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 2.(한국교육사) 구석기 부터 통일신라 시대의 교육
한반도의 구석기, 신석기 사람들은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했지만 청동기 시대부터 부족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시작되었고, 강한 세력을 가진 부족장은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고 권력을 강화해 갔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성립되었다.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수용하고 중앙 정치조직을 갖춘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으나 한(漢)나라의 침공과 내분으로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다.
고조선에서는 8조금법을 통해 생명과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겼고, 부권 중심의 농업사회로 계급의 차별이 존재했으며, 화폐가 사용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철기문화의 보급으로 북부지방에 부여, 옥저, 동예가, 한강 이남 지역에는 진이 건국되었다. 이들 국가는 농업을 중심으로한 경제체제여서 대가족주의가 발달되었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고, 가부장적이였다.
인류의 교육은 실생활에서 성인들이 행하는 바를 단순히 모방하고 훈련함으로써 청소년들이 그 사회의 성인으로 인정받는 성인식으로 발달해왔다. 성인식을 통해 인내, 복종, 극기 등의 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도덕적, 종교적, 실제적 가치(실생활에서 필요한 기술)등을 전달했다.
고조선에서는 8조금법을 통해 생명과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겼고, 부권 중심의 농업사회로 계급의 차별이 존재했으며, 화폐가 사용되었다.
인류의 교육은 실생활에서 성인들이 행하는 바를 단순히 모방하고 훈련함으로써 청소년들이 그 사회의 성인으로 인정받는 성인식으로 발달해왔다. 성인식을 통해 인내, 복종, 극기 등의 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도덕적, 종교적, 실제적 가치(실생활에서 필요한 기술)등을 전달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자신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을 했다. 대체로 "문무(文武)의 균형", "심신의 조화", "지(知), 덕(德), 체(體)"의 병행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이 때는 교육에 대한 중국의 영향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고유한 교육이 가능했고, 나름대로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삼국은 모두 불교를 받아들였고, 불교는 삼국의 백성들의 가치관 형성에 기여를 했으며 불교의 자비, 인과응보, 호국 사상이 가치관 형성의 결과이다. 불교 뿐만 아니라 무속사상도 영향을 주었다(예: 인과응보).
삼국시대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여서 공통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무술을 가르쳤고, 한자를 사용했으나 이두, 향찰 등의 방법으로 우리말을 기록했다.
고구려의 교육
고구려는 귀족 자제들의 교육기관인 태학과, 지방의 귀족, 평민들의 교육기관인 경당이 있다.
태학은 소수림왕 때 설립되었고, 중국 동진(東晉)의 학교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귀족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유교경전(5경), 역사서(3서:[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한자사전(옥편), 문학서(문선) 등을 교재로 사용했고, 태학박사가 강의를 했다.
경당은 지방에 설립된 학교로 지방의 귀족, 평민들의 교육을 담당했고, 학문과 무예 및 병법교육이 이루어졌다.(문무의 균형을 중시하는 관 주도의 청소년 생활공동체)
백제의 교육
백제의 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5경박사제도, 역사서의 편찬, 일본과의 관계, 중국 역사를 통해서 백제의 교육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서기'를 편찬했고,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었으며, 5경박사를 일본에 파견해 유학을 전수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북주서에 따르면 말타기와 활쏘기, 고서, 사서 읽기 교육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교육부인 사도부(司徒部)와 장관 내법좌평(內法佐平)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에도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교육
신라의 경우 고구려, 백제에 비해 늦게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학교 대신 '화랑도'라는 신라 고유의 교육제도가 있었다. 초기에는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이었으나 진흥왕 때 국가 차원의 관리를 했다. 화랑의 수장으로 국선(國仙)화랑, 그 밑으로 화랑도들을 두었고, 각 화랑도에서는 한명 또는 여러명의 화랑이 수백 또는 수천명의 낭도(평민)들을 통솔했다.
