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 '신해철의 쾌변독설' 책에서 감명깊었던 부분
최근에 신해철의 책 '마왕 신해철'과 '신해철의 쾌변독설' 두 권을 읽었다. 이중 내가 감명받은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해철의 쾌변독설'
1.
고3 때까지 꿈은 신부가 되는 것이었고, 실제로 대학은 철학과를 가서 종교를 부전공으로 택했다고 한다. 종교를 공부하면서 기독교 역사 전체가 이단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기독교에도 불교처럼 '윤회'의 개념이 있었는데 6세기 경에 소멸했고, 종교의 형태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무엇을 이단으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이 없으며 또한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만행(예: 십자군 전쟁)을 감옥에 들어갔을 때 상당 부분 공부해두었다고 한다.
*"종교의 형태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무엇을 이단으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이 말이 감명깊었다.
2.
김영삼(YS) 정권 실세 중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나서 "방송에 귀걸이나 이런 걸 짜잘하게 터치하지 말라고, 문민정부라고 하면서 이게 뭐냐고"하자 "왜 우리가 가수들이 귀걸이 달고 나가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답을 얻었다. 이어서 "정부 차원에서든 어느 차원에서든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가수들 방송 나갈 때 귀걸이 못 답니까? 왜요? 가순데요"라고 거꾸로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추적을 했는데 결국 지시한 자를 찾지 못했다.
*아마도 과거에 있었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때문에 정권 실세에게 이런 질문을 한 거 같다.
3.
우리나라 교육에서 싫어하는 점 중 하나가 "어른이 될 것을 유보하도록 강제를 하면서 어른이 될 준비를 안 시켜준다는 겁니다"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또는 9학년 이상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때 벌써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달고 치장하는 법을 배워서 졸업파티 때 드레스를 입고 성장한다고 한다. 이것이 어른이 되는 연습이라고 한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졸업할 때까지 교복을 입고 있다가 졸업한 다음 날부터 '땡'하고 너 어른이라고 하니 제대로 감당할 수 없고, 이것은 세련되지 못한 교육방식이다. 이어서 "도둑질이 해본 놈이 한다고 어른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라고 했다.
*"도둑질이 해본 놈이 한다고 어른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 이 말이 감명깊었다.
4.
체벌을 내려놓으면 학교 붕괴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정작 학교 붕괴를 일으키는 것은 교사들이다. 그 이유는
(1) 체벌을 한다.
(2) 돈을 받는다(촌지).
이러면 선생들이 할 말이 없어야 하고 "나는 안 그랬다"고 말하면 안된다. 이러면 교사로서 부끄러워야 하는데 아직도 교사들이 돈을 받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부모에게 삥을 뜯고 있으니 학교붕괴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말이 안된다)이다.
*현재 체벌은 학생인권조례 통과로 금지되었고, 김영란법이 통과되어서 촌지는 사실상 금지된 것이나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5.
부모가 자녀에게 실망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윗 사람들은 정당화를 위해서 '자신들이 한강변의 기적으로 전후 경제를 기적적으로 복구시킨 주인공'이라고 하나 아랫놈들은 '당신들이야말로 한국 동란의 주역이다, 당신네들 세대에 전쟁나지 않았냐?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 식민지되고, 우리 아버지 세대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났는데 어쩌면 그렇게 떳떳할 수 있냐?'라고 한다.
6.
자녀를 위해 부부 생활을 양보하지 않는다. '가정의 기준은 부부이고 그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난 것이지, 자녀가 중심이 되고 부부가 부가 되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아이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필수적 출발점은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자녀와의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지 자녀에게 열심히 잘하는데 부부 사이가 안 좋고 '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산다'고 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사이가 안 좋다면 이혼을 하는 것이 낫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좋아하는구나'를 자녀들이 보면서 자라는 것이 교육의 절반 이상이다. 또 자녀가 집을 보고 혼자 지내는 것도 교육시켜서 부부가 (자녀 없이)여행갈 때 집을 잘보게 해서 놓고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부보다 자녀가 중심이 되는데 이것은 오히려 자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7.
