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수리철학2020. 9.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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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철학] 4. 수리철학의 근대 개념



16~18세기 수학자들의 업적은 종교적 탐색이었다.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탐구는 신의 손수 만든 창조물의 영광과 위대함을 드러내려는 헌신적 행위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적어도 신의 마음에 근접할 수 있었고, 따라서 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 수학자들은 자연현상의 밑에 깔린 수학적 법칙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으며, 신이 이 같은 법칙으로 우주를 건설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러한 법칙의 탐구를 계속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선에 대한 지식은 르네상스 이성론자의 사고에서 신에 대한 지식으로 변형되었다. 이성론의 과학에 대한 기여는 종교적 권위의 부정이었으나 종교의 진리는 유지되었다.


16세기까지 유용한 천문학의 이론은 히파르코스와 톨레미의 지구중심설 뿐이었으나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새로운 천문학 이론이 탄생했다. 

우주가 수학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졌음을 확신하는 수학자만이 정신으로 당시 만연하던 철학적, 종교적, 과학적 반론을 무시하고 혁신적인 천문학에서의 수학의 진가를 인정했을 것이다. 

     

16세기 수학자 카르다노는 음수의 제곱근을 처음 발표했다. 카르다노에 의해 소개된 허수(imaginary number)는 많은 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오일러는 자신의 '대수학' 책에서 허수에 관해 언급했다. 실수계가 1에서 출발해 만들어진 것처럼 허수계는 \(i=\sqrt{-1}\)에서 출발해 만들어진다.  

아마추어 수학자인 베셀(Wessel)과 아르강(Argand)은 복소수 \(a+bi\)에서 실수 \(a\)를 \(x\)축에, 허수 \(b\)를 \(y\)축에 각각 대응시켰고, \(i\)를 곱하는 것은 기하학적으로 반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17세기 초에 망원경의 발명으로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 지구가 자전함(지동설)을 발견했으나 종교재판을 받고 자신의 지동설을 철회해야만 했다. 파스칼은 가톨릭 신자였으나 다음의 발언을 했고,

"여러분이 지구의 운동에 언급한 갈릴레이의 의견이 유죄라는 판결을 로마로부터 얻었다 해도 역시 헛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의 저서들은 금서가 되었다. 

파스칼은 조합에 관한 식 \(\displaystyle_{n}C_{r}=\frac{n!}{r!(n-r)!}\)으로부터 다음의 등식이 성립함을 이용해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했다.$$_{n}C_{r}+_{n}C_{r+1}=_{n+1}C_{r+1}$$\(n\)개의 서로 다른 물건에서 \(r\)개를 선택해 순서대로 나열하는 수를 서로 다른 \(n\)개에서 \(r\)개를 선택하는 순열(permutation)이라 하고 \(_{n}P_{r}\)이라고 나타내며, 다음과 같다.$$_{n}P_{r}=n(n-1)(n-2)\cdots(n-r+1)$$\(r=n\)이면 서로 다른 \(n\)개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수가 되고,$$_{n}P_{n}=n(n-1)(n-2)\cdots2\cdot1$$이 되고, 이것을 \(n!\)으로 나타낸다. 

서로 다른 \(n\)개에서 \(r\)개를 선택하되 순서를 고려하지 않는 수를 서로 다른 \(n\)개에서 \(r\)개를 선택하는 조합(combination)이라고 하고 \(_{n}C_{r}\)로 나타낸다.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수학의 진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도형, 수, 산술, 기하학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추상수학에 속하는 내용을 생각하듯이 명백히 이해되는 진리는 가장 확실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수학자들은 가장 쉽고 간단한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들만이 확실성과 증거를 얻을 수 있다."데카르트는 이어 물리적 세계로 관심을 돌렸고, "정신적으로 명확히 인정되는 직관과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연역이 물리적 세계에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와 "신이 이 세상을 수학적으로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저서 '원리'에서 과학의 본질은 수학이라고 했다.

"모든 자연현상은 수학에 의해 설명되거나 논증가능하기 때문에 기하학이나 추상수학 이외의 원리를 물리학에 허용하지도 않으며 희망하지도 않는다."

데카르트는 수학에 새로운 진리로 공헌하지 못했으나 오늘날 해석기하학(좌표기하학: 좌표기하학)이라고 하는 아주 강력한 방법론을 제공했고, 이것은 수학적인 방법론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과학에서 위대하고 중요하지 않으나 무시하고 넘길 수 밖에 없는 업적을 남겼다.

