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폐해에 대해서
현재(2020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유교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1910년 조선의 멸망 이후로 유교에 대한 인식은 '미개'와 '야만'이라는 나쁜 이미지가 씌여졌고, 잘못되고 추레한 것에 '유교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게다가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인 '탈레반'과 결합하여 '유교탈레반'이라는 말을 쓰기까지 한다.
원래 유교의 본질은 무엇을 위하여 살지 않는 그 자체를 누리기 위한 것이고,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재발견하는 법을 배우고 배울 의지가 없다면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 너를 위해 살지 않고 또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살지 않고 오롯이 이 순간의 나를 사는 것이다. 또한 부모나 군주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닌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되었고, 그 결과 유교는 대단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는 "왜 유교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가?"와 "효의 진실", "학습"에 관해 다루고자 한다.
-왜 유교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가?
유교가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주자학(성리학)에 있다. 유교는 이미 통일신라에 존재했고, 고려시대에도 존재했지만,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고 사회제도를 지배하게 된 시기는 조선의 건국이었고, 유학의 한 갈래인 주자학은 조선시대는 물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조선에 주자학이 들어오게 된 계기는 정도전에 의해서였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세력 강화를 위해 당시 고려 귀족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불교를 몰아내려고 했다. 불교를 몰아내려는 명분에는 당시(고려 말기)에 불교가 타락한 것도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고려 말기의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고, 또한 왕권 약화 현상의 원인이 불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주자학은 주자라는 한 사나이의 깊은 사유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우주론적 에세이에 불과하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주를 담론의 대상으로 하는 도가적 발상에 불과할 뿐 더 이상의 우주적 통찰도 철학적 성찰도 아니었다.
주자학의 내용을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우주는 어떤 특정한 힘에 의해 논리적으로 움직인다. 인간은 그 특정한 힘이 만든 존재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그 특정한 힘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주자는 자신이 이 논리를 알아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아는 태극, 음양, 이(理), 기(氣)는 주자에 의해 해석된 것이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주자의 논리가 절대적이고 분명하다면 조선의 역사는 위대해야 하나 실상은 500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끝에 일본에 합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파면의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가설에 불과한 한 사내의 수상록을 종교로, 진실로 믿으며 분석을 했기 때문에 답이 나올 리 없다.
2. 권력자들의 사상체계가 철저히 주자학으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자학을 비판하는 것은 곧 체제비판이 되었고, 이는 역적의 누명을 쓰게 하여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 실제로 수많은 사화들이 주자학의 해석 논쟁에서 비롯되었고, 주자학의 정치적 이슈인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한다)' 사상은 쇄국정책으로 이어졌고, 국가의 멸망을 초래했다.
도덕이고 우주론은 모두 허황된 이야기이다. 권력자들은 이러한 허황된 이야기를 기반으로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이용했다. 고위 관리들이 허황된 이야기를 기반으로 갖추었기 때문에 1905년 을사늑약 때 찬성을 하고, 1910년 한일합방에도 찬성을 해 일본에 나라를 내어주었다.
힘을 장악한 사대부들은 도덕, 충, 효로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이익과 권력을 탐닉해온 관료들이었고, 그에 비해 백성들의 의견이나 여론을 대변할 만한 힘은 강력하지 못했다.
-효의 진실
충효(忠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효'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효이다.
다음은 공자의 후예인 순자(荀子)가 효의 참된 뜻을 직언한 것이다.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공손한 것, 이따위는 사소한 행실이다.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아랫사람에게 따뜻이 대하는 것, 이런 건 중간치기다.
도를 좇지 임금을 따르지 않고, 정의를 좇지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 것이 사람으로써 큰 행실이라 할만하다.
-순자 '자도(子道)' 편
이것은 효도가 부모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아마 중년(현재 50~60대 이상)이라면 '효'라는 말을 들으면 '충(忠)'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나라에 대한 충성과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것은 유교가 아닌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왜곡된 유교이다.