공부에 재주가 없는 아이들을 억지로 공부시켜서는 안된다. 공부는 재능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해야 하고, 그 나머지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 앞으로 살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특수 계층이 하는 공부를 전 국민에게 강요하면 안된다. 내 아내(윤원희)는 수학, 물리, 화학, 경제를, 나(신해철)는 역사, 문학, 음악, 예술을 가르칠 수 있다. 집사람과 내가 합치면 일본어와 영어를 가르칠 수 있으므로 애들 학교 안보내려면 안보낸다는 결론이 났다. 학군도 상관없고 학원도 안보낼 것이다. 아이랑 일본어로 한두 시간 놀아주면 그것이 과외이고 놀이이다.
Q: 아이가 음악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A: 지가 알아서 하겠죠.
Q: 재능이 있다면 도와주실 거잖아요.
A: 그건 부모로서의 의무잖아요. 1+1=2처럼 명백한 거잖아요. 만일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으면 밀어주겠다, 저는 그 단어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자기가 음악에 대한 정열이 있다면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설사 재능이 없다고 해도 지가 좋다는데, 재능이 있다 없다를 판단해서 부모가 해라 마라 얘기를 하면 되나요? 정열이 있다 없다를 봐야지.
Q: 예전에 연예계 생활을 하셨던 분들 중에서 내가 해보니까 힘들어서 내 자식은 시키지 않겠다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은데요.
A: 연예인 생활 하면서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저만큼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놈도 없지 않아요?
*"공부에 재주가 없는 아이들을 억지로 공부시켜서는 안된다.", "아이랑 일본어로 한두 시간 놀아주면 그것이 과외이고 놀이이다.", "재능이 있다 없다가 아닌 정열이 있다 없다를 봐야 한다" 이 세 말에 감명받았다.
8.
교사들이 '말을 안들어서 안때리면 안된다'고 하는데 자기들이 때리기 때문에 교사의 권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폭력이라는 것도 연구가 많이 돼서 과학적 데이터가 있다. 안 때리는 중국은 15억 인구를 무엇으로 통제하느냐? 안 때리는 일본이 우리보다 교육이 못한가?. 일본 만화 중에서 학생들이 선생을 패고 엉망진창인 극단적으로 설정한 만화를 보고, 일본 교육은 몰락해서 학생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큰일 날 소리다.
부모에게 맞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면서 선생한테 맞으면서 자란 아이는 괜찮다는게 무슨 말인가?
여기서부터 '마왕 신해철'
9.
'삼국시대'라는 용어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외에도 부여, 가야 등등의 우리 민족 국가들이 있다. 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말은 구라(거짓)이고 신라는 이국(신라와 백제)을 지탱했을 뿐 고구려 땅은 되놈(중국)에게 넘겨줬다가 그나마 발해가 있었기에 욕을 덜 먹은 것이다. 신라가 '통일신라'면 발해는 중국 나라인가? 남북조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을 이민족(중국)과 결탁해 후손들 먹고살 넓은 땅 부존자원 싹 다 남에게 떼어준 민족 반역자(신라)들에게 통일신라는 가당치 않다.
당신이 큰 집에 세들어 산다고 하자. 어느날 2만 평의 정원, 방 15개의 본채, 풀장, 골프연습장 몽땅 빚쟁이한테 넘겨주고 당신 살던 쪽방에 보태서 큰 방 하나 더 차지했다고 하자. 당신이 그 집 샀다고 말할 수 있어?
통일신라, 지랄하네 아무래도 경상도 사람들이 만든 얘기 같다.
*우리나라 역사가 가진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 부분이다. 신라가 중국(당나라)과 결탁해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켜 고구려 땅은 당나라에 주는 대신 백제 땅을 먹어서 현대에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흉노족 신라왕족설'("신라 왕족은 '김일제(金日磾)'라는 흉노족의 후손이다"라는 주장)을 이용해 경상도 지역을 '흉노'라고 비하한다.