화랑이 되기 위해서는 귀족신분, 수려한 외모, 덕성, 14~18세의 나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귀족 신분이 화랑의 요건이 된 이유는 평민인 낭도들을 통솔하고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화랑도는 도의교육을 중시했고, 도의교육의 핵심은 세속오계(世俗五戒)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을 충성으로써 섬긴다.
사친이효(事親以孝): 부모를 효로써 섬긴다.
교우이신(交友以信): 친구를 신의로써 사귄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전쟁을 할 때는 물러서지 않는다.
살생유택(殺生有擇): 살생은 가려서 한다.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은 유교의 영향을, 임전무퇴와 살생유택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음악을 통한 유대의식 강화, 국토순례를 통한 심신수양을 했다.
통일신라의 교육
삼국통일 이후 화랑도의 필요성은 줄어들었고, 대신 신라의 교육기관으로는 국학과 지방학교가 있다.
국학은 신문왕 때 세워졌고 당나라의 국자감을 축소시킨 규모였고 2개의 학관에서 유교경전과 기능교육을 나누어서 실시했다. 국학의 필수과목은 논어, 효경 이고 유교경전을 다음과 같이 3개 영역으로 나누어서 이수하게 했다.
1. (필수과목 논어, 효경), 예기, 주역
2. (필수과목 논어, 효경), 좌전, 모시
3. (필수과목 논어, 효경), 상서, 문선
논어와 효경은 인(仁)과 효(孝)가 올바른 교육의 근본이고 인간교육에 필수였기 때문에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
기능교육에는 산학(算學, 지금의 수학)이 있고, 율령학, 의학, 천문학, 주종(종 제작기술), 전자(글자 새기는 기술) 등의 기술교육은 별도의 전문적인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국학의 교수로는 박사, 조교가 있고, 학생은 대사에서 벼슬이 없는 15~30세 였으며 수업연한은 9년이지만 중간에 자퇴, 교육기간 연장이 가능했고, 장학을 위한 녹읍이 지급되었다. 졸업요건은 대나마 또는 나마 벼슬을 얻는 것이였다. 대나마, 나마 벼슬은 국학 설립 이전에 진골 또는 6두품 만이 오를 수 있는 벼슬이었으나 5두품 이하의 학생들도 오를 수 있었다.
국학에는 국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통달했는가의 여부로 관리로 선발하는 제도인 "독서삼품출신법"이 있었다. 이 제도는 국학생들의 졸업시험 겸 관리 등용시험으로 다음과 같다.
특품: 5경, 3사, 제자백가서에 통달한 자.
상품: 춘추좌씨전, 예기, 문선, 논어, 효경에 통달한 자.
중품: 곡례, 논어, 효경에 통달한 자.
하품: 곡례, 효경에 통달한 자.
이 제도는 실력을 중시한 과거제도의 시작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전승되었으나 진골의 반발로 인해 이 제도를 통해 등용된 자는 드물었다고 한다. 때문에 당나라 유학을 해서 빈공과(외국인에게 부여하는 과거시험)에 응시해 능력을 인정받고 당나라 벼슬을 받았다.
신라 경덕왕 때 "각 주(州)에도 조교를 두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앞에서 조교는 교수였기 때문에 지방에도 학교(지방학교, 향학(鄕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
교육학적 사유를 여는 교육의 철학과 역사, 정영근 외 3인, 문음사
교육철학 및 교육사, 조경원 외 4인, 교육과학사.
'교육학&수학교육 > 교육철학 및 교육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육사] 4.(한국교육사) 조선시대의 교육 (0) | 2019.07.28 |
---|---|
[교육사] 3.(한국교육사) 고려시대의 교육 (0) | 2019.07.15 |
[교육사] 1. 교육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0) | 2019.07.07 |
[교육철학] 6. 철학적 사유형식과 교육(3: 프래그마티즘과 교육) (0) | 2019.06.01 |
[교육철학] 5. 철학적 사유형식과 교육(2: 실재론과 교육) (0) | 201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