논어에는 '효도를 통해 부모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워서 군주에게 충성하라'라는 식의 논조가 없다. 공자는 이상적인 군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닌 부모에게 순종할지언정 나라에 대해서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유교국가인 적이 없었다. 에도 막부 시대는 사무라이의 시대로 상명하복(上命下服), 멸사봉공(滅私奉公), 대의멸친(大義滅親)을 덕목으로 내세운 군국주의 사회였다.
유교문화에서 가족은 부모와 자식의 혈연적 관계가 핵심이나 일본의 가족은 가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구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개개인은 가업을 수행하는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일본에서 가업을 계승해 그 가문을 번창하게 만드는 것이 충이고, 동시에 이런 성취는 가업을 물려준 조상에게 효도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일본의 가족 구조에서는 충성이 곧 효도가 되고, 충과 효는 이음동의어(음은 다르나 뜻은 같음)다. 일본 근대에 파쇼체제가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국민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충과 효가 같다는 바탕이 있었고,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상명하복, 멸사봉공, 대의멸친을 무비판적으로 채용해 조선시대 내내 이 땅의 삶이 그러했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충효가 유교라는 오해 또한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 이유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한자를 사용하는데다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일본식 관습이 마치 우리의 전통인 양 사이비 상식으로 행세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가족을 개인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감옥으로 여길 것이다. 이광수는 "조선의 자녀는 오로지 부조(父祖)를 위하여만 살았고 또 일하였고, 부조 중심의 삶"을 강요받았다. 이 말은 개인적 행복에 대한 자유의 전부인 교육과 혼인의 자유까지 부모에게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 이상도 혈연에 대해 지긋지긋한 원한을 가졌고, 그 때문에 본명인 김해경에서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충과 효가 같다는 논리를 정권에 활용했고, 그 결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부모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른다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조건 '말 잘 듣게' 만들고 있고,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부모의 폭력에 대해 어떠한 저항을 할 수 없었고, 엄마 말만 듣는 소위 마마보이, 마마걸 등이 양산되었으며, 이로 인한 가정파괴(이혼) 또한 발생되고 있다.
왜곡된 효 사상에 의한 피해 사례를 몇 가지 들도록 하겠다.
1. 과천에 살던 A군은 부모(특히 어머니)에게 성적이 조금이라도 나쁘면 매를 맞았는데(학대) 이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고, 이때문에 학교에서 급우들에게 폭력을 당한데다가 고려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했어도 부모의 무시를 받았으며, 공군으로 입대했는데도 부모에게 당한 학대의 영향 때문에 후임들에게조차 무시당하며 살았다. 군에서 전역한 후 계획을 짠 후 부모를 죽여 시체를 손괴하는 행위를 했고, 계획된 탓에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살던 B군은 어머니가 서울대를 가야 한다면서 성적을 이유로 매를 맞았고(학대) 급기여 살기 위해 우발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비닐로 싸서 장롱 속에 숨겼다. 우발적으로 죽여서 1의 사례와 달리 3년형을 선고받았다.
*2의 사례는 미국이었다면 정당방위로 풀려났을 일이다.
3. C씨는 결혼할 사람이 있었지만 부모가 반대한 탓에 결혼하지 못했고, 현재도 독신으로 살고 있다.
4. D군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면서 골프대로 체벌(폭력)을 가했고, 이에 D군은 불을 질러서 아버지를 죽게 했으나 이 과정에서 할머니도 죽었다.
5. E군은 부모가 성적으로 인한 압박을 주어서 견디다 못해 일본으로 도망치기 위해 부산항에 가서 밀항하나 배 안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일본으로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기소되었다.
6. F씨는 장애를 가진 형이 있고, 부모가 시설에 보내지 않은 탓에 두 번의 파혼 끝에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7. G씨는 결혼을 했으나 부모의 이혼하라는 요구에 따라 이혼을 했다.
앞서 말했지만 부모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효이다.
*법으로 며느리는 시부모의 부당한 대우로도 이혼소송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사위는 장인장모의 부당한 대우로도 이혼소송을 할 수 있다.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취해도 결국은 이 법에 의해 이혼소송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부모가 이혼하라고 하거나 자신의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할 때 이혼하고 싶다면 이혼하고 배우자를 지키고자 한다면 부모와 관계를 단절하라. 이때 관계를 단절한다면 불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파괴 위기의 가정을 지킨 것이 된다.