10.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은 2만 평의 정원 찾으려고 싸우러 갔다가 싸울 자신이 없어서 회군해서 늙은 부모 패고(고려 멸망) 내가 가장이다 하고 외친(조선 건국) 민족 반역 행위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성립부터 그 모양이다. 그렇게 생긴 나라가 뭐 잘될 일이 있겠는가. 결국 유교에 매달려 역사상 정신적으로 최약체 국가로 전락했다. 유학자들의 역사관은 자신들을 조선 왕의 신하가 아니라 '중국 황제의 꼬붕'인 조선 왕의 신하로서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 약간의 인척관계인 만주족(옛 말갈족)이 명나라를 아작내도 이민족 황제(명나라 황제)를 걱정해 울고불고하면서 청나라한테 원수를 갚는다고 꼴값을 떤다.
더 쪽팔린 것은 그나마 그 원수 갚을 힘도 없으면서 개기다가 싸움 시작 5초 만에 피떡이 되도록 얻어터지고 임금이 땅바닥에 대가리 박고 삼고구배(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아홉 번 절을 함)하는 개쪽을 겪은 일이다. 국제관계에 대해 안목이 있던 임금(광해군)은 내쫓고, 기껏 임금이라고 밀어준 놈이 그 삼고구배한 인조다.
*"위화도 회군이 싸우러 갔다가 싸울 자신이 없어서 회군해 늙은 부모를 패고 내가 가장이다" 라고 하는 말에 가장 감명받았다. 또한 "그렇게 생긴 나라가 뭐 잘될 일이 있겠는가", "결국 유교에 매달려 역사상 정신적으로 최약체 국가로 전락했다" 이 두 말도 감명깊었다. 또한 조선이 역사상 정신적으로 최약체 국가로 전락했다는 것 때문에 유교가 비판받고 있다. 참고로 조선이 건국될 때 건국이념이 유교가 된 것은 고려말 불교의 타락이었다.
11.
독재정권이 국민을 다루는 주요 수단은 공포다.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시작해 대마초에 대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군사독재정권은 언제나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해 공포를 조장하는 쪽을 선호했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쪽을 선호한 적이 없다. 게다가 이 사회의 만만한 샌드백이자 밥인 연예인들을 정기적으로 내려침으로써 정치적 불안정 상황이나 기타 사회적 문제로부터 대중이 눈을 돌리게 하는 수법은 독재정권에게는 언제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다. 검차, 경찰도 마찬가지. 단 한건의 수사로 다른 일반인 다수의 구속보다 더 큰 효과를 낳는 연예인 관련 사건을 완화해 처리할 이유가 전혀 없다. 두들겨 맞은 것은 연예인과 예술인이고, 눈과 귀가 닫힌 바보가 된 것은 대중이다.
나는 대마초가 좋은 것이라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다만 늑대가 나타났다면 늑대가 나타났다 하고 소리칠 일이지, 토끼가 나타났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소리지르는 데는 다 숨겨진 이유가 있다.
*공포. 이것은 과거의 군사독재정권의 정권유지용 도구에서 현재 사교육계가 부모의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데 사용되는 도구가 되었다. 토끼가 나타났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지록위마(指鹿僞馬)이다. 추가로 청소년 문제를 만화 탓, 게임 탓 하는것도 이와 같다고 본다.
12.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는 '노약자석'이 있다. '노(老)'에 해당되는 사람은 찾기 쉽지만 '약(弱)'에 해당되는 사람을 찾는것은 어렵다(외관상으로 확인이 어렵기 때문). 그러므로 '노'자들이 필사적으로 압력을 가하면 우리는 철저히 '약'자 행세를 해야 한다.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외국인들도 감탄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미덕'중 하나인데 내국인 또는 어린 사람일수록 짜증나는 일이 수 있다.
'미덕'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닥고 갸륵한 덕행'이므로 자리를 양보하면 '아름답고 갸륵한 덕행'이지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악행'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에서 자리 양보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는 악한으로 취급받는다.
노인은 마땅히 보호하고 모셔야 할 분들이며 우리 자신의 미래 모습이지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모욕을 주는 행위는 부당하다. 그 결과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자는 취지와 미덕은 낯선 이에게 근거 없는 권리를 내세우는 살풍경으로 퇴색되고 매일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짜증스러운 일이 되어버린다.
'노'자도 '약'자도 아닌 우리가 어르신 또는 아줌마가 서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봉변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 "임신한 지 얼마 안됐다"고 말한다.
남자: "전방에서 철책 근무하다 다리를 다쳤다"고 하고 버스가 출렁일 때마다 크게 몸을 휘청이다.
