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수리철학2020. 9.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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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철학] 3. 수리철학의 고대 개념



그리스 시대의 탈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은 수학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겼고, 이들의 사상은 수학(mathematics)이며, 이들의 관심사는 철학과 수학에 있었다.

수학이라는 말의 의미에 따라 고대 수학사를 쓰기 시작한 시점은 각기 다르다. 원시시대는 미개인이 갖는 수(number)의식 등에서 추측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은 수학의 근원을 이집트에 두고 있었으나 이집트 수학은 실용 계산의 단계에 있었고, 메소포타미아의 수학은 고도의 천문기록을 가져 이집트보다 높은 수학 수준을 가졌으며, 단순한 실용수학의 단계를 넘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하천 문명이 지적 활력을 잃어 갈 무렵,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후 800년까지의 사이를 연해시대라 하고, 연해시대의 초기를 그리스 시대라고 한다. 


그리스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단위지역이 모여서 이루어졌고, 강은 있지만 우기를 제외하고는 물이 적었고, 바다에 가까웠다. 마을 사이의 교통은 육지에서 험한 산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따라서 가까운 읍 사이도 물자의 교환 등에 바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고, 그 결과 에게해는 일찍부터 그리스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자연환경으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야외생활을 즐겼다. 축제, 집회, 연극 모두 야외에서 이루어졌고, 광장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으며, 서로 말을 주고받을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개방적인 사교성이 있었고, 시민의 공동체 의식도 자랐다. 

기원전 12세기~7세기 간의 약 500년 동안은 시대를 알려줄 자료가 거의 없었으나 이 시기에 그리스 특유의 도시국가인 폴리스가 형성되었고, 상공업을 기반으로 해서 형성되었다. 폴리스의 성립은 그리스의 과학 사상을 오리엔트의 과학 사상과 구별하는 배경이었다.

그리스인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했고, 자연의 통일성, 공통성에 주목함으로써 원리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학문의 방법으로서도 원리로부터 출발하는 논리적 연역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학문방법이 성립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인의 자연관이 한결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사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 과학은 세 가지의 기본적 태도가 있었다.

1. 요소론적 입장으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과학사상의 원형이다.

2. 자연 전체를 일종의 생물로 간주하는 유기체론 또는 목적론이며, 이것도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학사상이다.

3. 수학적 자연관이라고 일컬는 것으로 유럽인의 지적 세계를 지배해왔다. 

초보적 산술, 기하학과 그 분석, 상징주의가 빠진 대수학을 구성하는 이러한 셀 수 없이 많은 하위 수학적 사실들은 그리스인들의 유산이었다. 이렇게 그리스인은 수리철학의 개념을 창시했다.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는 자연관이 수(number) 중심이었고, 정수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의 네 개 학과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즉 모두 우주의 신비와 조화를 계시(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깨우침)하여 미술, 철학, 도덕, 종교의 근원을 이루며 다만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생길 뿐이라고 간주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자연에 지성을 부여하려는 과학, 철학적 노력에 새로운 공헌을 했다. 

입체를 면(side)으로, 면을 선(line)으로, 선을 점(point)으로 분석하면서 그들의 교리를 자연에 적용했고, 수리개념이 자연의 세계를 설명했다는 것을 물리학자들에게 증명해 보였다. 

"숫자의 요소는 모든 사물의 요소이고 모든 하늘은 악보와 숫자이다."

그 이후 피타고라스 수학주의는 수학적 추상과 관련된 사물을 모든 사물과 동일시하려 시도했다. 자연은 질서정연하고 조화로운 균형으로 변화하고, 숫자와 형식이 자연의 본질적인 원리이고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학에서 무리수(irrational number)의 발견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수학과 수학주의에 있어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되었다. 무리수의 발견은 피타고라스 정리 \(a^{2}+b^{2}=c^{2}\)에서 \(a=b=1\)일 때 발견되었다. 

