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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 6.(서양교육사) 고대의 교육(1: 고대 그리스의 교육)



고대 그리스는 문학, 철학, 예술, 과학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로마와 함께 중심으로 서양문화의 근원이 되었다. 

그리스는 산맥으로 국경이 결정되고 산악지대로 되어있어 지역 간 교통이 불편해서 수백개의 도시국가(폴리스)로 되어있다. 이 중 대표적인 폴리스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영웅과 무사의 교육을 통해 귀족적인 영웅 양성을 했다. 여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으나 호머(Hormeros)의 작품(일리아스, 오디세이)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이념은 아름다움과 선함이 조화된 상태인 미선성(Kalokagathia)이다. 이것은 잘 다듬어진 육체가 정신적인 도야 또는 윤리적 고결성과 합쳐진 상태로, 체육과 음악이 조화롭게 연결된 상태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 국가는 교육에 대한 권한이 막강했고, 교육은 소수의 귀족에서 다수의 시민 전체의 생활로 확대되었다. 앞에서 대표적인 도시국가가 아테네와 스파르타라고 했는데 교육에 있어서 대표적인 도시국가도 아테네와 스파르타다.


스파르타의 교육


스파르타는 국가가 교육을 관장했고, 교육의 목적은 강건한 신체와 투철한 애국심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병사를 만드는 데 있었다. 스파르타 사회에서 어린이는 국가의 재산으로 간주되었고, 약하거나 불구인 아이들은 버려졌고 건강한 아이만 생존할 수 있었다.

7세가 될 때 까지는 어머니가 양육하고, 7세 이후로는 집을 떠나 공동교육장인 아고게(agoge)에 들어가 교육장관(또는 훌륭한 교사)인 파이도노모스(paidonomos) 밑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7, 18~20세 사이의 청년(에페비, ephebi)들은 국가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고 실제 무기를 사용하면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20세(에이렌, eiren)부터 10년간 병영생활을 시작하고 이들 중 훈련교관을 선발해 소년들의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게 했다. 이들은 아직 완전한 시민이 아니여서 민회 참석이 불가능했고, 시장에도 갈 수 없었다. 30세가 되어서야 완전한 시민의 자격을 얻어서 참정권을 얻고 민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군 복무 기간은 20세부터 60세까지이고 군사적 행위에만 관심이 있어 지적인 측면을 경시했다.

스파르타의 여성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훈련을 받았는데 이는 신체를 건강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자녀를 출산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파르타 생활은 여자들에게 많은 책임을 수행하도록 되어있었고,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때문에 여자들이 노예들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교육


아테네는 스파르타처럼 약하거나 불구인 아이들은 버려졌으나 국가가 아닌 아버지가 갓 태어난 자녀의 생사를 결정했으며 건강한 아이는 가정에서 7세가 될때까지 유모, 보모, 어머니에 의해 양육되었다. 

7세가 되면 파이다고고스(paidagogos, 노예출신 교복)의 지도를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데 체조학교(palaistra)에서 체육을, 음악학교(didaskaleion)에서 음악을 배웠다. 이는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해서였다.

아테네의 교육은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를 보내면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15~18세의 청년(에페베, ephebes)들은 성인체육관(gymnasium)에서 2년간 높은 수준의 신체훈련을 받고, 그 이후 18세가 되면 시의 명부에 등록되고 신전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에페보스(ephebos)가 된다. 그 이후 청년군사단(에페비아, ephebia)에 가입해 1년동안 교외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1년동안 군인으로 복무한 다음 20세가 되어 시민권을 얻어 완전한 시민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아테네에는 민주주의가 확립되었고 아테네의 교육은 변화하게 된다.

기존의 전통적 교육은 와해되고 소피스트(sophists, 지혜로운자)가 등장했다. 

소피스트들은 당시 청년들에게 능력과 지성, 정치적 탁월성을 기르는 훈련을 시켰고, 국가에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교육으로서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enkyklios paideia)'를 요구했다. 이것은 문법(모든 분야의 기초), 변증법(모든 것을 고려한 후 어느 견해가 더 좋은지를 본인이 주관적, 개인적으로 결정하게 함), 수사학(웅변술), 시민과목(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전통적 신념과 태도를 배격하고, 급진적이고 회의적인 질문을 해서 허무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를 확산시켰고, 단순한 회의론에 빠져 깊은 내성과 진리의 탐수를 소홀히 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궤변을 중요시 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소피스트들은 학교를 세우지 않고 학생들을 한 곳에서 가르치고 돈을 받았는데 이것은 당시 아테네의 도덕적 기준으로 비도덕적으로 여겨져서 소피스트들을 자유민보다 낮은 지위로 평가했다. 아테네의 청년들은 소피스트들을 지지했으나 보수적인 아테네인들은 멀리했다.

소피스트들은 그리스의 교육을 군사적 훈련과 육체적 기술을 강조하는 교육에서 국가시민으로 갖추어야 할 유용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시켰다. 

1세대 소피스트들은 교육과정을 개발했고, 부재했던 고등교육을 위해 주로 문법, 수사학, 변증법, 기하학 등의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가르쳤다. 2세대 소피스트들은 학교를 세워 교육했고 이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아카데미보다 앞서 학교를 설립했다. 각각의 학교들이 수사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학교를 발전시켰다. 


