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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승려/독립운동가] 백성욱

 

 

(백성욱, 1897년 8월 16일 출생~1981년 8월 16일 입적)

백성욱(白性郁)은 불교 승려이면서 대학 교수, 독립운동가로 1897년 서울에서 백윤기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조실부모하여 고모와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901년에 곤동학교(壼洞學校)에 입학했고, 1904년에 서숙(書塾)에서 한문(漢文)을 수학(修學)했다.

1910년 7월에 봉국사(奉國寺)로 최하옹 대선사를 은사로 출가(出家)했고, 1911년부터 불교전문강원에서 불교경전을 배웠고, 1917년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에 입학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학생 신분으로 참가했고, 여기서 만해 한용운 스님과 만나게 되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중앙학림 학인들과 더불어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지방 사찰을 돌아다니며 청년운동 조직을 만들었으나 일제의 감시가 심해져서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여기서 이승만 등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교류했고 독립자금 전달의 임무를 맡았으며, 얼마 후 '선진학문을 익혀 대중들을 계몽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조국광복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유럽 유학을 결심한다.

(불교전문강원에서 공부할 때 칸트의 철학에 심취했고, '지혜 있는 자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20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보베고등학교(Lycée Beauvais)에 입학했고, 독일어와 라틴어 등을 배웠다. 

(1920년대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후 복구를 위해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폈고, 중국 지식인들은 청년들을 모집해 노동자로 파견해 그곳에서 학업을 병행하도록 했다(근공검학, 勤工儉學).)

그 다음으로 1922년에 독일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대학 철학과에 입학해 고대 그리스어(희랍어)와 독일 신화사, 천주교 의식 등을 공부했고, 1925년 10월에 '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 독일어 원문: 불교형이상학, Buddhistishe  Metaphysik)으로 국내 최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을 알린 신문기사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해서 논문과 수필을 썼고, 1928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학인들을 지도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제 아무리 부처님 아들이라도 부처님의 지혜를 상속 받을 수 없다. 수행하는 것을 미루지 말라'고 했던 말들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교수 직을 그만두고 금강산 안양암으로 단신수도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제창했고, 함께 수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지장암으로 수도장소를 옮겼다.

수도할 때 어떤 젊은 청년이 '수도만 하기에 아까우니 내려와서 민족을 이끌어달라'고 했고, 이에

 

"대방광불화엄경. 나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도 많은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마음도 심지어는 그토록 간절히 바란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염원까지도 다 마음의 그림자임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 모든 마음을 대방광불화엄경에 바쳤노라"

 

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사라졌다.

 

지장암에서 500명의 제자를 가르치다가 1938년에 일제의 압력으로 하산하게 되었고, 1939년부터 1944년간 돈암동 자택에서 좌선수도를 한다. 

제자들과 수도할 때 한 제자가 호랑이가 자신을 물어가려고 한다면서 도와달라고 했고, 이때

 

"웃목의 도반(함께 불도를 수행하는 벗)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마음이 조금도 동요되지 않을 수 있어야 비로소 도반을 구할 수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8월 15일에 애국단체인 중앙공작대(中央工作隊)를 지도해 민중계몽운동을 했고, 군정을 종식하고 이승만에게 정권을 양도하라는 연판장을 만들어 재동경점령군사령관 및 재한미군사령관에게 전달했다. 

1946년부터 이승만과 함께 건국운동에 참여했고, 1950년에 건국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6.25전쟁과 뜻이 같지 않음을 이유로 5개월 만에 사임한다. 

1951년에는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했고, 1952년에는 부통령에 입후보했으며, 1953년 8월에 동국대학교 2대 총장에 취임했고, 남산 밑자락에 동국대를 건설했고, 건축할 수 없는 국유림에 동국대를 대표하는 석조건물 '명진관'을 건설했다. 이때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서 남산에서 벌여지는 공사현장을 보고 격노했으나 백성욱의 지시로 실행됨을 알자 노기를 풀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인 1954년에는 재단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에 취임했고, 1955년에는 대광유지주식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대학원에서 금강삼매경론, 보장론, 화엄경을 강의했다.

총장 재임시절에 매주 월요일마다 '인류문화사' 및 철학, 문학, 예술, 과학, 사상, 정치 등의 특강을 열었다. 이 특강은 접하기 어려운 세계사와 다양한 인류문화에 관한 것들이여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학점을 요구하는 강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교수, 직원은 물론 시민들과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 학생들도 들으러 왔다고 한다.