남학생 또는 여학생: 쉴새없이 기침을 토해내며 가슴을 쥐어뜯다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노인이나 아줌마의 무릎 위로 쓰러진다. 정말 화가 많이 났다면 입에 거품도 물고 흰자위도 드러내 보이고, 앰뷸런스가 올 때까지, 그러고는 들것에 실려가며 떨리는 손으로 자리를 뺏은 사람을 가리킨다.
앞에서 말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모욕을 주는 행위가 교통지옥 서울에서 살면서도 자가용을 사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려왔다. 그 근원을 따지고 들자면 세계의 중심인 중국 주변에서 유교적 질서에 편입되어 철저한 중화사상에 의거해 종주국인 중국을 깍듯이 섬긴 나라로 우리나라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욱 웃긴 것은 우리의 민족성이 순박하고 온후해 인심이 후하고 서로 예의를 잘 지킨다는 주장이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을 때 육두문자(욕설)를 하며 소리지르는 것을 보고 요즘에는 이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노인들의 행위로 인해 '노슬아치', '나일리지', '틀딱' 같은 비하적 용어가 만들어졌다.
13.
고3이 되면 부모들은 "딱 올 한 해만 그저 죽었다고 생각하자꾸나"라고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게 아닌 '좀비'들이 무려 60만이나 고등학교에 간다. 실제로 이들은 인간처럼 36.5도이고 심장은 뛰고 있다. 팔팔한 청춘들을 순식간에 시체로 만드는 이 미친 나라에서 선생 또한 부모와 한패이다.
"너희는 공부하는 기계다.", "대입 실패는 인생 낙오요, 대입 성공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이 분위기에서 "선생님, 진정으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매질에 욕설은 양념이고 거기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감은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라고 했다가는 원산폭격 자세로 매질당하고 "대가리에 똥만 든 새끼, 그딴 생각이나 하니 성적이 떨어지지. 대학교 가서 물어봐 새끼야!"등등의 소리를 듣게 된다.
입시철이 되면 찬바람 부는 가운데 학교 담벼락에서 기도나 염불을 외우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나(신해철)에게는 뜨거운 모정 또는 끔찍한 자식 사랑이 아닌 단지 주접으로 보인다. 우리 아이 붙여달라고 비는 것은 남의 집 자식 하나 떨어뜨려 달라는 것이다. 부모의 '지극히 헌신적인' 애정표현으로 포장된 이 장면들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철저히 금기요 천인공노할 일이다.
진정 자식을 위하면 저 자신을 위해 하는 공부에 감투 씌워주지 말고, 모의고사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시험 당일이라고 기름진 반찬 주지 말고, 시험 망쳤다고 한숨 쉬지 마라.
수능은 단지 시험이다. 뭘 어쩌자고 난리인가?
우리의 '어버이'들은 집단 (중증)정신병을 앓고 있는 슬픈 세대다. 우리나라를 하나의 집안으로 보면 할아버지 때는 힘쎈 놈에게 두들겨 맞고 머슴살이 하며 끽소리도 못했고(일제강점기), 아버지 때는 친형제간에 칼로 싸웠다(6.25전쟁). 그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정상이면 이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국부'라고 불린 초대 대통령은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녹음방송을 틀어놓고 자기 먼저 도망치고 한강다리를 폭파시켜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피눈물을 흘리며 걷던 피란길에서 부모 손을 놓치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아야 했다. 이들 세대에게는 단순하고 강렬한 생존본능이 집단무의식으로 형성되었고, 그 패러다임은 1970년대에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말로 구체화되어 대한민국을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상스러운 국가로 전락시켰다.
현재 우리 가정에서 청소년의 뇌 깊숙한 부분을 가격해 몸서리치는 강력한 말이 몇 개 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다 널 잘되라고 하는 말이다."
"입을 거 못 입고 먹을 거 못 먹고 키워놨더니 이 자식이 어따대고...."
14.
내 학창시절에 어떤 선생도 학문의 아름다움이나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수학의 공식을 무조건 암기하기 이전에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수학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전하는 선생이 없다. 현실에서 우리는 의미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듯 공식을 암기해야 하고 암기하지 못하면 매질을 당한다.