직선운동을 한느 물체의 위치를 \(x=x(t)\)라고 하면, 이 물체의 평균속도, 속도, 평균가속도, 가속도는 각각 다음과 같다.$$\begin{align*}\overline{v}&=\frac{\Delta x}{\Delta t}=\frac{x_{2}-x_{1}}{t_{2}-t_{1}}\\v&=\lim_{\Delta t\,\rightarrow\,0}{\frac{\Delta x}{\Delta t}}=\frac{dx}{dt}=x'(t)\\ \overline{a}&=\frac{\Delta v}{\Delta t}=\frac{v_{2}-v_{1}}{t_{2}-t_{1}}\\a&=\lim_{\Delta t\,\rightarrow\,0}{\frac{\Delta v}{\Delta t}}=\frac{dv}{dt}=v'(t)=\frac{d^{2}x}{dt^{2}}=x''(t)\end{align*}$$고전역학에서 뉴턴의 제 1법칙으로 알려진 관성의 법칙을 발견했고, 빛의 굴절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으며, 지질학, 기상학, 식물학, 해부학, 동물학, 심리학, 의학 등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데카르트는 선험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었고, 지성 그 자체의 힘에 의해 만물에 관한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선험적 추론을 근거로 운동의 법칙을 설명했다. 그러나 자연현상을 순전히 물리학적인 현상만으로 이해함으로써 신비주의와 초자연적인 것으로부터 과학을 크게 해방시켰다.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어려서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의 형식체계에 의문을 가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10개의 범주인 본질,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위치, 소유, 동작 및 감정은 모든 사상에서 불가결한 요소였으나 17세기 과학혁명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유식자의 상상력을 억제하고 있는 이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19세기에 벤(Venn, 벤 다이어그램을 만든 수학자)이 취급했다. 

(벤은 삼단논법의 정당성을 점검하는 방법을 기하학적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을 벤 다이어그램(Venn diagram)이라고 한다.) 

라이프니츠의 수리철학의 논리는 모든 명제의 술어는 주어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가 모나드(monad, 단자)로부터 이루어졌다는 그의 형이상학적 학설ㄷ과 대응한다. 여기서 단자라는 것은 자기 충족적인 실체로서, 자신의 주장인 예정조화설에 본질적인 작용을 한다. 철학의 최종적 매듭인 '단자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두 종류의 진리가 있다. 하나는 논증에 의한 진리이며, 또 하나는 사실로서 나타나는 진리이다. 논증에서의 진리는 필연적인 것이며, 그 반대 명제는 불가능하다. 한편 사실에의 진리는 (정의에서나 지각에서나) 우연적인 것으로서 그들의 반대 명제는 가능하다."

라이프니츠가 언급하는 논증적 진리 중에는 모든 수학적 공리(axiom), 정의(definition), 정리(theorem)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을 부정하면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도식이나 기하학적 도형이나 일반적으로 기호법일지라도 수학적인 사고에는 단순한 보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 점에서 이론적으로 플라톤과 일치하나 더욱 그들의 도형이나 기호법의 실제적인 역할에서 큰 중요성을 찾아내고 있다.

당시 대수적인 식 표현의 일부를 정리하는 데에 기호 "-"를 이용했으나 이것을 괄호로, 곱셈의 "×"에서 점"\(\cdot\)" 바꾼 수학자는 오일러였고, 또한 거듭제곱을 지수로 나타낸 것도 그였다.  

미적분학의 기초는 극한(limit)과 연속성(continuous)의 개념이다. 

일변수함수 \(f:\mathbb{R}\,\rightarrow\,\mathbb{R}\)가 한 점 \(a\)에서 연속이라는 것을 다음의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변수 \(x\)가 \(a\)에 한없이 가까이 갈 때 이에 대응하는 함숫값 \(f(x)\)가 \(f(a)\)에 한없이 가까이 간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소위 말하는 엡실론-델타(\(\epsilon-\delta\))방법으로 임의의 \(\epsilon>0\)에 대해 적당한 \(\delta>0\)가 존재해서 \(|x-a|<\delta\)인 모든 \(x\)에 대해 \(|f(x)-f(a)|<\epsilon\)이 성립한다. 

