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 7.(서양교육사) 고대의 교육(2: 로마의 교육)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이탈리아 반도 티베르 강 기슭의 소규모 도시국가에서 거대 제국으로 발전했다가 동, 서로 분리되었고,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남하(476년)로, 동로마는 오스만투르크(1453년)에 의해 멸망했다. 초기에는 왕정이었으나 공화국으로 변모했다.
로마의 교육은 공화정시대와 제정시대로 나누어 다룬다. 공화정시대에는 교육이 거의 로마적이었고, 제정시대에는 그리스의 영향이 나타난 교육이었다. 그리스처럼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사상가는 부재했으나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 등을 통해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
공화정시대의 교육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기의 교육은 로마적인 교육이다. 이 시기의 로마문화는 조상의 관습과 가부장권, 12동판법에서 시작되었다. 이 문화를 기반으로 로마인들은 자녀교육을 했다. 로마인의 교육적 이상은 그라비타스(gravitas)로 요약되는데 이것은 신, 국가, 가정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한 인간을 만드는 훈련이다.
고대 로마인의 생활은 그리스처럼 국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아테네, 스파르타와 달리 가정이 힘과 법의 중심으로 간주되었고, 교육적 영향력이 컸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행위와 사회적 의무, 책임의식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양육을, 아버지는 지적교육을 담당했다. 로마인은 지적 교육을 불필요하다고 여겨서 회계장부를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쓰기와 셈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교육이 체계화되지 않았다.
로마에서의 교육은 국가가 아닌 가정에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주도하지 않았다. 로마교육의 이상은 공적 생활을 잘 할 수 있는(무기를 다룰 줄 알고 법률과 국가생활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고대 로마교육은 실제적인 교육으로서 소년들에게 농사, 병역, 공무수행능력,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을 가르쳤고, 소녀들에게는 방적, 직물법 등을 가르쳤다.
기원전 3세기 중엽 이후에 그리스 문화와 사상이 도입되었고, 이때 로마적인 교육이 그리스의 학교제도로 재구성되었다.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공화정 시대의 학교들은 사립이었다.
초등학교(루두스, Ludus)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를, 중등학교(문법학교)에서 언어와 문학을, 고등교육기관(수사학 학교)에서 문체학, 작품독서, 웅변연습이 이루어졌다.
제정시대의 교육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하면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초등학교, 문법학교, 수사학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공화정 때의 학교는 사립이었으나 제정시대에는 국립과 시립이었다. 황제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로마 전역에 학교가 설립되었고, 초등교육이 의무화 되었으며 학교들은 황제의 지원을 받았다. 황제는 특히 수사학을 중요하게 여겼고, 수사학 교육은 국가관리 또는 장교 등의 상류층이 되는 길이 되었다. 그 결과 수사학 교육의 내용은 공허해지고 형식화되었다.
로마인의 생활이 문란해지고 정치적으로 독재화됨에 따라 교육이 전반적으로 생활과 관련성을 상실했고, 그 결과 초기 기독교에 의한 교육으로 대체되었다. 초기 기독교는 학교를 세우지 않고, 기독교교육은 도덕적 훈련과 구원에 필요한 교리를 학습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신성하고 초월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 결과 로마의 학교는 쇠퇴했고, 기존의 문법학교와 수사학학교가 폐쇄되었다.
교육사상가
키케로
키케로는 로마의 고유한 특성과 그리스 정신을 융합해서 로마교육을 그리스화하는데 주력했고, 그리스인의 교육적 이상을 수용했으며, 수사학과 철학교과를 옹호했다.
자신의 저서 '웅변가론'에서 교육의 최종목적은 웅변가의 양성으로 규정지었고, 교육의 문제를 교육자의 입장이 아닌 대중 계몽가의 입장에서 보는 일반 교양인의 관점을 취했다.
교육받은 사람이 되려면 누구나 철학과 웅변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진정한 웅변가는 철학자라고 주장했다.
키케로가 제시한 웅변가는 박학과 윤리적 인결의 발달을 특징으로 하고, 이것을 후마니타스(humanitas)라고 불렀다. 사실적인 인식과 의견(신념)을 소홀히 하는 형식적 교육을 거부하였고, 웅변가를 위해서 전인교육, 진정한 국가-정치적인 신념, 포괄적인 사물에 대한 지식, 내적문화와 철학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헬레니즘 시대의 웅변술적 교육이상과 철학적 교육이상의 통합 추구)
퀸틸리아누스
퀸틸리아누스도 키케로처럼 웅변가의 양성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웅변가는 철저하고 완전한 교육을 통해 완전하게 된 인간이다. 따라서 수사학적인 학교를 비판하고 완전한 웅변가를 양성하기 위한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인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퀸틸리아누스의 주장에서 웅변가는 플라톤에서 철학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웅변가를 철학자로 만들 생각이 없었고, 웅변가를 유일하게 완전한 인간이라고 여겼다.
퀸틸리아누스는 학생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교사의 체벌을 반대했고, 어린이의 개인적인 흥미와 개성을 존중하고 발달을 고려해 어린이의 자발성을 키워주고, 건전한 명예심을 각성시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 '웅변가 교육론'은 로마의 교육을 가장 잘 서술한 저술로서, 가치가 있는 일반교육학적인 사상과 교수법적 사상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후대에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권위 있는 저서로 인정받았다.
참고자료:
교육학적 사유를 여는 교육의 철학과 역사, 정영근 외 3인, 문음사
교육철학 및 교육사, 조경원 외 4인, 교육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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