대학 진학 후 지수의 발명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평소에 다루는 숫자는 수천수만인데, 천문학의 발달로 인간의 의식이 우주로 확대되자 무한에 가까운 엄청나게 큰 숫자를 쉽게 다룰 필요가 생겼다. 그 해결책이 지수라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X새끼들은 우리가 배우는 과목들의 존재 이유와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성공하기 위해 아니 적어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는 반복적 중얼거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할 뿐, 왜 그들은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역사의 장엄함에 대해서, 화학의 마술과도 같은 신비함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가축으로 여기고 몰이꾼 노릇을 했을 뿐, 한 번도 우리를 대지를 박차고 달려나갈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주지 않았다. 그러무로 우리도 저 어른들을 X같이 여기고 알로 본다.
우리 학생들에게 국사란 이런 것이다.
고구려 멸망 668, 고구려 멸망 668, 고구려 멸망 668......
때문에 고교생의 수준에서 고구려 멸망 시기인 7세기 무렵 아시아의 역학관계를 설명하고, 동시대 유럽의 움직임을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며, 유라시아 유목민 제국의 여러 차례에 걸친 등장과 몰락 과정 속에서 만주라는 지역이 갖는 특징을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다른 모든 과목이 그러하듯이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 또한 개판이다. 과연 다음 질문에 소신껏 답할 수 있는 고교생이 몇 명이나 되는가?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지나간 역사는 왜 우리의 현재에서 중요성을 가지는가."
이러한 문제를 철저하게 사유하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이것(고구려 멸망 668)부터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이야기부터 듣는다. "이번 입시의 문제 출제 경향과 그 대처법 어쩌고...."
방법도 잘못되었지만 내용도 잘못되었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도무지 '반성'이란 게 없다. 소아병적 콤플렉스로 인해 작은 자랑거리를 침소봉대하고 인종차별적으로 민족의 우수성 운운할 뿐 왜 우리가 약소국이 되었는지, 왜 강대국 사이에서 정신을 못차렸는지에 대한 분석과 반성이 없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역적, 반역자, 비애국자로 몰릴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일본 문화는 대부분 한반도를 거쳐 전래되었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당나라 때 일본은 중국으로 견당사(遣唐使, 겐토시)를 파견해 직접 문화를 수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교역을 통해 서구와 교통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 교육은 일본 패망 직전까지 가열찬 독립운동을 했다고 했으나 실제로 미력한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게다가 일부 지식인들과 지도층 인사들이 변절해서 친일파가 되었다.
이런 역사를 후손에게 알리고 반성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반성은 없고 일제의 만행만 규탄해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중국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 민적의 사고는 고구려에서 멈춰있다. 최소한 그 때는 중국과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공에도 끝까지 저항해서 독립만을 지켰다고는 하나 실제로 고려는 원나라의 지방정권으로 전락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역시 조선이 중화세계에 편입된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조선의 국왕에 충성하는 것이 아닌 '중국 황제의 봉신인 조선의 지배자'를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창피한 것은 아니다(예: 프랑스와 로마제국, 위구르 왕국과 중국).
(중략)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긴 하지만 이런점은 절대 닮지 말아야겠다고 하듯이 우리 민족사의 오점과 무능도 사실로 인정하고 거기서 더 많은 교훈을 추출해야 한다.
역사왜곡을 규탄하기 전에 우리 역사에서 자뻑과 허풍을 덜어내고 진실만을 남겨야 한다.
15.
한국 여자들의 꼴불견
(1)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대상이 자신의 기준 이하일 경우,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한다.
(2) 게다가 "글쎄, 어젯밤에 말이지..." 하면서 누가 자신에게 고백했고 자신이 어떻게 일언지하게 거절했는지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고 생각한다.
(3) 친구와 친구 애인 사이의 일을 모조리 알아야만 하며, 친구 애인은 무조건 자신에게 검증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으면 친구를 배신자로 간주한다.
(4) 화장실을 같이 가는데 문을 걸어 잠그고 위의 (2), (3)의 패턴을 반복한다. 그러고 절대 나오지 않는다.
(5)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대상이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면 (1)과 다르게 행동한다.