피타고라스학파와 그리스인은 무리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타고라스학파는 \(\sqrt{2}\)가 무리수임을 간접증명법(귀류법)으로 보였는데, 무리수가 정수의 비가 아님을 알려주었으나 무엇인지 알려주지 못했다. 

무리수가 발견되었을 때 이 발견을 비밀로 감추려고 했으나 

유클리드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직각삼각형의 빗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는 다른 변 위의 정사각형의 합과 같다는 꼴로 표현했다. 즉$$a^{2}+b^{2}=c^{2}$$여기서 \(c\)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 \(a,\,b\)는 다른 두 변의 길이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순수하게 기하학적 용어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하고 증명했다. 또한 무리수를 근으로 갖는 방정식(예: \(x^{2}-2=0\))을 기하학적으로 풀었다. 즉, 제곱근을 선분으로 나타냄으로써 무리수를 사용할 필요를 피했다. 이와 같은 전개방식은 기하학적 대수학(geometrical algebra)이고 따라서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은 기하학 뿐만 아니라 대수학에 관한 책이다. 

반면에 높은 형이상학적 추상을 가진 다른 사상학파들이 번성했다. 헤라클리투스는 다양성에서의 동일성에 대한 질문을 '1'이 모든 사물의 원리라는 주장으로 대답했다. '1'의 본질은 동시에 여럿도 되고 하나도 된다는 데 있고, 그래서 모든 사물은 하나의 일정한 흐름과 변화의 상태에 있다.

반대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존재의 철학을 가르쳤다. 변화라는 것은 없고, 존재라는 것이 존재하며, 모든 사물이 존재한다는 교리들이 서로 경쟁했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Zenon)은 스승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다듬어서 존재는 1뿐이며, 여럿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의 형태를 빌려 증명했다. 

제논은 그의 스승을 옹호하고 피타고라스학파 및 그 외의 학파들에 대해 불연속의 질량에 반대하는 연속성(continuity)에 관해 논한 유명한 변증법적 추상을 제시했다.    

또 다른 학파인 원자론학파는 크기와 형태에서만 차이가 나는 원자(atom)라고 하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단위의 무한한 숫자가 모든 사물의 원리라고 가르쳤다. 원자론학파의 이론은 제논의 논쟁에 맞서기에 역부족이었고, 따라서 원자론학파가 주장한 숫자의 무한소 극소(infinitesimally small)와 무한은 사라졌다. 

그리스에서 무한소의 방법을 이야기 하자면, 수학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는데 있어 극한(limit)을 갖는 조작, 무한과정, 연속성 등을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등장했다. 즉

(i) 공통적인 양을 찾는 과정이 무한히 계속하는 경우

(ii) 남는 양이 무한소가 되는 경우

(iii) 비교되는 양속에 무한히 많은 무한소량이 포함되어야 할 경우

등의 문제이다. 

무한소의 개념은 철학자들에게도 있었고,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은 무한소의 원자로부터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고, 제논은 "아킬레스는 거북을 쫓아갈 수 없다"와 "날으는 화살은 계속 정지하고 있다(화살은 결코 표적을 맞추지 못한다)"는 제논의 역설을 제시했다. 

화살의 역설에 따르면 화살이 표적을 맞추려면 화살과 표적 사이의 거리의 중점 \(M\)을 지나야 한다. 다음으로 또 \(M\)과 표적 사이의 중점 \(M_{1}\)을 지나야 한다. 이렇게 \(M,\,M_{1},\,M_{2},\,M_{3},\,...\)을 지나지 않으면 표적에 닿지 못한다.

어느 경우나 앞의 거리의 반은 남게 되므로 결국 화살은 표적에 영구히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서 모순되는 점은 길이를 무한히 분할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는 것이다. 즉 길이는 무한히 분할할 수 있다는 것이 소피스트들의 주장이다. 

