 거듭제곱과 비교함으로써 공식을 유도했다. 다음의 간단한 식을 유도해보자.$$\int_{0}^{a}{xdx}=\frac{1}{2}a^{2}$$

 위 그림처럼 밑변과 높이가 모두 \(a\)인 평행사변형에 대각현 \(CF\)를 그어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눈다. 이때 밑면 \(CD\)는 평범한 \(HE\)는 삼각형 \(CDF\)의 불가분량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 \(BC=FE\)로 잡고 \(CD\)에 평행하게 \(BM\)을 그으면 삼각형 \(ACF\)의 불가분량 \(BM\)이 \(HE\)와 같다는 것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평행사변형은 두 삼각형의 합이므로 평행사변형을 구성하는 삼각형 하나에 포함되는 선분의 합$$\int_{0}^{a}{xdx}$$는 평행사변형 내부에 대응하는 선분 전체의 합(평행사변형 넓이 \(a^{2}\))의 반이 됨은 분명하다. 

 카발리에리는 이와 비슷하지만 복잡한 방법으로 삼각형에서 선분의 제곱의 합은 평행사변형에서 선분의 제곱의 합이 \(\displaystyle\frac{1}{3}\)이 된다는 것을, 세제곱의 경우 그 비가 \(\displaystyle\frac{1}{4}\), \(n\)제곱의 경우 그 비가 \(\displaystyle\frac{1}{n+1}\)이 된다는 일반화에 도달했다('1647년 6개의 기하학 문제'에 수록).

 이 사실은 당시 프랑스 수학자들에게 이미 알려졌으나 수많은 적분연산의 길을 여는 이 정리를 처음으로 출판한 것은 카발리에리였다. '불가분량의 기하학'은 부피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도록 했으나 1653년 이 책의 2판이 나올 무렵에는 이미 수학자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서 카발리에리의 기하학적 접근법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23. 나선과 포물선

 

 카발리에리는 식$$\int_{0}^{a}{x^{n}dx}=\frac{a^{n+1}}{n+1}$$말고도 나선 \(r=a\theta\)와 포물선 \(x^{2}=ay\)의 관계를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는 일직선으로 배열된 불가분량과 곡선의 불가분량을 대비시켰다.

 보기를 들면 포물선 \(x^{2}=ay\)를 시계의 태엽같이 구부려 정점 \(O\)의 위치는 고정시키고 \(P\)를 \(P'\)으로 옮겼을 때를 생각하자. 이때 포물선의 좌표는 현재 직교좌표와 극좌표 사이의 관계식 \(x=r\), \(y=r\theta\)에 의해 동경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면 아폴로니우스의 포물선 \(x^{2}=ay\)위의 점은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r=a\theta\)위에 놓인다. 더구나 카발리에리는 \(PP'\)을 반지름 \(OP'\)인 원둘레와 같게 잡으면 나선의 처음 1회전으로 생긴 부분의 넓이는 포물선의 호 \(OP\)와 동경 \(OP\)가 둘러싼 넓이와 정확히 같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시기는 해석기하학과 미적분학이 확립되기 전의 일이었다. 역사상 위대한 사실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탄하지 않은 거친 길을 따라가면서 점차 명확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       
수학의 역사-상, (칼 B 보이어, 유타 C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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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