수학적 기호를 이용해서 \(f(x)\)가 \(x=a\)에서 극한 \(f(a)\)를 갖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forall\epsilon>0,\,\exists\delta>0,\,s.t.\,0<|x-a|<\delta\,\Rightarrow\,|f(x)-f(a)|<\epsilon$$임의의 양수 \(\epsilon\)에 대하여 크게 취하든 작게 취하든 상관없이 그때마다 상대적인 \(\delta\)가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x\)가 \(a\)에 한없이 가까운 수이면 \(x-a\)는 0에 한없이 가까운 수가 된다. 이와 같은 수를 무한소량(infinitesimal) 또는 미분(differential)이라 하며 \(dx\)로 나타낸다. \(f\)가 \(x=a\)에서 연속이면 \(f(x)-f(a)\)는 무한소량이며, 이것이 함수 \(f\)의 미분으로 되며 \(df\)로 나타낸다. 

그 당시에는 무한소량에 대해 의문이 많아서 무한소량을 실제의 수가 아닌 변수의 변화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코시나 바이어슈트라스는 엡실론-델타 방법을 사용했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오늘날의 미적분학의 기호는 대부분 라이프니츠가 만든 것이다(뉴턴도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발견했으나 발표하지 않았다). 적분은 고대에 넓이를 구하는 방법으로부터 발전해온 것인데 합(sum)을 의미하는 머리글자 s자를 아래위로 늘여서 기호 \(\int\)(인티그랄, integral 이라고 읽는다)를 만들었다. 

라이프니츠는 무한이나 무한소라는 용어는 단순히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크게 또는 작게 취할 수 있는 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어떤 주어진 수보다 오차를 작게 할 수 있도록, 즉 오차가 없도록 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수학자들이 허근을 사용해 근의 존재를 밝힌 것처럼 무한인 수와 무한히 작은 양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뉴턴


뉴턴은 거리가 \(r\)만큼 떨어져 있고, 질량이 각각 \(m,\,M\)인 두 물체 사이의 인력, 즉 만유인력 \(F\)가 다음과 같음을 보였다.$$F=G\frac{Mm}{r^{2}}$$여기서 \(G\)는 만유인력이다.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물체를 \(r_{1}\)에서 \(r_{2}\)로 이동할 때 하는 일 \(W\)는 다음과 같다.$$W=\int_{r_{1}}^{r_{2}}{Fdr}=\int_{r_{1}}^{r_{2}}{G\frac{Mm}{r^{2}}dr}$$뉴턴은 갈릴레이의 지상운동의 법칙을 일반화하여 '뉴턴의 운동법칙'을 만들었다.

제 1법칙: 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그대로 정지해 있고 운동 중에 있는 물체는 일정한 속력으로 직선을 따라 운동한다.(관성의 법칙)

제 2법칙: 질량이 \(m\)인 물체에 힘 \(F\)를 가하면 물체는 가속도 \(a\)를 얻고,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

제 3법칙: 어떤 힘의 작용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것과 크기가 같고 반대방향의 반작용이 존재한다.(작용반작용의 법칙)   

이러한 세 가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부터 뉴턴은 지상의 물체의 운동을 연역해 내었다. 또한 케플러의 법칙이 성립함을 입증했다. 

뉴턴은 근사계산법으로 달의 운동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고, 물리적 설명 대신 수학적 표현을 추구한 갈릴레이의 제안을 채택했다. 그 이유는 천체역학의 중심 개념인 중력의 작용이 물리학적 용어로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턴은 물리학적 설명을 포기하는 대신 수학적 개념의 양적 공식화, 얻은 공식으로부터 수학적 연역을 받아들임으로써 17세기 물리학의 전모를 새롭게 했다. 또한 "자연계는 수학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진정한 자연법칙은 수학적이다"라는 확신을 가졌다. 