다음은 효를 제대로 실행한 사례이다.
1. H씨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 결과 어머니는 가출했고, 폭력의 대상이 자신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자주 싸워서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게 했고, 군에 입대하자 특공대에 자대배치를 받았고, 전역한 후 아버지를 패서 어릴 적에 당했던 것들을 갚았다.
2. I양은 어머니에 의해 남동생과 차별을 받으며 자랐고, 성인이 된후 어머니 쪽 가족과 회식할 때 어머니가 먹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자 어머니의 턱을 머리로 박치기했다.
이야기가 잠시 엇나가지만 아동이란 법적으로 만 18세 미만인 자를 말하고 다음의 주소는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 특례법이다.
아동학대 신고와 신고의무자:
https://easylaw.go.kr/CSP/CnpClsMainBtr.laf?popMenu=ov&csmSeq=689&ccfNo=3&cciNo=2&cnpClsNo=1
부모가 학대하는 명분은 훈육인데 만약 부모가 훈육을 빙자한 폭력을 가한다면 맞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항해야 한다. 맞서싸울 수 있다면 싸우고, 그러기가 어렵다면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자.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부모 중 한 쪽의 가출/이혼으로 인한 편부 또는 편모 가정이 존재하고, 가출한 부모가 자식이 죽었을 때 자식의 보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 불행히도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주어야만 하고, 그것도(현실적으로) 양육비를 제외하고 주어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해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제기되었으나 통과하지 못했다. 보험금을 주기 싫다면 죽기 전 보험을 해지하거나 다른 나라 국적을 얻어서 소위 말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어야 한다.
-학습-
공자는 동양 최초의 교사였고, 속수(육포 한 묶음) 이상의 수업료를 받았다고 한다.
*참고: 당시 속수는 가장 하찮은 예물이었다.
공자학교의 수업과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1.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하지 않는 학생은 깨우쳐주지 않는다.
2.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학생이 아니면 틔워주지 않는다.
3. 한 모서리를 들어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다시 반복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책상이나 탁자는 네 모서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한 모서리를 잠깐 들어 보여주면, 제자는 그 나머지 세 모서리의 존재와 의미를 금방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승의 귀띔을 알아채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으로부터 공자학교가 누구에게나(천민들에게까지도) 열려 있었으나 배움에의 절실함이 없으면 학생으로 남겨두지 않았고, '질문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오늘날 교육학에서 지적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론'을 이미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맹자는 춘추시대 궁사들의 일화를 통해 천하 명궁이었던 예가 제자로부터 살해당한 일을 들어 기술 위주의 교육을 경계하고 인간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간성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무해졌고, 현재 교사들은 맹자가 말한 기술(교과) 위주의 교육만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학생들은 부모들에 의해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읽거나 쓰는 고통스러운 공부와 명문대를 가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고, 이를 해결해 줄 어른들은 '미국 명문대의 자살률이 더 높다'면서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에 의해 손상과 변질된 한국사회에서 제자리를 지켜야 할 마지막 파수꾼은 학교이다. 그러나 학교의 교사는 철밥통만을 생각하며 스스로 선생이기를 포기한 월급쟁이들로 가득 차 있고, 이때문에 교사를 일개 공무원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다음은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번역)의 일부분이다.
학문의 즐거움. 그 안엔 학(學)과 문(問)의 두 즐거움이 존재한다. 몰랐던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즐거움. 이것이 '학'의 즐거움이다. '학'의 즐거움은 대화를 통해 완성되고, 이것이 바로 문(問), 대화다.
꿈이 없는 공부는 좌절 아니면 야비함을 기르고 만다. 히로나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승들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우리의 공부가 지겨운 것은 선명하다. 즐거움의 핵심인 대화가 빠졌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은 배움의 본질이 아니다. 생각이 다 자라기도 전에 학문적 정답만을 머릿속에 쑤셔넣는 교실. 창조성을 도살하는 도살장이다.