기원전 5~4세기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등장한 궤변론자 소피스트(sophist)는 타인의 설을 논파하고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여 변증법을 연구해 웅변술 또는 궤변술 을 형성해 논리적 사상 발달에 기여했다. 당시 수학자들은 소피스트의 논법을 타파하지 못해서 무한의 개념을 사용하기를 꺼렸고, 그 때문에 유클리드나 아르키메데스는 원이나 포물선의 넓이를 계산할 때 극한 개념이 아닌 유한 계산법을 이용했다. 

화살의 역설이 잘못되었음을 보이기 위해 화살과 표적 사이의 거리를 \(a\)라고 하면 \(\displaystyle AM=\frac{a}{2}\), \(\displaystyle MM_{1}=\frac{a}{2^{2}},\,...\)이므로 화살이 날아간 거리 \(S\)는$$S=\frac{a}{2}+\frac{a}{2^{2}}+\frac{a}{2^{3}}+\cdots$$이고, 이것은 첫째 항이 \(\displaystyle\frac{a}{2}\)이고 공비가 \(\displaystyle\frac{1}{2}\)인 무한등비급수이므로$$S=\frac{\displaystyle\frac{a}{2}}{\displaystyle1-\frac{1}{2}}=a$$이고 화살은 정확히 표적에 도달한다. 

이 증명은 잘못된 것이고, 극한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S\)는 \(a\)에 가까워짐을 보장할 수 있으나 \(S\)가 \(a\)가 됨은 보장하지 못한다. \(S\)가 \(a\)로 되지 않으면 화살은 닿을 수 없다(여기에 무한의 까다로움이 있다).

역설의 오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화살의 속력이 일정하다고 하면$$AM,\,MM_{1},\,M_{1}M_{2},\,...$$를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항상 같다고 가정하면 확실히 무한시간이 걸리게 되므로 화살은 표적에 닿지 않는다.  

길이가 \(a\)인 끈을 반으로 자르고, 남은 부분을 또 한 번 반으로 자른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잘린 부분의 합$$\frac{a}{2}+\frac{a}{2^{2}}+\frac{a}{2^{3}}+\cdots$$은 결코 \(a\)가 되지 않는데 아무리 이 작업을 반복한다 해도 계속해서 앞부분의 절반이 남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작업을 전부 끝내는 데에 무한한 시간이 걸린다. 제논은 이러한 역설을 통해, 문제의 엄밀한 증명과 논리적으로 완전한 해결을 바란다면, 무한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한 것이다. 

앞에서 알 수 있듯이, 수열의 합$$a_{1}+a_{2}+\cdots+a_{n}+\cdots=S$$만 가지고 그 합이 \(S\)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lim_{n\,\rightarrow\,\infty}{(a_{1}+a_{2}+\cdots+a_{n})}=S$$라는 것으로$$|a_{1}+a_{2}+\cdots+a_{n}-S|$$를 한없이 0에 접근시킬 수 있다는 뜻이지 정확히 0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함수의 극한에서 실제로 0이 되는 경우가 많다. \(\displaystyle\lim_{x\,\rightarrow\,0}{(x^{2}-x+1)}=1\)에서 \(x=0\)이면 그 값은 1이 된다. 이것은 함수 \(x^{2}-x+1\)이 \(x=0\)에서 연속인 경우이고, 불연속이면 다르다. \(\displaystyle\lim_{x\,\rightarrow\,1}{\frac{x^{2}-1}{x-1}}=2\)에서 \(x\)가 1에 접근할 때 \(x\neq1\)이므로 \(\displaystyle\frac{x^{2}-1}{x-1}=x+1\)이고 이 식에서 \(x\,\rightarrow\,1\)이면 2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x=1\)이면 분모가 0이 되므로 이 때의 함숫값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x=1\)에서 불연속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의 무한관을 논리적으로 다듬었고, 무한을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현실적인 형태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무한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가능적으로 존재하는 무한이었다(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무한이다).       

플라톤


플라톤의 사상에는 그리스의 수학적 자연관의 전통이 집약되어 있다. 플라톤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만이 '유'이다"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고, 이러한 영원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기하학이라고 했다. 