오일러


오일러는 18세기 수학의 중심을 차지하는 대수학자이다. 특히 베르누이가 라이프니츠 류의 수학 해석의 내용형식을 정비해 19세기 수학의 발전을 준비했고, 이것을 물리학의 역학에 응용하기 좋도록 정비했다. 또한 미적분학을 한 걸음 전진시켜 복소수도 형식적으로 다루었고, 편미분방정식, 타원함수론, 변분법 등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변수함수 \(f(x,\,y)\)에서 \(y\)값을 \(y=b\)로 고정하면 이 이변수함수는 \(x\)만의 함수 \(f(x,\,b)\)가 되고 이 함수가 \(x=a\)에서 미분계수를 가지면 즉$$\lim_{\Delta x\,\rightarrow\,0}{\frac{f(a+\Delta x,\,b)-f(a,\,b)}{\Delta x}}$$가 존재하면 이 극한값을 점 \((a,\,b)\)에서 \(f\)의 \(x\)에 대한 편미분계수라 하고 \(f_{x}(a,\,b)\)로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x\)의 값을 \(x=a\)로 고정하면 \(f(x,\,y)\)는 \(y\)만의 함수 \(f(a,\,y)\)가 된다. 이러한 \(y\)만의 함수가 \(y=b\)에서 미분계수$$\lim_{\Delta y\,\rightarrow\,0}{\frac{f(a,\,b+\Delta y)-f(a,\,b)}{\Delta y}}$$가 존재하면 이 극한값을 점 \((a,\,b)\)에서 \(f\)의 \(x\)에 대한 편미분계수라 하고 \(f_{y}(a,\,b)\)로 나타낸다.

\(f(x,\,y)\)가 \(x\)에 대해 편미분가능한 모든 점 \((x,\,y)\)에 대해 편미분계수 \(f_{x}(x,\,y)\)를 대응시키는 함수를 함수 \(f(x,\,y)\)의 \(x\)에 대해 편도함수(partial derivative)라 하고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f_{x},\,\frac{\partial f}{\partial x},\,f_{x}(x,\,y)$$마찬가지로 \(y\)에 대해 편미분가능한 모든 점 \((x,\,y)\)에 대해 편미분계수 \(f_{y}(x,\,y)\)를 대응시키는 함수를 함수 \(f(x,\,y)\)의 \(y\)에 대한 편도함수라 하고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f_{y},\,\frac{\partial f}{\partial y},\,f_{y}(x,\,y)$$이때 두 편도함수 \(f_{x},\,f_{y}\)를 통틀어 \(f(x,\,y)\)를 1계 편도함수라 하고, \(f_{x},\,f_{y}\)를 구하는 것을 각각 \(x,\,y\)에 대해 편미분한다고 한다. 

18세기 수학은 계산이 극히 중요한 구실을 하였고, 오일러는 실제 계산가라는 호칭을 받고 있었다. 18세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에 수학이 큰 영향을 끼쳤으나 계산주의의 극도의 발달로 인해 18세기 말엽에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어야 했다.  

다음의 공식으로부터$$\begin{align*}e^{x}&=1+x+\frac{x^{2}}{2!}+\frac{x^{3}}{3!}+\cdots\\ \sin x&=x-\frac{x^{3}}{3!}+\frac{x^{5}}{5!}-\frac{x^{7}}{7!}+\cdots\\ \cos x&=1-\frac{x^{2}}{2!}+\frac{x^{4}}{4!}-\frac{x^{6}}{6!}+\cdots\end{align*}$$다음의 오일러 공식(Euler's formula)을 얻고,$$e^{ix}=\cos x+i\sin x$$다음의 식을 얻는다.$$\sin x=\frac{e^{ix}-e^{-ix}}{2i},\,\cos x=\frac{e^{ix}+e^{-ix}}{2}$$오일러는 페르마의 정리에서 \(n=3,\,4\)인 경우를 증명했다. 또한 초등대수학, 기하학을 비롯해 뉴턴이나 라이프니츠가 창출한 미적분학을 더욱 발전시켜 물리학, 역학으로의 응용부분을 개척함으로서 18세기 편미분방정식, 타원함수론, 대수해석, 입체해석기하학, 각종 급수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칸트


칸트의 철학은 이론의 냉철한 지배와 달리 가슴에 호소하는 것을 용납하기도 했다. 칸트의 초기 작품은 철학보다 과학에 대한 것이 더 많다. 그 이후 "순수이성 비판"을 저술했고, 이 책의 목적은 인간은 모든 지식은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이것은 경험에서 귀납적으로 추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의 선험적인 부분은 논리 뿐만 아니라 논리에 포함되지 않거나, 또는 논리에서 연역할 수 없는 것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칸트는 라이프니츠가 혼동하고 있던 두 가지 구별을 확실히 밝혔다. 하나는 해석적인 명제와 종합적인 명제의 구별이고, 또 하나는 선험적인 명제와 경험적인 명제의 구별이다. 