(6) 위 (5)처럼 행동하도록 조장하는 사람은 엄마거나 친구들이며, 이들은 연애 기간 동안 합동참모본부를 개설하고 일거수일투족에 개입 및 감시한다.
(7) Yes와 No를 불분명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이로 인해 상대방이 조급해하거나 쩔쩔매면 그 상황을 매우 즐긴다.
한국 남자들의 꼴불견
(1)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대상이 자신의 기준 이하일 경우, 여자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을 정도로 못되게 군다.
(2) 애인의 친구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받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애인에게 여러모로 떼를 쓰며 애인의 친구들과 경쟁한다.
(3) 애인의 외교권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딴 남자가 자신의 애인에게 말을 걸어오면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나 도전으로 간주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불사한다.
(4) 애인을 자신의 엄마와 은근히 비교하며, 자신의 애인이 자신의 엄마만큼 인내하고 양보하고 충실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줄 경우 그것을 당연시한다.
(5) 애인이 분명히 No라고 얘기해도, 내숭으로 생각하며 저 혼자 Yes로 간주한다.
(6) 하룻밤 육체관계가 성립되고 나면, 말투가 명령형으로 바뀌며 행동이 180도 달라지고 여자를 자기 소유물로 여긴다.
나(신해철)는 도쿄, 뉴욕, 런던에서 낯선 여자들에게 헌팅 거는 것을 즐기는데 이는 낯선 여성에게라도 예의를 다해 접근하면 상대방이 나를 무슨 짐승 취급하거나 범죄자 보듯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반면 우리는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면서도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걸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소통 부재의 공간을 살아가고, 심지어 자신에게 누군가가 호감을 표시하며 접근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고 겸손하기보다 교만과 불친절로 응답해버린다.
런던에서 어떤 체격이 큰 흑인이 "I like your shirt"라고 이야기 했을 때 "Thank"라고 하거다 더 세련되게 답하려면 "3 pound" 또는 "Your hat is nice"라고 답하면 된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툭툭 대화를 주고 받는 일이 매우 흔하고 "I like your shirt"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반갑다는 뜻으로 또는 친밀감이 가는 상대에게 별 의미 없이 던지는 말이다.
16.
과거 연료가 귀하던 시절에 어두운 호롱불에 책을 읽는 것은 굉장한 사치였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형 인간'이 맞는 것이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기 보다 불을 사용하고 자연에 맞서 투쟁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최후반기에 밤을 밝힐 수 있는 '전기'를 손에 넣었다.
이처럼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가장 알맞은 형태의 시간대와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신해철은 야간 생활의 장점을 앍리기 위해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놀자'님을 통해 야간생활자 10계명을 책으로 전달했다.
(1) 수면 환경에 투자하라(인공적인 어둠으로 스스로 방어하라).
(2) 수면 환경에 또 투자하라(인공적인 적막을 만들어라).
(3) 운동을 하라(야간에는 병원이 문을 열지 않는다).
(4) 술, 담배를 조절하라('절제'와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이다).
(5)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야간생활'과 '규칙생활'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6) 음식에 투자하라(부지런히 움직여 손수 밥도 짓고 밑반찬도 몇 가지 장만하라).
(7) 친구를 만들어라(야간생활자들은 방콕족으로 전락하기 쉽고, 그렇게 되면 악플러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8) 이후로는 실전되어 전달이 되지 않았다.
다음은 야밤형 인간의 우월성이다.
a. 밤에는 집중력이 높아지고 감성이 풍부해지며 낮에는 결코 떠올릴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낼 수 있다.
b. 빛과 소음에 시달리지 않는다. 번잡한 환경에서 벗어나 우아하게 사는 야밤형 인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족이다.
c. 교통 체증을 겪지 않는다. 야밤에 강남에서 불광동(은평구)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다.
d. 귀찮은 인간들을 피할 수 있다. 밤에는 잡스런 인간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17.
대한민국에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고 고소득자가 아닌 사람이 집 한 칸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를 악물고 살기 위한 시간은 30년 이상이 된다. 30년만에 집을 사면 그때는 나이가 이미 50을 넘어선다. 그때부터 인생을 즐기려고 해도, 남들이 인생을 즐기라고 등을 떠밀어도 그렇게 못한다. 그 이유는 아끼고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을 즐기려고 마음을 먹어도 몸이 따르지 않는다.