1956년에는 무소속으로 부통령에 입후보하지만 낙선하고 그해 9월에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한다. 그 다음해인 1957년에는 고려대장경보존동지회 회장에 취임했고, 경기학원(경기대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다가 1961년에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7월 2일에 공포된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에 의해 만 60세 이상은 교단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법으로 인해 동국대 총장직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총장직에서 사임한 후 부천 소사의 한 산을 개간해서 백성목장(白性牧場)을 세웠다.

백성목장은 목장이었지만 도량(道場)의 역할도 했다. 공부의 기본을 '금강경(金剛經)'으로 삼고 아침저녁으로 금강경 독송을 강조하면서 '경전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이 곧 제 마음을 닦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제자들을 통해 '금강경독송회', '바른법연구원'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백성목장을 경영하면서 인연 있는 후학들을 지도하다 1981년 출생한 날인 8월 16일에 입적했다.

다비 후 양주 대승사(大乘寺)에 사리탑과 비(碑)가 세워졌으나 호우로 사리탑이 휩쓸려갔고, 계곡에서 다시 찾아내어 백성목장 뒷편 언덕으로 옮겨졌고, 동국대학교 총장 백성욱박사탑과 함께 세워졌다.

가족으로 부인과 두 딸이 있는데, 부인은 총장 시절에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두 딸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다음은 백성욱 박사 법문 중 일부이다.

 

미륵존여래불(彌勒尊如來佛)을 마음으로 읽어서 귀로 듣도록 하면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을 연습하십시오. 궁리를 가지면 병이 되고 참으면 폭발합니다. 이것이 닦는 사람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으시되 직접 부처님 앞에서 마음 닦는 법을, 강의 듣는 마음으로 믿어들으시고, 실행하여 습관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육체는 규칙적으로 일하시고, 정신은 절대로 가만 두십시오. 이와같이 100일을 일기로 하여 대략 10회 가량 되풀이 하시면 몸뚱이로 인연한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장차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은 아상이 없어진 연고입니다. 이것을 초심불교의 행상이라고 할까요. 주의 하실 일은 공부하겠다면 탐심이요, 공부가 왜 안되냐 하면 진심이요, 공부가 잘된다하면 치심이니 이 세 가지 아니하는 것이 수도일진댄 꾸준히만 하시되 안하지만 말면 됨이라. 고인(古人)은 사가이면면 불가이근근(斯可以綿綿 不可以勤勤)이라 했지요.

 

다음은 백성욱 박사 어록이다. 너무 많아서 일부만 적었다.

 

1. 남자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다시 손대지 못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2. 천하를 버틸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손에 닿는 일만 하라

3. 자기 힘이 10이라면 무슨 일을 할 때, 7정도만 쓸 것이지 10을 다 쓰지 마라

4. 100만원이 소요되는 장사를 할 때에는 300만원은 있어야 한다. 장사는 실제 하려다 3번 실패할 때쯤 되면 장사가 터득이 될 것이다.

5. 남을 공격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남이 공격해 올 때 방어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아니된다.

6. "채근담"은 참 좋은 책이다. 그대가 좋은 일을 할 때 채근담은 그대를 향해 무한히 칭찬할 것이다.

7. 백전영웅 지불법(百戰英雄 知佛法) 김유신 장군의 말씀대로 많은 일을 터득할 때라야 불법을 안다.

8. 세상을 다 이해하면서도 얽매이지 않는 것, 이것이 세간속의 불법이며 탐심을 깨치는 방법이다.

9. 침술을 배우고자 할 때 침술의 서적을 부지런히 읽어 그 글쓴이의 마음과 상통이 될 때 침술을 배웠다 할 수 있고, 이때야 비로소 시술이 가능한 것이다. 금강경을 부지런히 읽는 것은 금강경을 설하신 석가여래의 마음과 상통하기 위함이다. 

10. 공부하는 마음으로 침술을 배우게 되면 나중에는 침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만지기만 하여도 병을 고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마음으로 원만 세워도 고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14. 세상은 남의 말을 따라 다니며 살지 말아야 한다. 항상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17. 현재 현재에 진실하면, 미래 미래는 완전할 것이다.

18. 하루에 오직 12시간만 살아라. 더 살려 하지 마라.

20. 대화를 할 때, 입이 미끄러우면(말이 남발되는 것을 느끼면) 거기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21.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여야 나중에 마음에 미안한 것이 훨씬 적다.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벙어리를 증하기 쉽다.