'해석적 명제'는 술어가 주어의 부분으로 되어 있는 명제이다. 예를들면 "키가 큰 사람은 사람이다" 또는 "2등변삼각형은 삼각형이다"와 같은 것 등이다. 이렇나 명제는 모순율에서 비롯된다.

'종합적 명제'는 해석적 명제가 아닌 명제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명제는 모두 종합적이다. 예를들면 "화요일은 흐려 있었다" 또는 "나폴레옹은 위대한 장군이었다"등등이다. 

그러나 칸트는 라이프니츠나 그 밖에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그 역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경험적인 명제'는 자신 또는 타인의 감각의 도움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명제이다. 역사적, 지리적 사실과 과학의 법칙도 그 법칙의 진리성에 대한 지식이 관찰에서 비롯된 경우도 경험적 명제이다.  

칸트는 산수이나 기하가 종합적이면서 동시에 선험적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선험적인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과 그 결론이 "순수이성 비판"의 주제이다. 

칸트는 수학의 논리적 일관성과 그 직관성 성격에 관해 수학의 신뢰성의 문제의 긍정적인 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성질의 기초 위에서 수학적 방법은 철학의 기초를 이루거나 철학에 대한 한 예로 자리잡는 것을 일관하여 부정한다. 그의 비판기에 수학적 구성과 유사한 철학의 구성은 인간에게 결핍되는 지적 직관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주 논설로 추진한다. 때문에 수학과 철학 사이를 멀리하고 "수리철학(mathematical philosophy)"이라는 말을 만들었따. 이 수리철학에 의해 수학적 사고의 문제는 일반철학의 체계와 분리되었고, 수학의 기초연구로서 수리철학은 그 자신을 과학의 하나로 독립한 분야를 만들었다. 


가우스


가우스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1부터 100까지의 합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어 쉽게 구했다.$$1+2+3+\cdots+98+99+100\\100+99+98+\cdots+3+2+1$$위의 방법대로 구하면 101이 100번 나타나는데 같은 것을 두번 더한 것이므로 그 답은 101에 50을 곱한 5050이다. 

가우스는 박사논문에서 \(n\)차방정식이 반드시 근을 가짐을 증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의 형식이 아닌 존재이다. 또한 소행성 케레스(Ceres)의 진로를 예측하고, 로그, 퍼텐셜(위치에너지), 등각사상(conformal mapping)의 관계에 대해 연구를 했다. 

또한 자기(magnetism)이론에 대한 물리연구를 해 자기의 단위는 가우스가 되었다. 

가우스는 리만에게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주제를 연구과제로 주었고, 리만은 이것을 가우스가 참석한 괴팅겐 철학부 교수들 앞에서 강연을 했고, 그 내용은 '기하학의 기초에 놓인 가정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가우스는 존재정리가 선결문제이고, 구하는 수단은 다음이라는 훌륭한 의견을 제출하는데, 현대수학은 이러한 계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자와 컴파스만을 이용해서 작도할 수 있는 정다각형은 정3, 4, 5, 15각형과 이들 도형의 각 변을 2, 4, 8배와 같이 짝수 배로 되는 것뿐이고, 그 이외의 것은 일반적으로 작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우스는 방정식의 풀이를 통해 정17각형의 작도가 가능함을 보였다.

2차방정식 \(ax^{2}+bx+c=0\)의 두 근을 \(\alpha,\,\beta\)일 때 다음이 성립한다.$$\alpha+\beta=-\frac{b}{a},\,\alpha\beta=\frac{c}{a}$$이것을 이용하여 \(\alpha,\,\beta\)의 값을 기하학의 작도로 구할 수 있다. 가우스는 \(360^{\circ}=7\theta\)로 해서 다음을 고려했다.$$\cos\theta+\cos4\theta=a,\,\cos2\theta+\cos8\theta=b\\ \cos3\theta+\cos5\theta=c,\,\cos6\theta+\cos7\theta=d\\a+b=e,\,c+d=f$$로부터 \(\displaystyle e+f=-\frac{1}{2}\)을 유도하고, \(ef=-1\)을 구하면 \(e,\,f\)는 다음의 2차방정식의 근이고$$x^{2}+\frac{1}{2}x-1=0$$이것을 기하학적으로 작도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참고자료:

수리철학, 이건창, 경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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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