나(신해철)는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다. 따로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노는 건 정말 때가 있다. 놀 수 있을 때 놀아줘야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학교 갈 나이에 학교에 가서 취직을 할 나이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할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나이에 아이를 낳고 집을 살 나이에 집을 사는....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삶의 보람과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상상하고 디자인한 후, 그런 이후에도 학교 갈 나이에 학교를 가서 취직할 나이에 취직을 하고 결혼할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나이에 아이를 낳고 집을 살 나이에 집을 사는 삶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살지 않으면 너는 망할 거야"라는 협박을 듣게 되고, 시나리오가 성공한다 해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하는 공허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공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며 들들 볶아댄다.
18.
남학교는 선생에게 받는 신체적 체벌을 웃어넘기는게 관례다. 수학선생님이 내(신해철) 뺨을 때렸고, 내가 맞은 이유를 수긍할 수도, 체벌의 방법 또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선생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는데 피했다. 그리고 월말고사에서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고, 이것으로 인해 수학책과의 인연이 끊어졌다.
이것이 신해철이라는 성질 못된 애가 혼자 유별나게 구는 것이라는 생각은 당신의 착각이다. 반응의 형태가 다를 뿐이지, 다른 남자들 역시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학생 때는 부모 보기 미안해서 "X새끼야 학교 안다녀"소리를 못내고, 어른이 되어서는 마누라와 자식 보기 미안해서 부장 얼굴에 사표를 못던진다.
성적인 면에서도 남자들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흔히 대한민국 남자들은 성적으로 도둑놈들이며 단물 빼먹을 상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들이고, 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인 방종이 용납되는 속 편한 존재들로 취급당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성 뿐만 아니라 남성이란 자체가 성적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부인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상대에게 성적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이 두려와 격무에 시달리는 와중에 보약도 챙겨먹고 운동도 수시로 해야 하는 만능 노예, 이것이 현대 남성의 모습이며, 그 보약과 운동의 이면에는 즐기자는 표면적 이유 외에도 이러한 두려움이 있다.
대가족 가부장제의 가족 구조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분가시키는 것은 가장이 아닌 장남의 몫이었다. 장남에게만 특별히 몇 가지 밑반찬을 챙겨주고 형제자매들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장남이 예뻐서가 아니다. '예뻐서' 챙겨주는 것은 막내이고, '불쌍해서' 챙겨주는 것이 장남이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나 "뭘 하든지 너 하고 싶은 걸 하렴. 엄마 아빠는 알아서 잘살테니...."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고, 게다가 "어서 자라서 너한테 들인 학비며 기타 등등 다 갚고", 특히 "좀 번듯하게 되어서 부모 '체면' 확실이 살려다오..."하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지 않지만 분위기는 은근히 이런 쪽이다.
아들로서의 위치 뿐만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위치도 마찬가지다. 한국 남자처럼 큰소리 뻥뻥 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고, 그 허풍과 큰소리의 대가로 독박을 쓴다.
서양은 맞벌이 커플인 경우가 다수이고 경제적으로 대등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애교 떨고 밤에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때문에 평소에 한국 남자처럼 경우에 어긋나는 억지를 부리지 못한다. 그러니 프로포즈할 때 "내가 널 책임지겠다"는 표현이 없다.
만약 서양 사람한테 부인이 "내가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애 기르고 요리해주면 어때?"라고 물어보면 "미쳤냐? 왜 나 혼자 개고생해야 돼?"라는 답을 듣게 된다. 가사노동도 자동화, 인스턴트화로 부담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배우자가 집에 있기보다 한푼이라도 벌어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 남자들(정확히는 조선시대 남자)은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도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여성을 골방에 처박고 500년간 파트너와 동반자적 관계로서의 여성들을 잃어버렸다. 여성은 비즈니스, 정치,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대등한 또는 변별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의 중요 자산이다. 이걸 모르고 여성을 골방에 가두고 "내가 책임질 테니가 집에 있어"라고 외친 뒤 혼자 뛰다가 40을 넘어서 질병으로 황천가는게 한국 남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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