22. 돈을 지니자마자 금방 다 써버려서 없어지는 사람은 복 지은 것이 없어 몸에 오래 지니지 못한다.

24. 자신의 아상을 닦아서 지혜가 밝아지면 주변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27. 무슨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잘 아니 되는 것은 마음속에 '안될걸'하는 자신 없는 마음 때문이다. 이 아니 된다는 마음이 진심 즉 성내는 마음이니 이 마음만 닦으면(제거하면) 아니 되어질 것이 없다.

28. 공부를 천년만년 할 생각이면 급할 것이 없다. 어서 하려는 마음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이요, 어서 한 뒤 쉬겠다는 마음이다.

29.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항상 반문하라. 그리고 그때 '무슨 생각이든 부처님께 드리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라.

32.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에서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도인의 지혜이다. 

34. 궁리 끝에 알아지는 것과 같은 것은 다 틀린 것이다.

35. 아랫목에서 공부할 때 윗목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도 참견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져야 한다.

36. 남에게는 관용으로 대하되, 자기 자신에게는 철저히 하라.

38. 남이 잘난 척 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은 그대의 잘난 척 하는 마음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39. 자신의 몸뚱이 집착을 다스릴 수 있어야 상대방을 다룰 수 있다.

40. 좋아하는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이나 똑같다.

41. 좋고 싫음이 마음속에 남아있는 한 재앙이 남아있게 된다.

42. 부처님께 모든 생각이든 바쳤을 때, 진실이면 다 되어지고 진실 아닌 것은 아니 되어진다.

48. 모든 분별심, 생각들은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50. 몸뚱이의 애착, 몸뚱이를 보호하는 본능 때문에 좋은 일 보다는 언짢은 일을 더욱 많이 기억하게 된다.

62. '감사하다'는 마음을 일부러 지어서라도 하는 연습을 하라. 마음이란 꿈에도 감사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63. 공경심은 아상을 제거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부처님 소리만 들어도 합장하고 공경심 내는 마음을 연습하라.

64. '부처님 날 좋게 해주십시오.'하는 것보다는 '부처님 잘 모시기 발원'하라. 부처님 날 좋게 해 주십시오 하면 깜찍하고 실감나는 것 같지만 부처님 잘 모시기 발원하는 것이 싱거운 것 같아도 더 공덕이 크고 자꾸 연습하면 싱거운 것이 변해 실감을 느낄 때가 오게 된다. 

66. 이 우주 삼라만상이 펼쳐지는 것은 그대 마음 닦은 대로의 표현이다.

67. 죽은 사람은 생각지 마라. 죽은 사람의 기운은 물같고 산사람의 기운은 흙과 같아서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흙이 물에 씻김과 같이 산사람의 기운을 감손하게 된다. 

69. 이 몸뚱이 있는 한 부모는 절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몸뚱이 착의 연장이라 별 공덕이 되지 않지만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몸뚱이 착을 거슬러 올리는 것이므로 공덕이 된다.

70. 부자지간, 부부, 형제지간의 남의 일은 간섭하려 해서는 안된다.

71. 공부하는 중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 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정히 바쳐야 한다.

72. 자신이 가짓껏 못난 줄 알아야 몸뚱이 착이 고개를 못 든다.

80. 상대방과의 대화 중에 '안 된다'라는 말은 가급적 삼가고 '네' 또는 '생각해 보겠습니다.'하라. 안 된다는 말을 자꾸 해서 마음속에 아니라는 것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81. 무슨 일을 하려면 원을 세워서 판단에 의존하여 할 것이며, 선입관이나 하려는 의욕에 의해 하지 말 것이다.

94. 마음에 간절히 그리면 그린대로 되어진다. 그래서 중생은 시시각각으로 소원성취를 하고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불만을 품고 있다.

107. 지혜는 몸뚱이 착을 닦아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지, 닦는 장소가 따로 있거나 이러저러한 형식이 있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109. 금강경은 부처 짓 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지 부처 하겠다는 것을 가르치지는 안했다. 

 

참고:

memory.library.kr/files/original/da3aff488f43b1cf86d1c4019de87b88.pdf

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2410

y-archive.com/%EB%B0%B1%EC%84%B1%EC%9A%B1-%EB%8B%98/

m.blog.naver.com/dlpul1010/221701098057

ko.wikipedia.org/wiki/%EB%B0%B1%EC%84%B1%EC%9A%B1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2177

www.youtube.com/watch?v=qUQe9ux7G2Q

금강경 이야기, 김동규, 금강경독송회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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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