제자들의 꿈을 묵살한다. 대화를 묵살한 채 점수로 미래를 가름해 준다. 대화할 수 있는 스승은 줄어들고 족집게만 늘어난다. 꿈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창조라는 것의 출발은 언제나 유치하기 마련이다.
수 많은 지식들을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찾을 수 있는 현대에서는 지식을 많이 가진 것보다는 이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으며 자신이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현재 당면한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감지하고 풀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은 통합적 유기체이고 따라서 평면적인 글공부만으로 이 유기체가 지닌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글공부, 즉 '쓰기'에 빠져들어서 점토 놀이로 손가락과 뇌를 발달시켜야 할 시기의 어린이들을 강제로 연필을 잡고 글을 쓰게 한다.
이러한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사물을 보고, 만지고, 먹어보면서 청각과 촉각 등을 훈련하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논술이 추가되고, 입사 시험에도 쓰기가 도입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과거의 영향으로 '만들기'를 천시하고 '쓰기'를 숭상했다. 그 쓰기는 창의적인 쓰기가 아닌 경전의 테두리 안에서의 베껴쓰기였다.
2. 문자로 쓴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지적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측정의 대상으로 삼고, 언제든지 객관적 증거로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창조력은 글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적 창조력은 문자를 뛰어넘었고, 따라서 글을 대상으로 측정할수록 창의성이 감소한다. 책상에서 쓰기만을 하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찾아 그것에 숨어있는 왜(why)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정보를 '어디에서'찾고 '어떻게'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는 아이의 교육을 다음과 같이 했다.
아이가 '기술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아내에게 "이것도 인생이야.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마음을 조절하는 능력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지. 어차피 스스로 헤쳐나갈 인생이니까 그걸 적당히 거들어서 안전지대로 넣어 줄 필요가 없어."
그리고 아이에게는 왜 손을 들어도 대답할 기회를 잘 얻지 못하게 되는지, 왜 유난히 매를 자주 맞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준다(지나친 장난기가 원인임을 조금은 인정함). 9살짜리에게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병폐, 더러운 커넥션을 상세히 일러준다. 상장에 묻은 엄마들과 선생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일러주고, IMF 전 과정을 지도까지 갖다놓고 설명하듯이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다 듣지는 마. 네가 판단해 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어. 그리고 상은 정말 네가 떳떳하게 경쟁해서 얻을 수 있는 곳에서 타면 돼"라고 일러둔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 단호히 벌은 주지만 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잘 들으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권한'으로 가르친다는 생각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제 가르치려고만 하는 선생과 학부모는 퇴출되어야 하고 함께 고민하고 잠재된 창의력을 끄집어낼 줄 아는 선생과 학부모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5~60대의 학부모는 성적을 올려 일류대학에 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겨 학생들을 강제로 공부하게 하고 성적을 이유로 훈육으로 가장한 학대를 하거나 무시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이런 부모 때문에 억지로 대학을 가게 되고, 너도나도 대학에 간 탓에 대학교 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져서 결국은 고시낭인이 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이런 부모 밑에서 계속 학대당하면서 살 바에는 저항하거나 앞에 학대신고전화로 신고를 하는 것이 낫다. 이것으로도 해결이 안된다면 E군이 했던대로(실패했지만) 외국으로 도망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혹한 정치가 사나운 범 보다도 무섭다는 이야기로 가정에 적용한다면 학대를 행하는 부모가 사회의 다른 것보다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맞고만 있는 것은 효가 아니다. 그건 박정희가 변질시킨 효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저항을 하는 것이 답이다.
어른이랍시고 개소리를 지껄이는 나이 많은 사람한테 꼰대니 틀딱이니 그런 소리를 해도 된다. 이건 연장자의 경험이 아닌 나잇값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한테는 틀딱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는 주자학, 독재자에 의해 변질된 유교이고 이로 인해 애꿎은 유교가 욕을 먹고 있다.
참고자료: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배병삼, 녹색평론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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