수(number)란 "사고할 수 있을 뿐,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다룰 수 없는 것"이며, 수학자는 "사각형 그 자체나 대각선 그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며, 그들이 실제로 그리는 것은 도형의 그림자 또는 닮은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그 자체라는 말이 붙은 대상은 가시적(可視的)이지 않고 가지적(可知的)인 것이며, 이것을 이데아(idea)라고 했다. 이데아의 세계는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유(有)이자 빛의 세계이다. 플라톤은 불, 공기, 물, 흙의 네 가지 원소는 모두 작은 공간 도형의 집합체라는 이론을 제기하고, 세계는 완벽한 공간 도형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원소들은 반드시 정다면체의 모양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예술에 나타난 합리성은 수학에서 뚜렷이 반영되었다. 분명한 것은 기하학이 성립하기 이전부터 이미 예술가들이 기하학적인 비례관계를 발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합리성은 자연현상이 불규칙한 곳에서는 형성될 수 없었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의 방법과 유한의 사상을 도입함으로써 사색가들의 사상을 진보시켰고, 지성이 옳다는 것을 끝까지 고수해서 자신에게 불리했지만 "악법도 법이다. 그러기에 악법도 따라야 한다"면서 스스로 독배를 들었다. 지성은 이 단계에서 인격과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모든 과학적 노력의 목표인 일반 개념을 명백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를 보여 주었다. 

플라톤 학파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오지 마라"라는 문구는 플라톤학파에 입문하기 위한 기준으로 잘 알려진 문구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대응하는 숫자와 사물 사이의 집합을 만들어 냈고, 플라톤은 숫자를 자연의 세계에서 끄집어내 초월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숫자는 감각의 세계와 사상의 세계 사이의 중간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수학은 이해라는 정신의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실제적 과학과 반대하는 것으로 지적인 과학으로 분류된다.

수학자들이 증명하는데 있어서 감각적 사물을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의 목적은 자연을 합리화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삼각형이나 사각형을 이해하는 것이다(형식의 형상과 영상의 유동성을 줄임으로써 이해하는 것이다). 수학적 추상은 가설을 많이 사용하는데 수학자는 이러한 가설의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고 다만 결론을 맺는 데 사용할 뿐이다. 게다가 수학자들은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은 수학적 증명의 출발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으로부터 의견만 얻을 수 있다는 플라톤의 이론에 부응하는 과학 이전 지식의 범위가 존재한다. 이것은 사물의 진실에 관한 판단(estimation)이라고 하는 정신의 상태를 유발시키는 시인의 공상의 분야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모순의 한 부분을 수용하도록 하며 진실에 대한 의심(suspicion)을 야기하는 웅변가의 설득 분야이다. 이것은 우리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모순적 명제의 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의견(opinion)을 우리에게 주는 변증론자의 가능성의 분야이다.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변증론(dialectics)을 선호했고, 이것은 진실에 도달하거나 가까워지는 논쟁, 증명, 방법의 풍부한 근원이다. 어느 종류의 문제든 변증론의 관심사가 되고 논쟁과 토의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그렇게 보이는 명제들로부터 발생한다.

변증론은 모든 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주요 기능으로 진실을 해명하기 어려운 변화하는 것들과 불확정적인 것들의 분야를 다룰 때 나타난다. 변증론적 논쟁은 대부분 사건에서 관찰가능한 것에 기초를 둔다. 

파푸스는 해석학이란 정리의 증명 또는 작도 문제의 방법의 증명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정의했다.

"우리가 사실이 의존하는 원인이 그 사실의 원인이고 다른 것의 원인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이 그 이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들이 사물에 관해 부적당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지식은 보편적이고 단정적인 전제를 가진 첫 형태(mood)와 첫 번째 도식(figure)의 삼단논법을 통한 엄격한 증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전제는 사실, 근본적, 직접적인 것이어야 하고, 전제와는 원인에 대한 결과로 관련된 결론보다 더 잘 알려져 있어야 하며 그것에 선행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은 자명한 원리에 대해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학생이 이미 사실을 알고 있거나 용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모든 증거는 직접적인 이해의 행위와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명한 행위에 의해 알려진 자명한 원리의 이해에 기초를 둔다. 