헬레니즘 시대의 교육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 동맹국에게 패배했고, 그 이후로 폴리스들이 통치능력을 상실했다. 그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그리스가 통일되었다. 그리스가 통일되고 로마에 의해 정복되기 전 까지의 시기를 헬레니즘(Hellenism)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교육은 융합적이고 그리스식 교육을 중시했으며 고등교육기관이 발달했다. 이 시대에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기보다 고전적 학문을 가르치는데 주력해서 학문을 서적 중심적이고 현학적이며 과거지향적으로 만들었다.


교육사상가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교육의 목적이 잠자고 있는 영혼에서 분별력과 진리를 깨우치는 일이고, 정치적 능력을 기르는 훈련이 아닌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핵심을 지향하면서 자아의 실현을 꾀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교육방법으로 반어(무지의 지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유보하도록 하는 일)법, 산파술(지식을 전달하거나 주입이 아닌 스스로가 생산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함)이 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적 방법으로부터 인간 개개인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하는 교육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교육은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 전달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대화를 통해 진리에 공동으로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소피스트들의 전성기로 사상의 혼돈이 극심하던 시절이었고 이때 철학적 인식의 관심을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돌려서 인간에게 있어서 참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과제로 삼았다.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부당하게 처형되자 민주정치가 아테네를 파멸로 이끄는 근원이라고 보고, 급진적인 내적 개혁을 통해 아테네를 구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국가론'에서 자신의 교육적 구상을 이상적 국가모델로 구체화시켰다. 

이상적인 국가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과 국가공동체 생활의 질서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조직되고 유지되는 국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플라톤은 국가를 하나의 거대인간(Makroanthropos)으로 보고 국가 안에 통치자 계급(지혜의 덕으로 통치), 전사 계급(용기의 덕으로 국가를 지킴), 생산자 계급(상인과 농부, 절제의 덕으로 물자를 공급)의 3개의 계급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철인만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고, 여기서 말하는 철인은 지혜의 덕을 지닌 사람으로서 영구적이고 불변하는 실재들을 지적으로 파악하는 사람이고,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바깥으로 나와 태양을 바라봄으로써 참된 실재의 세계에 오른 자연인이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에서의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잠재능력과 소질의 계발이고, 이것이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1단계: 모든 어린이들에게 예비교육으로 음악과 체육교육을 받게 한다(음악과 체육의 조화 강조).

2단계: 17~18세까지의 교육으로 시문학, 기하, 산술, 천문학의 기초를 배운다. 이 단계의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친 학생들 가운데 더 이상 교육이 불필요한 학생들은 전사로 선발되어 군복무를 하게 된다.

3단계: 20세까지 군사훈련을 받는다.

4단계: 30세까지 이론중심의 전문교육을 받는다. 여기서 전문교육은 문법과 수사학의 언어적 교육영역, 산술, 기하, 천문학, 화성학의 수학적 교육영역, 철학적 문답법(변증법)의 철학적 교육의 3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순서대로 배운다. 이 교육이 끝나면 고급 방위직(장교)과 중간 관리직(관리)을 선발해서 군대를 지휘하고 국가를 관리하게 한다.

5단계: 4단계의 교육이 끝난 사람 중 교육이 필요하다고 평가된 학생들이 받고 철학적 문답법을 보다 집중적으로 연습하며 이 단계의 교육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자가 철인이 되어 국가의 통치와 교육의 관리를 맡게 된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했지만 그가 세운 학교인 아카데미아(Akademia)는 대학의 원형으로서 서구철학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소크라테스


이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해 훌륭한 통치자를 양성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플라톤이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지식을 가진 철인 통치자 양성에 관심을 가진데 반해 이소크라테스는 연설과 표현에 능숙한 정치가 양성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교육에서 중심적인 것은 수사학인데 소피스트들의 형식적 훈련과는 달리 영혼의 도야를 과제로 한다고 보았다. 

초기에 그의 수사학은 철학자들의 반대를 받았으나 나중에 학교의 과목으로 인정받았고, 로마에서도 유행했으며 중세시대에도 수사학이 중요 교과로 인정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로 아카데미아의 교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과 정치학이라는 책을 썼고,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으로 규정해 공동체적 존재로서 국가 안에서 태어나고 생활, 공동체를 보존, 발전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인간들에게는 하나의 교육이 요청된다.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는 이성에 따르는 참된 윤리적 생활과 이러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은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을 갖는다고 했고,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은 윤리적이면서 정치적이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행복은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닌 선하고 합리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설립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쳤고, 제자들과 숲속을 산책하면서 강의하고 토론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제자들을 소요학파(Peripateitikoi)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은 코메니우스,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로 이어지는 근대교육학의 이론적 체계의 주된 흐름을 형성했고, '이성의 도야'로서의 교육 개념은 항존주의의 주창자인 허친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참고자료:

교육학적 사유를 여는 교육의 철학과 역사, 정영근 외 3인, 문음사

교육철학 및 교육사, 조경원 외 4인, 교육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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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ywalker222