과학은 세 가지 방식으로 발생한다.

1. 첫 번째 단계의 과학적 추상의 과정에 의해 학생은 자연을 이동성이 있는 존재라는 관점 아래 자연 자체를 공부한다. 생물과 무생물, 자연의 전체 영역은 귀납적이고 연역적인 방법론이 발생하는 추상화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2. 두 번째 종류의 추상은 과학에 적합하고, 가끔 약간의 경험으로부터 그러나 주로 감각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학의 논의는 피타고라스학파 또는 플라톤학파, 수학적 존재를 따로 떨어진 자연의 세계나 자존하는 사상들과 동등시하는 수학주의를 거부했다. 

3. 세 번째 추상화 과정은 플라톤의 주장대로 자연의 세계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추상화(형이상학)는 가장 단계가 높고 숭고하며 가장 어렵다. 형이상학은 자연을 그 자체로 여겨 자연의 세계로부터 더 깊은 추상개념을 이끌어내며, 다른 과학의 추상을 정렬하고, 과학 사이의 이론적 관계를 결정하며, 모든 과학의 이론적인 원리를 성립한다. 

가장 수준높은 이론적 과학인 형이상학은 더 높은 정신 상태에 의해 대치된다.

1. 이해(understanding)는 과학의 결론을 모든 사상의 이론적인 원리와 결부시키는 정신의 성향이다.

2. 지혜(intelligence)는 모든 사물과 신, 이들의 궁극적인 원리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성향이다. 


플라톤의 산술 철학


플라톤의 주요 관심사는 "어떤 종류의 추상적 실체들이 양의 정수인가?"라는 문제에 있었다. 

I. 대중적 산술(popular arithmetic)과 철학적 산술(philosophical arithmetic)의 두 가지 종류의 산술이 존재한다. 

(i) 대중적 산술은 감각적 대상에 대한 주장을 한다. 대중적 기하학과 같이 대중적 산술은 기껏해야 낮은 근사의 진리를 갖는다.

(ii) 반면에 철학적 산술은 영혼이 추상적 숫자에 대해 추론하도록 종용하고 시각적이거나 유형의 실체들의 숫자를 고려하는 것을 거부한다.

철학적 산술의 진술은 절대적인 확실한 진리를 갖는다.


II. 이상적인 수학적 존재,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수학적 숫자(mathematical numbers)라고 부른 것과 이상적 숫자(ideal numbers)라고 부른 것이 존재한다. 

A. 다음은 수학적 숫자의 특성이다.

(1) 수학적 숫자는 특정한 이상적인 단위(units) 또는 1로 구성된다. 수학적 숫자 \(N\)은 \(N\)과 같은 단위의 집합이다. 2는 2의 집합이고 3은 3의 집합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2) 그러한 이상적인 단위 또는 1에는 무한한 제공이 존재한다.

(3) 이상적 단위 사이에는 다른 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단위 둘은 전혀 구분할 수 없다.

(4) 이상적인 단위는 어떤 특정한 부분이나 구성요소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관점이든지 우리는 그러한 단위를 하나이고 하나뿐인 것으로 여긴다.

(5) 각각의 수학적 숫자에 무한히 많은 복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단위들의 무한한 제공으로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N\)단위를 고를 수 있고 이러한 모든 선택은 숫자 \(N\)에 대한 표시를 부여한다.

(6) 초보적인 산술적 개념은 단순한 집합 이론적(set-theoretical) 개념들이다. 

(7) 수학적 숫자들은 산술이 연구하는 숫자들이다. 산술의 개념이 정의되는 것은 수학적 숫자만을 위한 것이다.

B. 이상적 숫자는 다음의 특징이 있다. 

(1) 이상적 숫자는 사상, 즉 단일성, 이중성, 삼중성 등의 사상이다.

(2) 사상으로서 이상적 숫자는 단순한 존재들이다.

(3) 특정하게 이상적 숫자는 수학적 숫자와 같은 단위의 집합이 아니다.

(4) 이미 언급한 대로 집합 이론적 종류인 산술의 개념은 이상적 숫자에는 정의되지 않는다. 

(5) 이상적 숫자 사이에는 우열성의 관계가 존재하고 이것에 의해 이상적 숫자들이 크기에 의해 정렬되는 수학적 숫자의 수열과 동등한 수열로 정렬된다.

(6) 이상적 숫자의 연구는 변증법이라는 일반적인 사상의 이론에 속한다. 


III. 수학적 숫자는 이상적 숫자와 감각적 사물이나 감각적 사물의 집합 사이에서의 중간물(intermediates)이다. 


IV. 플라톤이 중간적인 수학적 숫자를 믿는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만약 그가 의식적으로 채택햇다면 중간적인 기하학적 대상의 교리를 채택한 이유와 비슷하다.

산술의 명제들이 진실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그것들은 감각적 사물의 진리가 아님을 확신했다. 그래서 산술의 명제들은 다른 어떤 것의 진리임에 분명하고 그것들은 수학적 숫자들이다. 

이러한 논쟁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1) 산술은 진리이다.

(2) 산술의 진리는 이상적 숫자에서 단일성, 이중성, 등등과 같은 사상에 진실하게 관여하는 대상들의 존재를 가정한다.

(3) 감각의 세계에서는 이상적 숫자에 대한 완전한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이상적 숫자의 완전한 예는 감각 세계 밖 어딘가에 존재한다. 


V. 철학적 기하학(philosophical geometry)과 같이, 철학적 산술은 영원한 존재의 영역을 취급한다. 


VI. 철학적 산술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특정한 가설(공리)로부터 발전하는 추론적인 과학이다.


VII. 이러한 가설들은 선의 사상이라는 첫 번째 원리의 기초 위에 변증법에 의해 정당화된다. 


앞에서 다룬 명제 I~VII는 플라톤의 철학을 재구성하는데 가장 그럴싸하게 여겨지는 커다란 윤곽이나 다음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i) 두 동등한 종류의 숫자에 대한 가정은 불필요하다.

(ii) 어땬 종류의 존재들이 수학적 숫자가 만들어지는 이상적 단위들인가? 그것들에 관한 주요 자료는 그것들이 서로로부터 구별이 불가능하며 각각은 부분의 어떤 내부적 다양성 없이 절대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 묘사는 분명하지 않다.

(iii) II, (A)-(6)과 관련한 다른 질문은 정확히 어떻게 그러한 산술적 개념을 덧셈, 곱셈, 동등으로 인식했는가? 

(iv) 왜 플라톤은 수학적 숫자만이 이상적 숫자만이 진실하게 관여한다고 생각했는가?


숫자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은 플라톤의 시대에 그리스 수학에서 통용된 숫자의 개념의 배경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유효한 근거 아래에서 이러한 개념을 연구하면 그리스의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합성이나 집합, 단위의 복수(plurality)로서 숫자를 인식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숫자의 두 가지 감각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즉

(i) 셀 수 있는 사물의 집합의 의미에서의 숫자와,

(ii) 집합을 세는 것에 의한 숫자가 그것들이다.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은 숫자가 단위의 합성이라고 했을 때 숫자가 서술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셈(counting)은 일종의 측정이다. 사실 셈은 모든 측정의 원형이고, 모든 측정과 같이 셈은 측도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 그중 하나는 셈에 적용되는 측도이다.  

"이러한 측도는 측도가 측정하는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하는 것과 동일하는 것이어야 한다"

 

참고자료:

수리철학, 이건창, 경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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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